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중국·러시아의 밀착이 동북아 정세를 격랑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일 베이징에 도착하면 사상 첫 북중러 정상회의가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3일 북한 최고 지도자로서 66년 만에 오를 톈안먼 망루는 김 위원장의 다자 외교 데뷔 무대가 될 것이다.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26개국 정상들이 참석한다. 앞서 1일 상하이협력기구(SCO)는 안보위협대응기구와 개발은행을 설립하고 미국의 관세 위협에 대응해 다자주의를 옹호하는 ‘톈진 선언’을 발표했다.
중국은 열병식에서 노골적인 무력시위도 준비 중이다. 외신들은 ‘괌 킬러’로 불리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둥펑-26’의 개량형인 ‘둥펑-26D’가 처음 공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실상 미국을 겨냥한 군사력 과시다. 시 주석이 강화한 반트럼프 연대의 바통은 3~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으로 푸틴 대통령이 이어받아 반서방 블록 외교를 강화한다. 중러의 대미 견제 구도 속에서 북한의 노림수는 ‘몸값 올리기’다. 방중 직전 자강도의 신형 미사일 공장을 찾은 김 위원장은 이번 방중으로 기울어진 외교의 축을 조정하고 북중 혈맹을 내세워 미국을 압박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북한이 정세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모습은 지나치게 안일하다. 국방부는 지난달 31일 대북 심리전 라디오 방송인 ‘자유의 소리’ 송출을 중단했다. 2010년 5월 천안함 피격 사건을 계기로 재개된 지 15년 만이다. 정부는 남북 긴장 완화를 위한 유화책이라고 하지만 시점과 실효성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북중러 밀착으로 한반도의 안보 지형이 흔들리는 지금 필요한 것은 격랑을 이겨낼 치밀한 전략이다. 중국이 주한미군 현대화를 대중 견제로 간주하고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과시하면서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 외교는 진짜 시험대에 올랐다. ‘서울 패싱’이 북미 관계를 넘어 중국에서도 현실화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북중러의 거센 반격 속에서 한미 동맹과 한미일 공조 체제를 대폭 강화하고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 등 자강 노력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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