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에 반도체 산업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스타트업을 육성해 시스템 반도체 수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한국무역협회가 30일 발표한 ‘팹리스 스타트업 활성화 및 수출 연계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AI 산업의 성장으로 시스템 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한국의 경쟁력은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 크게 뒤처져 있다. 한국의 시스템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2% 수준으로 미국(72%)은 물론 대만(8%), 일본(5%), 중국(3%)에도 밀린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반도체 수출은 10년 동안 9.5% 성장했지만 여전히 메모리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수출의 62.2%가 메모리에 집중됐고 시스템 반도체를 포함한 비메모리 부문은 글로벌 수요 증가에도 소폭 감소했다. 2019년 4월 삼성전자가 ‘2030 반도체 비전’을 발표하고 문재인 정부가 시스템 반도체 지원책을 내놓았지만 아직 가시적 성과는 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이라도 메모리에 집중된 반도체 산업 구조를 업그레이드하려면 팹리스 산업 활성화와 수출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가 강해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도 함께 성장하고 ‘AI 3대 강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국내 팹리스 스타트업들이 일정 수준의 외형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팹리스 스타트업 수는 61개로 중국·미국·인도에 이어 세계 4위이며 이 가운데 42.6%가 하나 이상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열악한 투자 환경과 정책 지원이다. 국내 팹리스 스타트업의 95%가 여전히 초기 투자 단계에 머물고 있다. 5월 기준 팹리스 유니콘의 수는 중국이 26개, 미국이 8개인 반면 국내는 리벨리온 1곳에 그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생태계를 확장하려면 팹리스 스타트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예산을 통합·조정해 재정 지원의 효율성을 높이고 반도체 생태계 펀드 내에서 팹리스의 할당 비율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반도체 연구개발(R&D)뿐 아니라 AI 개발 업체 등에는 주52시간 근무제 예외를 적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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