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는 ‘신인 돌풍’으로 뜨겁다. 23개 대회에서 모두 서로 다른 얼굴의 챔피언이 탄생했는데, 그 중 7명이 ‘2025년 루키’들이다. 신인 7명이 우승을 한 건 2009년 이후 처음이다. 만약 새로운 신인 우승이 더 나온다면 그건 1980년 이래 최다 우승자 신기록이 된다. 아쉽게도 신인 챔피언들 중에는 대한민국 유일의 LPGA 신인 윤이나의 이름은 빠져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윤이나의 목표는 분명했다. 신인왕이 되는 꿈을 꿨다. 하지만 지금 윤이나의 신인 랭킹은 정확히 10위다. 신인 챔피언 7명이 모두 윤이나 위에 있다.
윤이나는 작년 말 활동 무대를 옮기는 것을 두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한 해 쯤 더 국내 무대에서 뛰다가 천천히 미국으로 건너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골프를 성장 시키고 싶은 욕심이 너무 컸기 때문에 일단 부딪쳐보자는 마음으로 미국행을 택했다.
그런데 하필 올해 LPGA 무대에는 역대 가장 강력한 신인 바람이 불고 있다. 윤이나는 과연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일까. 윤이나는 정말 운이 없는 선수일까.
인간은 늘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 길의 결과를 모른 채 한 길을 택해야 한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는 그의 대표 시 ‘가지 않은 길’에서 선택과 후회라는 인간의 감정을 가슴 먹먹하게 표현했다.
‘노란 숲속에 두 갈래의 길이 나 있었습니다’로 시작하는 프로스트의 시는 인간은 끊임없이 갈림길을 만나고 어느 한 길을 선택해야 하며 세월이 흐른 뒤에는 그 결정에 대해 후회하기도 한다고 얘기한다.
윤이나가 택한 길은 ‘시련’이라는 암초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깜깜한 길이었다. 사나운 폭풍이 몰아치는 망망대해 위를 위태롭게 항해하는 작은 배 한 척에 외로이 몸을 의지한 윤이나 모습이 겹쳐 보일 정도다.
‘가지 않은 길’의 끝은 이렇게 맺는다. ‘먼 훗날에 나는 어디에선가 /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 그리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노라고 / 그래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선택한 길에 대해 만족하기 보다는 약간 후회의 감정이 느껴지는 마무리다.
하지만 윤이나는 자신의 선택에 대해 조금이라도 후회하거나 답답한 성적에 의기소침해 하지도 않는다. 국내 무대로 돌아갈 생각은 더욱 없다. 성적이 안 나 힘들고 부족한 자신에 대해 늘 화난다고 말하면서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윤이나’를 찾아내고 있다.
경쟁자가 많다는 건 불운이 아니라 행운일 수도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성장의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화가 찾아온 것 같지만 언젠가 복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시련은 사람을 단련한다. 힘든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윤이나에게 올해는 자신의 성장을 위해 택한 가장 ‘운수 좋은 해’일 수 있다.
누구라도 컷 탈락할 수 있고 누구라도 우승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의 LPGA 투어다. 8번째 신인 우승이 윤이나의 몫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신인 윤이나’에게 필요한 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가지 않은 길’보다 ‘선택한 길’이 무조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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