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300여 명이 이민 당국에 체포된 사건과 관련해 구금 근로자 석방 교섭이 마무리됐다고 밝히면서 일단 급한 불은 끈 모습이다. 다만 재계와 정치권에서는 비자 체계 개선 등 후속 대책 마련이라는 과제가 남은 만큼 아직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반응이다. 여기에 구금된 한국인들의 귀국에 따른 공백으로 현지 공정 진행에 차질 또한 우려된다. 대규모 구금 사태 재발 가능성이 여전히 있는 만큼 미국 현지 투자를 진행하는 우리 기업들도 예전과 같은 적극적인 업무 활동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7일 서울 총리 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협의회 모두발언에서 “구금된 근로자의 석방 교섭이 마무리됐다”며 “국민의 신속한 석방과 해당 투자 프로젝트의 안정적 이행이라는 목표를 조화롭게 달성할 수 있도록 모든 대책을 실천력 있게 담보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유사 사례 방지를 위해 대미 프로젝트 관련 출장자의 비자 체계 점검·개선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 불과 2주도 안 돼 대규모 구금 사태가 발생하면서 한미 동맹 균열 등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관련 부처와 경제단체·기업이 조속한 대응에 나서면서 조기 수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정부도 곧장 재외국민보호대책본부를 설치해 대책 마련에 나섰고, 현지 영사를 이민세관단속국(ICE) 구치소 현장으로 보내 구금된 한국 기업 직원들을 면담하며 건강 상태 점검 등을 이어갔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르면 8일 미국을 방문해 구금된 한국인 석방을 위한 행정절차 마무리 작업에 나설 방침이다. 당국은 추방이 아닌 자진 출국 형식의 석방 방식을 최우선순위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번 구금 사태의 원인인 비자 문제에 대한 우리 측의 사전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문제 해결에 우선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부터 현지 언론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와 수개월간 정부 기관의 수사가 있었지만 한국 본사와 현지법인이 충분한 사전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우리 기업의 리스크 관리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이 불가피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여기에 12·3 비상계엄의 여파로 한동안 정부 공백이 이어진 데다 이재명 정부로서도 관세 협상이라는 ‘급한 불’부터 끄는 데 집중하느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뇌관이라 볼 수 있는 불법체류 문제에 소홀했던 측면도 있었다.
단속 대상이 된 B-1(단기 상용) 비자는 상업·산업 노동자들의 장비·기계의 설치·작동·보수 및 현지 직원 교육에 활용될 수 있으나, 실제 건설 작업 수행은 가능하지 않다. 급여도 미국 내 사업체에서 지급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 측이 우리 국민 중 B-1 비자 소지자에 대해 동 비자 체류 목적에 부합하는 활동이 이뤄졌는지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외교부는 기업들과의 수시 면담 및 설명회 등을 통해 미국 측 비자 발급 요건의 유의 사항을 지속 안내해왔다”며 “미국 측 각급 주요 인사와 접촉할 때마다 우리 기업의 비자 문제 해결 및 전문인력 대상 별도 비자 쿼터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해왔다”고 부연했다.
2012년부터 미 의회 내 한국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국인 전문인력 대상 별도 비자 쿼터(E-4 비자)를 신설하는 ‘한국동반자법’ 입법이 추진돼왔지만 트럼프 행정부 들어 관련 활동은 힘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조지아주와 같은 사태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만큼 재발 방지에 집중할 계획이다. 외교부는 “여타 미국 지역 재외공관을 통해 우리 대미 진출 기업 근로자의 체류 현황을 점검하며 유사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