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의 국빈 방한을 계기로 베트남과 5년 내 교역 규모를 약 2배로 늘리기로 합의했다. 원전과 첨단 과학 등 한국이 가진 기술력을 제공하고 베트남이 보유한 광물을 활용해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양국은 국방·안보뿐 아니라 금융·교육 분야까지 아우르는 공동성명과 10개의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1만 개의 한국 기업이 진출해 있는 주요 시장이자 수출 인프라를 갖춘 베트남과 공조를 강화해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를 본격 이행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이 대통령은 11일 베트남 국가 권력 서열 1위인 또럼 공산당 서기장과 정상회담을 열고 ‘한국·베트남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심화를 위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베트남 당 서기장이 방한한 것은 2014년 이후 11년 만이다. 새 정부 출범 후 67일 만의 첫 외빈이자 국빈이다.
양국 정상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공동 언론 발표를 통해 경제협력에 방점을 찍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심화를 위한 공동성명’을 소개했다. 먼저 양국은 2030년까지 교역 규모 1500억 달러(약 208조 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지난해 양국 교역이 867억 달러(약 120조 원)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5년 내 2배 가까이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이 대통령은 “올해 한·베트남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10주년을 맞아 양국 관계 발전의 든든한 기반이 돼준 호혜적인 경제협력을 더욱 가속화해나가기로 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구체적인 협력 분야로는 첨단 과학기술부터 에너지·공급망 등이 총망라됐다. 특히 베트남의 신규 원전 건설 사업과 북남 고속철도 건설 사업 등 대형 국책 사업에 한국 기업의 참여를 검토하기로 했다. 동시에 ‘원전 분야 인력 양성 협력 MOU’를 체결해 베트남 원전 산업 육성에서 양국 기업 간 협력 기반을 마련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핵심 광물의 수급·가공·활용을 위한 협력도 모색하는 데 합의했다. 올해 조성되는 한·베트남 핵심 광물 공급망 센터를 주축으로 정부와 기업 간의 협력 가능성을 연구하고 투자도 촉진시킨다는 계획이다.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협력을 강화하고 석유·가스 탐사 및 개발 분야의 정보 교환도 확대할 예정이다.
특히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첫 국빈 방한으로 베트남 정상을 초청한 것도 공급망 안정과 시장 다변화가 시급한 국가적 상황과 맞물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베트남은 중국과 미국에 이어 한국의 3대 무역국이면서 미중에 쏠린 교역 구조를 완화할 수 있는 수출 거점으로 평가된다. 베트남으로서도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로 자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우려를 완화할 계기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한국은 핵심 원자재를 포함해 공급망 안정화 방안이 요구되는 상황으로 핵심 광물이 풍부한 베트남과 교역 확대 의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베트남도 미국으로부터 20%의 상호관세를 맞아 한국을 포함한 주요 기업들의 투자 축소로 이어질 우려가 있어 양측의 공조 필요성이 맞아떨어진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이번 회담에서 외교·국방·안보 분야의 협력 활성화도 주요하게 다뤄지면서 방위산업 업체들의 적극적인 동남아 시장 진출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양국은 공동성명에서 “방산 기업 간의 연계를 강화해나가고 방산 및 보안 산업 분야에서 협력을 증진시킨다”고 명시했다. 국방·방산과 관련된 장관급 회담을 이어가고 2008년 이후 중단된 양국 간 방산군수공동위원회도 재개하는 데 합의하기도 했다. 실제 한국산 K9 자주포의 베트남 수출을 위한 협상이 마무리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한국과 베트남은 △과학기술 △저작권 △재생에너지 △중앙은행 △금융 감독 당국 등 분야에서 협력 강화를 골자로 한 10건의 MOU도 체결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공동 언론 발표에서 중앙은행 간 협력 MOU를 거론하며 “양국 간 통화정책과 금융 안정 등 협력 강화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초국경 범죄, 첨단기술 범죄, 마약 문제의 해결에서 협력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편 이날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베트남을 “사돈의 나라”라며 친근감을 표했다. 이어 “한국 기업도 1만 개 이상이 베트남에 나가 있기도 하고 베트남 국민 수만 명이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특별한 관계”라며 기업들이 자유로운 활동을 서로 배려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럼 서기장은 환대에 사의를 표하며 “양국의 협력이 보다 새롭고, 진취적이고, 협업적으로 나아가게,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에 걸맞게 발전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국 국민의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주고 역내 및 세계 평화, 안전, 협력에 긍정적인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이 대통령은 올해 10월 경주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베트남의 참석을 요청했고 럼 서기장은 이에 화답했다. 김혜경 여사는 럼 서기장의 부인 응오프엉리 여사와 별도의 환담을 나누고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 전시를 함께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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