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벼랑 끝에 몰린 국내 석유화학 산업에 대해 사실상 강제 구조조정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일 석화 업계와의 협의 형식을 거쳐 나프타분해시설(NCC) 총생산능력을 최대 25% 감축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또 고부가가치 품목 확대와 재무 건전성 확보, 지역 경제·고용 영향 최소화 등을 구조 개편의 방향으로 제시했다. 정부는 각 기업들이 올해 말까지 자구 계획을 내놓으면 금융·세제, 규제 완화 등의 지원 패키지를 제공할 방침이다. 반면 업계의 설비 감축 노력에 무임승차하는 기업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선(先)자구 노력, 후(後)정부 지원’ 방침을 내세워 최후통첩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석화 산업은 글로벌 공급과잉과 수요 둔화, 탈(脫)탄소 규제 등 3중고에 처해 있다. 기업들이 고부가 전환에 실기하고 구조조정을 미룬 탓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방안은 정부와 업계가 설비 축소 등 구조 개편에 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문제는 업계의 자구 노력과 정부 인센티브만으로는 산업 위기를 이겨내기도, 노조와 지역사회의 반발을 극복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는 석화 사업 재편 유형으로 설비 폐쇄, 사업 매각, 인수합병(M&A)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인력 구조조정과 지역 경제 타격이 불가피한데도 정부는 기업과 대주주에만 책임을 돌리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 결정’도 쟁의 대상에 포함하는 노란봉투법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석화 사업 재편에 대한 의사 결정도 파업 대상이 되면서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허비할 가능성이 크다. 하청 근로자들도 이 법을 내세워 원청의 사업 재편에 대해 교섭을 요구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여기에다 ‘더 센’ 상법 개정안까지 시행되면 소액주주들이 주주 가치 침해를 이유로 들면서 M&A 등에 대해 제동을 걸 수도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이들 법안의 처리 시도를 중단하고 세제·금융 지원은 물론 석화 산업 대전환을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이해관계자들 간의 갈등 조정에 적극 나서고 기업들이 생산 설비를 통합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상 예외 규정을 도입하는 것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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