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나치게 단기적인 목표에 치중하고 성급하게 진로를 바꾼다는 비판을 자주 받는다. 하지만 사실 중요 현안에 대해 워싱턴은 놀랄 만큼 일관된 외교정책을 유지해왔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시작된 후 25년간 초당적으로 확대돼 지금까지 이어진 인도에 대한 전략적 접근을 생각해보라. 인도를 향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적대감은 그의 1기 행정부를 비롯해 역대 정권이 추진했던 정책을 완전히 뒤집었다. 만약 인도에 대한 적대적 자세를 유지한다면 이는 가장 큰 전략적 실수가 될 수 있다.
냉전 이후 미국은 인도를 상대로 끈질긴 구애를 시작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성공적인 2000년도 인도 방문은 냉랭했던 양국 관계에 온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나 중대한 관계 변화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시절에 일어났다. 부시 행정부는 중국의 굴기가 국제 체제를 변화시키고 있으며 당시 세계 2위의 인구 대국이었던 인도가 중국에 대한 가장 강력한 견제 세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했다. 경제개혁 추진과 함께 세계 질서에 통합되기 시작한 뉴델리와 워싱턴 사이의 긴밀한 관계는 중국의 아시아 지배를 막고 이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확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동반 관계에는 한 가지 커다란 장애물이 있었다. 바로 인도의 핵무기 프로그램이다. 미국은 핵 확산 방지를 위해 핵실험을 실시한 인도에 강도 높은 제재를 가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인도를 프랑스나 영국 혹은 중국과 유사한 반열에 속한 강대국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판단하에 인도의 고립을 종식시키는 역사적인 핵 협정을 제안했다. 만모한 싱 전 인도 총리가 능란한 협상력을 발휘해 이끌어낸 협정은 양국 관계의 분수령이 됐다. 이후 워싱턴과 뉴델리는 여러 측면에서 한층 가까워졌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인도가 미국의 아시아 중심 전략에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뉴델리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했고 양국 간 교역을 대폭 확대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정치적으로 한 단계 더 도약했다. 미국·호주·일본과 인도를 포함하는 방위 그룹인 쿼드(Quad)를 격상시키고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도 트럼프 1기의 유산을 계승해 국방과 경제 분야에서 인도와 더욱 긴밀하게 협력했다. 인도는 전투기부터 컴퓨터 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산 분야에서 미국과 협력할 계획이었다.
재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다 할 경고도 없이 미국 외교관들이 수십 년 동안 힘들여 이룩한 성과를 허물었다. 그는 시리아·미얀마와 함께 인도를 50% 관세가 부과되는 국가 범주에 집어넣은 반면 파키스탄에는 19%의 관세를 책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키스탄에서 공동으로 석유탐사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아마도 성과 없이 끝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파키스탄 육군참모총장과 비공개 만남을 가진 데 이어 가족 지원 회사가 파키스탄 암호화폐위원회와 제휴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은밀한 모종의 뒷거래가 이루어진 게 아니냐는 의혹이 증폭됐다.
트럼프는 인도 경제가 “죽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 인도는 지난 수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경제 대국으로 현재 세계 4위에 해당하는 경제 규모를 갖고 있다. 또 세계 2위의 무기 수입국이고 스마트폰 사용자 수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인도는 오랫동안 비동맹 상태를 유지해왔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 집권 이후 인도는 모든 나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다자 동맹 방식을 채택했다. 끈질긴 미국의 외교는 인도의 이런 입장을 약화시켰고,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워싱턴과의 긴밀한 관계를 발전시켰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설사 트럼프가 다시 방향을 바꾼다 해도 양국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 인도인들은 우방을 함부로 대하는 미국의 오만불손한 본색이 여지없이 드러났다고 믿는다.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인도인들이 러시아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심지어 중국과도 관계 개선을 이뤄야 한다고 믿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인도는 트럼프의 모욕적인 행동에 충격과 분노를 금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인도에 갈 때마다 현지 지도자들에게 그들의 운명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국가와 가장 큰 민주주의국가 사이의 위대한 동반자 관계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면서 미국과 더욱 가까운 관계를 구축하라고 촉구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이제는 필자의 조언을 따르도록 그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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