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에 참석한 A씨. 대화는 자연스럽게 퇴직과 노후 준비 이야기로 이어졌고 퇴직연금 수익률이 화제가 되었다. 그동안 정기예금으로만 포트폴리오를 운용해온 A씨의 수익률은 참석자들 가운데 가장 낮은 편이었다. 그는 수익률 제고를 위해 예금 외의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노후자금인 연금은 손실이 나면 안 된다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 보니 원리금 보장형 상품으로 운용하는 비율이 높다. 2022년 7월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도입되고 2023년 7월부터 본격 시행되면서 타깃데이트펀드(TDF)에 자동 투자되는 적립금도 늘고 있지만 전체 가입자의 약 84%는 지금도 초저위험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 머물러 있다.
현재 물가상승률을 감안할 때 2% 수준의 예금 금리로는 실질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현실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연금 운용에서도 수익률을 고려한 전략이 확산되고 있으나 의외로 본인이 보유한 DC나 IRP가 어떤 상품에 투자되고 있는지, 수익률이 몇 %인지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 투자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크고 바쁜 일상 속에서 연금 운용에 대해 공부할 시간이 부족한 탓일 것이다.
A씨를 비롯해 퇴직연금 운용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은퇴 시점에 맞춰 주식과 채권의 비중을 자동으로 조절해주는 TDF를 활용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쉽게 말해 TDF는 특정 은퇴 시점을 기준으로 자산 배분을 자동 조정하는 자율주행형 투자 상품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자동화 덕분에 투자자가 시장타이밍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예를 들어 시장이 하락할 때 공포심에 매도했다가 반등 이후 뒤늦게 다시 매수하는 흔한 실수를 줄일 수 있다.
이처럼 TDF는 자동 운용이 가능하지만 어떤 ‘빈티지(Vintage)’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전략이 달라진다. TDF를 선택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할 부분은 상품명 뒤에 붙은 숫자이다. 이를 빈티지라고 부르는데 이 숫자는 은퇴 예상 시점을 기준으로 한다. 예를 들어 1980년생이라면 출생연도에 60을 더해 나온 연도가 자신의 은퇴 시점과 유사하다. 보다 보수적으로 운용하고 싶다면 출생연도에 55를, 좀 더 공격적인 투자를 원하면 65를 더해 선택할 수 있다. 이렇게 정해진 빈티지를 기준으로 은퇴 시점이 멀수록 주식 비중을 높이고 가까워질수록 채권 등 안전자산 비중을 늘리는 글라이드 패스(Glide Path)전략이 자동으로 적용된다. 이 전략 덕분에 투자자가 일일이 매매나 전략 수정을 하지 않아도 일정 수준의 수익과 위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런 특징을 이해했다면 TDF와 직접 운용 전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직접 ETF나 펀드를 조합하면 수수료를 낮출 수 있지만 자산 배분과 리밸런싱에 꾸준히 신경 써야 한다. 반면 TDF는 그 과정을 자동화해 편의성을 높이고 자산 배분에 대한 부담을 줄여준다. 따라서 비용과 편의성, 맞춤화 수준 사이에서 자신에게 맞는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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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점에서 TDF는 자동 운용뿐 아니라 하나의 상품으로 국내외 주식·채권·대체자산 등 다양한 자산에 분산 투자할 수 있어 차별화된다. 금융 지식이 부족해도 전문가가 자산 배분과 리밸런싱을 대신 관리해 주기 때문에 장기투자에 참여하기 수월하며 매월 적립식으로 투자하면 장기적인 복리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TDF가 퇴직연금의 핵심 상품으로 자리 잡았으며 401(k) 가입자의 절반 이상이 이를 선택하고 있다. 국내 또한 디폴트옵션 시행 이후 TDF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집계에 따르면 TDF는 2016년 국내 도입 이후 8년 만에 설정액 10조 원을 돌파했고, 운용 규모는 2024년 5월 기준 11조 원, 2025년 3월 말에는 12조 7000억 원에 이르렀다. 이 같은 성장세는 성과 측면에서도 확인된다. 실제로 2024년 국내 TDF의 평균 수익률은 10.09%에 달했다.
물론 TDF라고 해서 모두 같은 방식으로 운용되는 것은 아니다. 운용사마다 자산배분 비율, 리스크 관리 기준, 수수료 구조 등이 다르기 때문에, 연 평균 수익률이 비슷해 보여도 실제 투자자 입장에서 느끼는 변동성이나 안정감에는 차이가 날 수 있다. 무엇보다 TDF는 수익을 보장하는 상품이 아니며 시장 상황에 따라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실제로 2022년에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주식과 채권이 동시에 부진하면서, 다수의 TDF성과가 일시적으로 악화된 사례도 있었다.
따라서 운용 중간 중간 시장 흐름과 자산 배분 상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면서 내 투자 성향과 목표에 부합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TDF가 완벽한 해답은 아니지만 은퇴시점에 맞춰 자산배분을 자동으로 조정해주는 것은 분명한 강점이다. 퇴직연금을 직접 관리하기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진다면 이제는 자율운행에 맡겨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한 번쯤 퇴직연금 계좌를 살펴보고 어떤 방식으로 운용할지 고민해 볼 때다. 퇴직연금 운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미래 준비의 시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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