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29·미국)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플레이오프(PO) 최종전 투어 챔피언십 개막을 하루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런 말을 했다. “미리 점수를 안고 들어가서 편하게 출발하는 일은 없겠다. 지금처럼 모든 선수가 이븐파로 시작하는 방식이 훨씬 좋다.” 우승하면 1000만 달러(약 139억 원)인 대회에서 그가 10언더파를 안고 출발할 수도 있었던 선수라는 점을 떠올리면 고개를 갸웃할 내용이었다.
22일(한국 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이스트레이크GC(파70)에서 열린 대회 1라운드. 셰플러는 첫날부터 리더보드 상단을 차지하며 전날 보여준 자신감의 근거를 확인했다. 보기 없이 버디만 7개로 7언더파 63타를 친 그는 단독 선두 러셀 헨리(미국)에 2타 뒤진 2위에 이름을 올렸다. 18라운드 연속 언더파 행진도 이어갔다.
이 대회는 페덱스컵 랭킹 상위 30명만 출전하는 ‘왕중왕전’ 성격의 대회다. 대회 총상금이 무려 4000만 달러. 지난주 PO 2차전 BMW 챔피언십의 두 배다. 지난해까지는 페덱스컵 랭킹에 따라 1위 10언더파, 2위 8언더파, 3위 7언더파 등 30명의 선수가 각기 다른 위치에서 시작하는 차등타수제를 운영했으나 올해는 폐지됐다. 지난해 10언더파를 안고 시작해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차지했던 셰플러는 올해도 페덱스컵 랭킹 1위로 가장 큰 혜택을 받을 수 있었지만 오히려 폐지를 반겼다.
셰플러는 이번 대회에서 사상 첫 투어 챔피언십 2연패에 도전한다. 2007년 시작된 이 대회는 지금까지 2년 연속 우승자가 나오지 않았다. 지난 시즌 7승을 몰아친 셰플러는 올해도 메이저 2승을 포함해 5승을 수확했다. 직전 대회인 PO 2차전 정상에 섰고 최근 13개 대회 연속 톱10으로 이번 대회 우승도 얼마든 넘볼 경기력이다.
PO 2차전에서 임시 캐디를 썼던 셰플러는 이날 전담 캐디인 테드 스콧과 다시 호흡을 맞췄다. 83.33%(15/18)로 30명의 선수 중 그린 적중률이 가장 좋았고 그린을 놓쳐도 파나 그보다 좋은 점수를 내는 스크램블링도 1위(100%)에 올랐다. 특히 마지막 두 홀에서는 타수를 줄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연속 버디를 잡는 뒷심이 돋보였다. 17번 홀(파4)에서 8m 넘는 버디 퍼트를 넣었고 18번 홀(파5)에서는 그린 앞 벙커에서 친 세 번째 샷을 핀 1.5m 안쪽에 붙여 타수를 더 줄였다.
통산 5승의 헨리는 보기 없이 이글 1개, 버디 7개를 쓸어 담아 9언더파 단독 선두에 나섰다. 16~18번 홀 버디-버디-버디 피날레가 멋졌다. 세계 랭킹과 페덱스컵 랭킹 모두 2위인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공동 8위(4언더파)로 첫날을 마쳤다. 17번 홀에서 보기를 범한 매킬로이는 18번 홀에서 구조물을 이용한 ‘바운스 백’ 버디로 현장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그린 앞 벙커에서 친 세 번째 샷이 너무 컸던 나머지 그린 뒤에 있는 관중석까지 갔는데 절묘하게 맞고 튀어나와 핀 약 5m에 멈췄다. 매킬로이가 버디 퍼트를 넣으면서 관중의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이 대회에 나선 임성재는 버디 5개와 보기 3개의 공동 17위(2언더파)로 출발했다. 7년 연속 투어 챔피언십에 출전한 임성재는 지난해 7위를 차지했고 2022년에는 한국인 역대 최고 성적인 공동 2위까지 오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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