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아시아 대표 아트 허브로서 자리 굳히기에 돌입했다. 3일 VIP 오픈을 시작으로 화려하게 막을 올린 글로벌 미술 축제 ‘키아프리즈(키아프+프리즈)’는 글로벌 미술 시장의 전반적인 침체 속에서도 기대 이상의 첫날 성적표를 썼다. 연작이긴 해도 450만 달러(약 62억 원) 가치의 작품이 단숨에 판매되며 4회째를 맞는 행사의 최고가 기록을 세웠고 100만~200만 달러의 고가 미술품도 순조롭게 거래됐다. 축제를 즐기는 관람객 수도 예년보다 늘었다는 평가 속에서 앞으로 펼쳐질 총 닷새 간의 여정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이날 서울 코엑스 전관에서 개막한 ‘키아프리즈’는 시작부터 국내외 다양한 분야의 셀러브리티들이 총출동하며 분위기를 달궜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의 부인 김혜경 여사가 깜짝 방문해 한국을 대표하는 아트페어인 키아프부터 프리즈 서울까지 1시간 넘게 주요 부스를 돌아봤다. 영부인이 ‘키아프리즈’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인 만큼 국내외 갤러리 관계자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도 첫날 일찌감치 행사장을 찾아 분위기를 살폈고 미술 애호가로 잘 알려진 방탄소년단(BTS)의 RM, 블랙핑크 리사와 배우 임수정, 김희선 등도 잇따라 코엑스에 도착했다.
아트페어의 본질인 미술품 거래가 예상과 달리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참여 갤러리들의 분위기가 고조됐다. 특히 글로벌 메가 갤러리 하우저앤워스가 미국 추상 미술 거장 마크 브래드포드의 3점 연작을 450만 달러에 판매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탄성이 나왔다. 2022년 프리즈 서울이 열린 이후 단일 거래 금액 기준으로 최고가 기록을 세운 것이다. 하우저앤워스는 이날 판매액만 800만 달러(약 111억 원)가 넘는다고 밝혔다. 또 타데우스 로팍이 독일 현대미술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추상 작품을 180만 유로(약 29억 원)에, 화이트큐브도 같은 작가의 대작을 130만 유로(약 21억 원)에 판매했다. 리만 머핀 역시 미국 기반의 미니멀리즘 여성 작가 라이자 루의 작품을 24만 달러에 판매했고 컬렉터들에 인기가 높아 대기 리스트가 길었던 서도호와 헤르난 바스의 작품도 여럿 판매했다고 밝혔다.
국내 갤러리들도 선전했다. 학고재는 김환기의 작품을 20억 원에 판매했고 국제갤러리 역시 박서보의 묘법을 8억 원 상당에 판매한 것을 비롯해 스위스 작가 우고 론디노네의 돌 설치 작품 시리즈를 모두 판매하며 첫날에만 31건을 거래했다. 선화랑도 이정지의 200호 작품을, 조현화랑은 이배의 조각을 각각 팔았다. 지난해 100만 달러 이상 고가 작품의 첫날 판매가 한 두점에 그쳤던것과 비교해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됐다.
글로벌 거장들의 대작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키아프리즈’의 장점도 여전했다. 350만 달러 상당의 아돌프 고틀립의 회화를 비롯해 이우환, 쿠사마 야요이, 무라카미 다카시 등 인기 작가들이 대작이 전시장 곳곳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며 관람객의 눈을 즐겁게 했다. 서울 청담동 갤러리에서 우고 론디노네의 풍경화 신작을 전시 중인 글래드스톤의 경우 그중 가장 대작을 프리즈에서만 공개했다.
미술계 관계자 상당수는 올해 4회째 공동 개최된 ‘키아프리즈’가 자신만의 색을 가진 아시아 아트 허브로 자리 잡은 듯 보인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미술 시장 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기대 이상의 거래를 이뤄낸 것에 만족을 표현하기도 했다. 올해까지 4회 연속 참가한 한 갤러리 관계자는 “이제는 이 페어를 찾는 컬렉터들의 성격이나 스타일을 잘 이해하게 됐고 선호하는 작품 위주로 구성하다 보니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것 같다”고 말했다.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의 설립자이자 대표인 타데우스 로팍은 “올해 프리즈 서울의 첫날은 전반적으로 에너지가 고조됐다”며 “특히 높은 결단력을 보이는 진지한 컬렉터들의 참석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 보였다”고 말했다.
다만 첫날의 분위기는 글로벌 주요 갤러리 120여 곳이 총출동한 프리즈 서울로 쏠렸다. 관람객들이 개막 직후 프리즈를 먼저 들르고 키아프를 찾는 순서로 움직이다보니 키아프의 경우 조금 늦게 관람객이 채워지기 시작했다는 후문이다. 미술품 거래도 국내에 기반을 둔 글로벌 갤러리와 일부 국내 대형 갤러리 위주로 거래가 이뤄져 온도차가 났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 3월 홍콩 아트바젤부터 시작된 분위기를 설명하는 말이 ‘신중한 낙관론’”이라며 “한국 역시 미술 관람 문화의 확산으로 ‘키아프리즈’의 관람객은 예년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거래는 대형 갤러리의 알려진 작가 위주로 이뤄지는 ‘선별적’ 분위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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