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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법치주의 버리고 법률 전쟁 벌이는 美

■메건 매카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당신이 진보주의자라면 최근 존 볼튼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에 경계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의 혐의가 드러난다면 대통령이 누구이건 볼턴은 국가 안보를 침해한 혐의로 기소될 수 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캐시 파텔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볼턴을 비롯해 그들의 정적들에 대한 법률전(lawfare)을 지지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혹을 제기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것은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다. 이번 사건에서 볼턴의 혐의가 입증된다 해도 정부의 엄정한 법 집행에 대한 우리의 불신은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 집행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면 우리는 사법적 농간에 취약해진다. 석연치 않은 동기를 지닌 검사는 늘 무언가를 찾아내 기소할 수 있다. 중립적 제도의 가치를 믿는 사람들은 법치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그건 단지 트럼프를 비난하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트럼프를 잡으려는 욕심에서 중립적 제도의 규범을 위반한 민주당 또한 비난 받아 마땅하다.

우연의 일치인지 볼턴에 대한 급습이 있기 하루 전 뉴욕 항소법원은 지난해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법무 장관이 트럼프를 상대로 벌인 민사소송에서 아서 엔고론 맨해턴 지방법원 판사가 선고한 총 5억 달러 가량의 벌금 폭탄을 무효화했다. 이 판결은 트럼프가 사기를 저질렀다는 하급 법원의 결정을 유지했지만 사기의 정도에 대한 법관들의 의견이 갈렸고, 이들 가운데 한 명은 평결을 완전히 기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항소심 판결에서 데이비드 프리드먼 판사가 내놓은 별도 의견은 공정성과는 거리가 먼 사법 제도의 추한 민낯을 보여준다.

트럼프가 뉴욕의 주법에 위배되는 범죄를 저질렀다는 증거를 확보하기도 전에 제임스는 그녀의 직위를 이용해 트럼프를 괴롭히려 했다. 이는 뉴욕주 법무 장관 후보였던 그녀가 선거운동 당시 직접 밝힌 내용이다. 2022년 선거에서 승리한 제임스는 트럼프가 대출과 보험을 신청하면서 자산 가치를 부풀렸다며 공격적인 소송을 제기했다. 피해자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사기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그녀는 광범위한 관련 법령을 전례가 없는 방식으로 해석했다.



재정적 청렴성이라는 규범을 지키기 위해서도 트럼프는 어차피 처벌을 받아야 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처벌을 받은 유일한 사람이 양극화의 정점에 선 정치적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엔고론 판사가 부과한 손해배상액은 현실 세계에서 발생 가능한 피해의 정도를 크게 벗어났다. 항소 법원의 판결문을 읽어보면 엔고론 판사가 내린 결정의 밑자락에 트럼프에 대한 일종의 적대감이 깔려있다는 의심을 떨치기 힘들다.

피고인이 누구인가에 상관없이 재판은 정당하고 동일한 절차대로 진행됐을 것이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터무니없는 주장도 법의 논리로 포장하면 그럴싸하게 들릴 수 있다. 사법부와 검찰의 과도한 권한 행사는 트럼프가 정적을 탄압하기 위해 법을 이용하는 것만큼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한다. 이는 피고인이 누구냐가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 처벌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위배된다.

지난 10년 동안 필자는 불에는 불로 맞서야 한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스스로 트럼프가 됨으로써 트럼프에 맞서고, 진보적인 제도를 지키기 위해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언론의 객관성이라는 규범을 내동댕이치며 검찰권을 유례 없이 남용하는 파괴적인 경로의 지름길을 택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들은 대단히 추한 발상이어서 트럼프를 막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추가 기소 위험은 다시 권력을 잡겠다는 트럼프의 의지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고 유권자들도 그의 권력을 되찾아주는데 열의를 보였다. 2023년 선거전 초반에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쪽으로 쏠렸던 공화당원들이 트럼프가 기소된 이후 그에게 힘을 실어주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또 자신이 박해를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게임 전체가 조작됐다는 트럼프의 믿음을 정당화시켰고 정적을 짓밟고자 하는 욕망을 증폭시킨 것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트럼프의 행동에 대한 비난을 바꾸지는 못한다. 트럼프의 권위주의적 본능은 그 자신의 것이고 미국의 제도를 쑥대밭으로 만든 책임도 피할 수 없다. 그보다는 법치주의는 법치주의를 통해서만 확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먼저 법을 이용해 정적들을 제거한 다음 어떻게든 법치주의를 재확립하는 식의 기이한 수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수단이 효과가 없을 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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