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건설 현장 사고에 대해 연일 강도 높은 발언을 내놓으면서 건설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포스코이앤씨의 한 건설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하자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 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라고 질책했다. 또 “심하게 얘기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건설 업계의 안전 불감증을 질타했다.
이 대통령은 이달 6일 또다시 외국인 노동자 감전 사고가 발생하자 “매뉴얼 준수 등을 철저히 확인하고 건설 면허 취소와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모든 방안을 찾아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또 최근에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후진적 산업재해 공화국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조치를 소홀히 하는 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건설 업계에 대한 대대적인 압박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건설 현장 사고율은 참담하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건설업의 근로자 1만 명당 사망자 비율은 우리나라가 1.59퍼미리아드(만분율)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경제 규모 상위 10개국 가운데 가장 높다. 10개국의 건설업 사고 사망 만분율 평균 수치는 0.78인데 우리나라는 이의 2배가 넘는다. 가장 낮은 영국과 비교하면 6.6배에 달한다. 전국 곳곳의 국내 건설 현장에 뿌리내린 안전 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인 것이다. 이에 국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에 더해 더 강력한 법안 발의가 추진되고 있다. 건설 현장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매출의 최대 3%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내용의 법안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엄포와 국회의 ‘더 센’ 입법만으로는 건설 현장에 스며든 안전 불감증의 뿌리를 뽑아내기는 쉽지 않다. 건설 업계는 턱없이 부족한 숙련공, 공사 기간 압박 등을 호소한다. 달리는 일손에 공사 기간마저 촉박하다 보니 안전을 아무리 강조해도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건설 현장의 고령화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건설 근로자 3명 중 2명이 50대 이상일 정도다.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려운 외국인 노동자의 비율도 올라가고 있다. 건설근로자공제회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 비율이 15%에 육박한다. 언어 장벽으로 작업 효율은 물론 안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건설사가 안전 비용을 늘리고도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낮은 가격을 써낸 건설사에 일감을 주는 최저가 입찰제 역시 건설 현장의 안전 불감증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수주 가격은 낮은데 공사 과정에서 비용이 높아지는 데다 공사 기간에 쫓기다 보니 안전은 뒷전으로 밀리는 게 현실이다.
세계적 석학으로 ‘위험사회’의 저자인 울리히 베크 독일 뮌헨대 교수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세월호만이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가 참사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건설 현장의 사망 사고 역시 건설 회사 한두 곳의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이 가장 큰 원인이다. 우리 사회는 빨리빨리 문화로 압축 성장을 일궈냈지만 이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점을 되돌아볼 시간도, 해결할 여유도 없었다. 능률이 최선이고 생산성 향상이 국가 경제의 최고 과제였다.
건설 현장의 잇따른 사고와 현장의 안전 불감증은 기업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국가 차원에서 안전 우선 문화를 확산시키고 안전이 최고의 가치로 자리 잡도록 하는 국가적인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미국의 산업안전보건청(OSHA)은 2014년부터 매년 건설 현장의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해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건설 현장의 안전은 장비 한 개를 추가하고 현장의 안전 요원 배치를 확대한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미국이 꾸준한 캠페인을 통해 근로자의 인식 제고에 나서는 배경이다. 우리 사회의 안전에 대한 주의 의식을 제고하지 않으면 안전사고는 줄어들 수 없을 것이다. 가정과 학교, 직장에 이르는 단계별 안전 문화 확산을 도모해야 할 때다.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것은 기업 혼자서 할 수 없는 만큼 정부가 함께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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