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진 증세를 보여 구조된 야생동물이 올여름 들어 지난해보다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폭염에 극한호우까지 겹치면서 가축 폐사 수 역시 같은 기간 열 배나 급증했다. 낮 최고기온이 40도를 넘나드는 불볕더위가 연일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사람은 물론 동물들까지 온열질환에 시달리는 모양새다.
28일 서울시 야생동물센터에 따르면 올해 6월부터 7월 15일까지 ‘기아 및 탈진’으로 구조된 야생동물은 총 25마리로 집계됐다. 같은 사유로 올해 구조된 총 개체 수(43마리)의 58.1%에 달한다. 7월 중순까지만 집계한 수치인데도 지난해 6~7월(18마리)의 1.4배에 육박하고 2023년 같은 기간의 27마리와도 비슷한 수치다.
구조된 개체 대다수는 조류다. 특히 여름철은 아기 새가 둥지를 떠나 어미로부터 독립하는 이소(離巢) 기간이기도 해 구조 수요가 더 많다고 한다. 아직 비행에 서툴기 때문에 등산로·주차장 등 땅바닥에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노면에서 올라오는 열을 이기지 못하고 탈진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는 전언이다. 실제 유튜브·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아기 새 물 주기’류의 콘텐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폭염이 여름철 조류 탈진·기아의 주요 요인이기는 하지만 어미 새로부터 낙오되는 등 다른 요인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인간의 손길이 닿는 가축이라고 해서 상황이 나은 것도 아니다. 돼지와 닭·오리 등 가금류는 체온 조절 능력이 약해 폭염에 취약한 데다 설상가상으로 이달 16일부터 20일까지 전국적으로 극한호우가 쏟아지면서 축사가 물에 잠기는 사고가 속출한 까닭이다. 실제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5월 20일부터 이달 24일까지 폐사한 가축은 전국 101만 1243마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9만 6148마리보다 10.5배나 많다. 고양이·강아지 등 반려동물도 평상시 체온이 인간보다 높아 열사병에 취약하다. 최근 제주 여행 중 한 반려견이 항공기 화물칸에 위탁 수하물로 실린 뒤 열사병으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폭주하는 날씨에 인명 피해 역시 속출하고 있다. 행안부에 따르면 이달 27일까지 누적 온열질환자는 총 245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57명)의 2.5배 수준이다. 특히 절기상 가장 무더운 대서(大暑)였던 22일부터 5일 동안 매일 100명 이상의 온열질환자가 발생했다. 누적 사망자도 1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4명보다 3배 가까이 많다. 행안부는 25일 폭염 위기 경보 수준을 ‘심각’ 단계로 상향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단계를 가동했는데 이는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6일 이르다. 위기 경보 심각 단계는 전국의 40% 지역에서 일 최고 체감온도 35도 이상이 3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발효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폭염의 원인으로 한반도를 덮고 있는 이중 고기압을 지목한다. 티베트고기압과 북태평양고기압이 우리나라 상공을 빈틈없이 장악하면서 기온을 연일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예년 같았으면 7월 말부터 8월 중순 사이에 이런 모습이 나타났겠지만 올해는 7월 초까지 앞당겨졌다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주에는 태백산맥을 넘어오면서 뜨거워진 동풍까지 가세할 예정이다. 극심한 폭염은 당분간 지속되다가 8월 초가 돼서야 한풀 꺾일 것으로 전망된다.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이날 낮 최고기온은 37도, 29일부터 31일까지는 36도를 기록하다가 전국에 구름이 많아지는 다음 달 1일에는 34도까지 떨어진다. 밤 최저기온도 주중 내내 25도를 웃돌 것으로 보여 잠 못 드는 열대야 또한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 관계자는 “폭염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당분간 낮에는 최고 체감온도가 35도 내외로 올라 매우 무덥겠다”며 “온열질환 발생 가능성이 높으니 야외 활동과 외출 자제, 식중독 예방을 위해 음식 관리를 철저하게 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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