정치권과 경제계의 최대 화두였던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이달 15일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해 이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개정 법률안의 주요 내용입니다.
이달 3일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올 3월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지만, 한덕수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바 있습니다.
여야의 첨예한 대립이 이후로도 쭉 이어지던 중, 지난달 30일 국민의힘이 상법 개정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기로 하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탔습니다.
남은 숙제는 주주 이익과 경영권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보완 입법입니다. 주주와 경영자, 양측의 이해득실 속에 상법 개정의 움직임은 여전히 치열합니다. 그 현장을 서울경제신문이 들여다봤습니다.
‘상법’이 뭐길래
상법은 상거래와 기업활동을 규율하는 법이다. 기업과 상업 활동의 ‘틀’을 규정하는 법으로, 주식시장과 금융투자업을 규제하는 자본시장법보다 그 범위가 넓다.
최근 국무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고 감사위원 선임·해임 시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상장회사의 전자주주총회를 의무화하고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전환, 독립이사의 이사회 내 의 선임 비율도 기존 ¼ 이상에서 ⅓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도 담겼다.
경제계는 그간 이러한 조항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경영권을 침해해 장기적인 투자를 저해하고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며 우려를 표해왔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이 이러한 경영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상법 개정 대신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한 핀셋 보완을 주장해왔다.
상법 개정 반대하던 국민의힘…전향적 검토로 논의 급물살
그간 상법 개정을 반대 당론으로 유지해온 국민의힘이 방향을 틀었다. 여당의 상법 개정안 처리가 기정사실화하면서 기존 입장을 바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형태로 대책을 마련한다는 입장에서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최근 일부 기업의 유상증자 과정에서 발생한 주주권 침해 문제 등 시장 상황의 변화를 고려해 상법 개정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그간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한 상법 개정안에 반대 의견을 내보이며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한 문제 해결을 주장해왔다. 특히 주주 충실 의무를 포함한 상법 개정안은 소송 남발 등으로 기업 활동에 지나친 제약을 줄 수 있다는 지점에서 우려를 표해왔다.
다만 송 원내대표는 이날 “그간 자본시장법을 대안으로 해 상법 개정 움직임에 대응해왔다”며 “일부 기업의 행태에 대해 자본시장법만으로 주주권 보호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어 상법 개정 필요성에 대한 입장으로 전환하도록 하겠다”고 입장 변화의 이유를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단순 규제 강화가 아닌 시장의 신뢰 회복과 기업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송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 ‘강화안’은 민간기업에 대한 과잉 규제로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자본시장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며 “기업과 투자자 모두에게 실질적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는 세제 개혁도 패키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더 센’ 상법 개정 드라이브
국민의힘의 기조 변화로 상법 개정을 관철한 민주당은 추가의 보완 입법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달 15일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가 필수적”이라며 “상법에 대한 보완 입법, 2차 개정을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7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다음달 4일 본회의에 이 내용을 포함한 상법 개정안을 상정한다는 목표다.
앞서 통과된 상법 개정안에서는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조항이 여야 합의 불발로 담기지 못했다. 특히 집중투표제는 각 주주가 보유한 의결권을 특정 후보자에게 몰아줄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이른바 ‘3%룰’과 함께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가운데 이달 9일에는 기업이 자사주를 사들이면 1년 이내에 의무적으로 소각하도록 하는 상법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민주당은 ‘더 센’ 상법 개정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한편, 민주당이 강하게 밀어붙인 상법 개정으로 인한 경영권의 침해 우려를 덜기 위한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포이즌필(경영권 위협 발생 시 기존 주주에게 싼 값에 주식 매입 권리 부여), 차등의결권 등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은 “경영권 방어 수단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집중투표제나 감사위원 분리 선출 제도가 시행되면 최대주주는 50% 정도를 투자함에도 불구하고 경영권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결과가 나타난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한 입법 활동이 국민의힘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은석 의원 등은 추가 상법 개정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포이즌필과 같은 장치를 포함한 상법 보완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최은석, 포이즌필 허용 상법 개정안 발의…"최소한의 방파제"
최은석 국민의힘 의원은 이달 21일 기업의 정당한 경영권을 보호하고, 기업가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최 의원이 대표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신주인수선택권 제도 도입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 허용 △거부권부주식 도입 △'경영판단의 원칙' 명문화 등 내용이 포함됐다.
현행 상법은 기업이 적대적 인수합병(M&A) 등 외부 위협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최근 상법 개정 움직임으로 경영 안정성과 의사결정의 효율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 기업의 자율성과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한 법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것이 최 의원의 지적이다.
이와 함께 최 의원은 해외 주요국들도 기업의 장기 전략과 경영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를 제도화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최 의원에 따르면 미국은 차등의결권 주식과 신주인수선택권을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일본도 최근 창업 기업을 중심으로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하고 주주권리계획(포이즌필) 등 방어 수단을 운용 중이다. 프랑스의 경우 장기 보유 주주에게 테뉴어 보팅(복수 의결권)을 부여하고 있다.
최 의원은 “기술 유출과 경영권 분쟁 등 외부 위협으로부터 우리 기업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고,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갖추는 것이 이번 개정안의 핵심 취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업의 경영권이 위협받으면 장기적인 투자 전략과 경영 비전이 흔들리고, 이는 곧 투자 위축과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며 “기업의 혁신과 지속 가능성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상법 체계를 보다 균형 있게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삼성전자 대표이사 출신인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도 이달 2일 불필요한 소송 남발과 기업의 자율적 경영권이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는 ‘기업 배임죄 특례법’(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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