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권도형(33) 씨가 미국 형사재판에서 형량을 대폭 낮추는 조건으로 기존 입장을 바꾸고 유죄를 일부 인정했다. 미국에서 형기를 채운 뒤 한국으로 송환될 가능성도 열렸다.
권 씨는 12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남부연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사기 공모, 통신망을 이용한 사기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권 씨는 이날 미결수임을 나타내는 노란색 반소매 수의를 입고 양손엔 수갑, 몸에는 포승줄이 묶인 채 호송인 2명과 함께 법정에 출두했다. 이어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고의로 사기를 저지르기로 합의했고 실제로 내 회사인 테라폼랩스가 발행한 가상자산 구매자들을 속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달러) 연동 회복 과정에서 트레이딩 회사의 역할을 공개하지 않아 거짓되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설명을 했다”며 “내 행위에 사죄하고 싶고 완전한 책임을 진다”고 말했다.
뉴욕 남부연방지방검찰청 검사는 ‘플리 바게닝(유죄 인정 조건으로 형량 경감·조정)’ 합의에 따라 추가 기소 없이 권 씨에게 최대 징역 12년 형을 구형하기로 했다. 또 권씨를 상대로 1900만 달러(약 265억 원)와 그 외 다른 일부 재산을 환수하기로 했다.
권 씨가 유죄를 인정한 사기 공모(5년), 통신망을 이용한 사기(20년) 혐의에 대한 최대 형량은 총 징역 25년이다. 앞서 권 씨와 테라폼랩스는 이와 별개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44억 7000만 달러(약 6조 2000억 원) 규모의 환수금과 벌금 납부에도 합의한 바 있다.
미국 법무부는 나아가 권 씨가 최종 형량의 절반을 복역하고 플리 바게닝 조건을 준수한 뒤 ‘국제수감자이송’ 프로그램을 신청할 경우 이에 반대하지 않기로 했다. 만약 권 씨가 한국행을 신청한다면 형기 절반을 한국에서 보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권 씨는 미국 형사 재판과 별도로 한국에서도 자본시장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권 씨는 자신이 설립한 테라폼랩스가 발행한 가상자산 ‘테라USD’의 블록체인 기술과 관련해 투자자들을 속이고 TV 인터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허위 정보를 퍼뜨린 혐의 등을 받는다. 또 2021년 5월 테라 가치가 기준치인 1달러 밑으로 떨어지자 ‘테라 프로토콜’이라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가치가 자동으로 회복됐다고 주장한 시세조종 혐의도 있다. 수사기관은 그가 테라폼랩스와 계약한 투자 회사를 시켜 테라를 몰래 사들이도록 해 인위적으로 가격을 부양했다고 봤다.
뉴욕 검찰은 지난 2023년 3월 권 씨가 유럽 몬테네그로에서 검거되자 그 직후 증권사기, 통신망을 이용한 사기, 상품사기, 시세조종 공모 등 총 8개 혐의로 그를 재판에 넘겼다. 뉴욕 검찰은 이어 지난해 말 몬테네그로에서 권 씨의 신병을 인도받은 뒤 자금세탁 공모 혐의를 추가했다. 권 씨는 지난 1월 초만 해도 판사가 유죄 여부를 묻는 기소인부 심리에 출석해 자신의 혐의가 모두 무죄라고 주장했다. 미국 법무부는 올 초 권 씨의 범죄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될 경우 최고 형량이 징역 130년가량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권 씨에 대한 선고심은 오는 12월 11일 열린다. 최종 형량은 판사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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