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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우주센터를 가다]0.1㎜ 오차와의 전쟁…한화 "항우연 노하우 매일 10장씩 받아 적죠"

■나로우주센터 누리호 조립동 가보니

민간 첫 누리호 4차 발사 100여일 앞둬

항우연, 한화·KAI 엔지니어에 기술전수

"연료센서 고장나면" "본체 찌그러지면"

경험담 들려주며 돌발상황에 철저 대비

"한국 우주산업 생태계 지속 성장하려면

1~2년 띄엄띄엄 발사 말고 수요 늘려야"





이경철(왼쪽)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우주사업부 발사체연구센터 책임연구원과 이창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체계종합팀 책임연구원이 12일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조립동에서 누리호 4차 발사 준비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김윤수 기자


“연료나 산화제 탱크의 레벨 센서가 고장날 경우에는 탱크 전체를 떼어낼 필요 없이 금속 와이어만 쏙 빼서 새 센서로 교체하면 됩니다.”

한국형 우주발사체(로켓) 누리호 4차 발사를 100일 정도 앞둔 12일 전남 고흥군 한국항공우주(047810)연구원 나로우주센터 조립동.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 엔지니어들이 누리호 1단부 안 연료·산화제 탱크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며 항우연 엔지니어의 말을 꼼꼼히 받아 적었다. 항우연은 2022년 6월 엔진 연소에 필요한 산화제 양을 알려주는 레벨 센서 고장으로 누리호 2차 발사를 한차례 미룬 적 있다. 당시 시행착오를 겪으며 쌓은 노하우를 한화에어로에 전수해주는 중이었다. 누리호는 300여 개 업체가 만든 38만 개 부품이 복잡하게 연결된 데다 발사 경험도 지금껏 세 차례에 불과해 예기치 못한 고장이 발생할 경우 어느 부위를 해체하고 고쳐야 하는지에 대한 매뉴얼이 충분치 않다.

엔지니어들은 설계도만으로는 알 수 없는 생생한 경험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총 길이 47.2m, 지름 3.5m에 달하는 누리호 1·2·3단부 주변 이곳저곳에 삼삼오오 모인 엔지니어들은 탱크에서 연료가스가 샐 경우 어느 부분에서 새는지 확인하는 법, 두께가 알루미늄 음료수 캔 수준인 1.5㎜에 불과한 누리호 본체를 찌그러뜨리지 않고 다루는 법 등을 묻고 답했다. 현장에는 누리호 제작 전반을 관리하는 체계 종합 기업 한화에어로 10명을 포함해 조립을 전담하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21명, 기밀(氣密) 시험을 맡은 한양이엔지(045100) 6명 등 민간 엔지니어들이 대부분이었다. 항우연은 평소 책임자 3명만이 현장을 살피다가 고난도 작업이나 난관이 주어지면 20~30명이 투입돼 해결한다.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조립동 누리호 발사 준비현장. 김윤수 기자


