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매우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나라입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이자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을 집필한 제임스 로빈슨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21일 “휴대전화, 화장품 산업 등에서 나오는 많은 아이디어는 한국인의 열정과 창의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지속가능한 번영의 길’을 주제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특별 대담을 위해 서울시청을 찾은 로빈슨 교수는 대담에 앞서 ‘한국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그는 평소 성공적인 국가 발전 모델로 한국을 종종 언급해 왔다.
한국의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이유로 로빈슨 교수는 ‘포용적 경제·정치제도’를 꼽았다. 그는 “포용적 경제 제도는 규칙을 통해 사회 구성원에게 광범위한 기회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덕분에 한국에는 공평한 경쟁의 장이 조성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자서전을 읽은 경험을 소개하면서 “열정과 창의성을 가진 분들이 (빠른 경제성장이라는) 기적을 이뤄냈는데. 한국이라는 나라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이런 한국인들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로빈슨 교수는 한국의 민주주의 안착에 관해서도 긍정적으로 봤다. 그는 “1970년대부터 한국은 경제성장을 해왔지만 민주주의로의 전환 이후 더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이뤘다”며 “(K팝, K뷰티 등에서 확인할 수 있는) 폭발적인 창의성은 민주주의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강연에 이어 오 시장과 로빈슨 교수는 이정민 서울대 교수의 진행으로 ‘지속가능한 성장과 번영을 위한 제도’에 관한 대담을 나눴다. 로빈슨 교수는 “포용적인 제도는 공공서비스와 교육에 대한 더 많은 투자로 이어진다”며 “한국의 경제발전을 이해할 때 교육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오 시장은 나라의 번영 조건으로 ‘인센티브 시스템의 작동’을 들었다. 그는 “시민들의 도전이나 모험에 큰 노력을 기울이면 꼭 정당한 보상이 뒤따른다는 제도가 작동되는 나라는 반드시 번영할 수 있다”며 “한국이 짧은 시간 성장한 이유는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단순한 믿음이 배신당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제발전의 이면에는 양극화, 불평등 같은 부정적 키워드가 종종 따라온다. 오 시장은 서울시 정책 기조인 ‘약자와의 동행’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패자부활전이 없는 사회는 발전 동력이 꺼져갈 수밖에 없다”며 “발전의 원동력을 만드는 데 반드시 ‘계층이동사다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로빈슨 교수도 “미국의 많은 정치적 문제는 번영의 공유, 공동의 번영이 50년간 무너졌기 때문”이라며 “어떤 시장 경제든 불평등이 존재하기 마련인 만큼 약자를 포용하고 이들에 대한 존경을 잃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약자 존중 정책이 포퓰리즘으로 흐르는 것은 경계했다. 오 시장은 “선거에 당선되려 하는 감언이설은 애교 수준으로 봐줄 수 있다”면서도 “집권 후 미래 경쟁력을 갉아먹는 정책을 내놓고 그것을 선의로 포장하는 것은 실패한 정권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비판했다. 로빈슨 교수 역시 “현재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공격받고 있으므로 포퓰리즘은 반(反)제도적”이라며 “민주주의 제도 개선과 함께 효용성을 높여 실질적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포퓰리즘에 대항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 시장은 보편적·선별적 복지가 지닌 의미도 재정의가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사실 보편적 복지는 수입, 계층에 관련 없이 똑같이 나눠준다는 점에서 ‘무차별적 복지’”라며 “재원은 한정적인 만큼 복지의 효과를 끌어올리려면 ‘하후상박’, 어려운 사람들에게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노란봉투법’에 관해서도 “미래세대 희망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로빈슨 교수는 12월 서울시가 개최하는 ‘2025 서울 국제 디딤돌소득 포럼’에도 기조연사로 참석해 ‘사회경제적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정책 기제, 디딤돌소득’을 주제로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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