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6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사상자는 러시아가 약 100만 명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이며 우크라이나의 사상자도 40만 명에 달한다. 또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에서 팔레스타인 주민 사상자는 1년 10개월 만에 약 21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이 발발하면 자국민까지 희생될 수 있음에도 전쟁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간 ‘우리는 왜 싸우는가’는 이러한 인간 본성과 폭력에 대한 이분법을 배제하고 전쟁의 근원과 평화를 실천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우선 전쟁과 폭력이 빈번하고 우발적이라는 통념을 뒤엎으며 전쟁은 이례적이라고 주장한 점이 눈길을 끈다. 전쟁은 파멸적이기 때문에 가장 적대적인 적도, 강대국도 전쟁보다 협상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거대한 전쟁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전쟁과 폭력이 상수라고 오해하고 그 원인을 잘못 분석한다고 비판한다. 기후변화, 빈곤과 기근, 자원, 인종 갈등 등 흔히 전쟁과 폭력의 원인으로 제시되는 요인들은 전쟁의 근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화를 원하면서도 우리는 왜 싸움을 선택할까. 책은 게임 이론과 전략학, 평화 구축 이론 등을 활용해 모든 전쟁의 원인을 ‘견제되지 않은 이익’ ‘무형의 동기’ ‘불확실성’ 등 다섯 가지로 분석하고 평화를 위한 조건과 실천 방법도 제시한다.
이 중 ‘견제받지 않는 이익’은 최근 국제 정세를 떠올리게 한다. 견제받지 않는 지도자는 전쟁으로 축적할 수 있는 부와 권력 등을 취하고 전쟁 비용을 다른 구성원에게 전가한다. 과거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과 엘리트들은 자유에 대한 열망 만큼이나 땅과 돈을 향한 욕망 때문에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인도 힌두교인과 무슬림의 갈등은 종교적 신념에 따라 일어난 듯 보이지만 지배 계급이 선거에 승리하고 여론을 결집하기 위해 기획한 ‘제도화된 폭동’이라는 게 저자의 견해다. 이 외에도 목숨까지 내놓으며 투쟁을 벌이는 정의로운 분노, 영광과 지위를 향한 욕망 등 무형의 동기도 전쟁을 유발하는 요인이라는 것을 밝힌 점도 흥미롭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평화란 갈등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니라며 오히려 긴박하지만 비폭력적인 대치가 가득한 칸트적 평화를 강조한다. ‘견제되지 않은 이익’ 등 다섯 가지 전쟁의 근원을 억제하고 타협과 협상의 범위를 넓히면 전쟁과 폭력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방법은 경제·사회·문화적 교류를 통해 상호 의존도를 높여 상대를 공격하기 어렵게 만들고 권력을 분산시켜 리더십을 견제하며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들어 공존하는 것이다. 당사자가 해결하기 어려운 갈등에는 국제 기구 등 제3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저자는 이러한 방법을 지킨다면 평화로 가는 길은 험난하지만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2만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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