누리호는 앞서 세 차례나 발사됐지만 올해 11월 4차 임무는 또 다른 의미에서 새로운 도전이다. 항우연 대신 민간이 처음으로 주도하는 임무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미국 스페이스X처럼 민간 주도로 우주개발하는 ‘뉴스페이스’ 시대를 열려면 한화에어로가 맡은 4차 발사 성공이 필수다. 한화에어로는 최근 항우연과 기술 문서만 1만 6050건에 달하는 누리호 기술이전 계약을 맺었다. 직후 이뤄질 4차 발사는 첫 실전이다. 회사는 향후 1㎏당 2만 4000달러(약 3300만 원)에 달하는 누리호 발사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춰 스페이스X(2000달러·280만 원) 등과 경쟁하겠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한화에어로 측 책임자 이경철 우주사업부 발사체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기술이전 체결 후 처음으로 발사 임무를 주도함으로써 민관 협력을 다지겠다”며 “임무 성공을 위해 항우연 측에 배운 내용을 매일 현장 사무실에서 기록하고 있는데 분량이 많으면 하루 A4 10장을 넘길 때도 있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시 본사에 있는) 임원들도 매일 보고를 받고 2~3개월마다 직접 현장을 점검 중이라고도 전했다. 누리호 총조립 업무를 총괄하는 이창배 항우연 발사체체계종합팀 책임연구원은 “엔지니어들이 현장에서 보고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묻고 답하는 도제식으로 양측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며 “4차 임무는 1~3차와 기술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지만 우주산업 기반을 닦는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조립동 누리호 발사 준비현장. 사진 제공=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화에어로의 첫 성공은 발사체 부품 업계 성장에도 이정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1~2년에 한번씩 이뤄지는 국가 우주개발 임무만으로는 업계 수요를 충족할 수 없다. 스페이스X만 연 100회 이상 발사체를 쏘는 미국처럼 국내에서도 민간이 발사체 제작 수요를 다량 창출해주는 방법밖에는 없다. 이경철 책임연구원은 “우주산업 생태계가 지속 성장하려면 1~2년마다 띄엄띄엄 발사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며 “1년에 부품 한두 개만 만들겠다는 업체는 있을 수 없다. 발사가 뜸해지면 그 사이에 망하거나 핵심 인력이 이탈해 노하우를 잃어버리는 업체들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이에 양측은 4차 발사를 발판 삼아 내년 5차, 2027년 6차는 물론 한화에어로가 부품 조달과 제작, 발사 등 전 과정에서 완전히 홀로서기 위한 7차 이후 임무도 정부 사업으로 검토 중이다. 누리호에 이어 2032년 달 착륙을 위한 2조 원 규모의 ‘차세대 발사체’도 양측이 공동 개발한다. 한국이 뉴스페이스 경쟁에서 추격하려면 이처럼 대형 임무를 연속적으로 수행해 집중 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창배 책임연구원의 생각이다. 그는 “미국은 일찍이 우주개발에 나선 덕에 정부 연구기관에서 은퇴한 전문가들을 기업들이 영입해 실력을 빠르게 키웠다”며 “반면 한국은 지금껏 항우연이 국가 우주개발 임무를 일임해 민간 역량은 부족하기 때문에 미국보다 더 적극적으로 민관 협력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4차 발사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야간 발사다. 안 그래도 경험이 없는 한화에어로에 체감 난이도를 한층 더 높이는 변수다. 네 번째 누리호는 주탑재 인공위성인 ‘차세대 중형위성 3호’의 임무 계획에 따라 한밤중인 오전 1시에 발사될 예정이다. 누리호가 이처럼 밤에 발사된 적은 없었다. 이창배 책임연구원은 “밤에는 발사대와 1.8㎞ 떨어진 통제동에서 누리호를 제대로 관찰하기 어렵다”며 “누출처럼 육안으로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던 문제에 대응하기 더 어려워졌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신 성공 시 앞으로 고객사가 원하는 다양한 시간대에 발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다”고 했다. 위성들은 태양광 전력 수급 등 임무 조건에 론치윈도(발사 가능 시간대)도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소형이 아닌 500㎏짜리 중형위성, 또 역대 가장 많은 12기의 큐브(초소형) 위성들을 함께 쏘아올리는 일도 국내에서 한화에어로가 처음 해내야 한다.

누리호는 다음 달 액체연료와 산화제를 넣어 작동 여부를 살피는 웨트드레스리허설(WDR)을 거친다. 누리호는 11월 발사 전날 조립동에서 나와 1㎞ 떨어진 발사대에 세워진 후 발사까지 4시간 정도 앞두고 연료·산화제가 충전된다. 10분 전에는 발사 카운트다운인 발사자동운용(PLO)에 돌입한다. 누리호는 3차 발사 때(550㎞)보다 높은 600㎞ 고도까지 비행하며 1단과 2단을 순차 분리하고 위성들도 차례로 사출할 예정이다. 이에 이전보다 긴 18분 이상 비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행 종료 후 위성이 제 위치에 자리 잡고 가동돼 지상국과 초기 교신이 이뤄지면 4차 발사는 성공으로 판정된다.

누리호가 2022년 6월 21일 오후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에서 발사되고 있다. 고흥=오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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