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노동조합이 정부의 공공기관 재지정·조직 분리 방침에 반발해 집단행동을 개시했다. 노조 측은 이찬진 금감원장을 향해 ‘조직 개편 저지에 나서달라’고 촉구했지만 이 원장은 침묵을 지켰다.
금감원 노조는 9일 여의도 금감원 사옥에서 ‘금융감독체계 개편 반대 출근길 시위’를 열었다. 검은색 상의와 검은색 마스크를 착용한 직원 수백 명이 모이면서 시위가 열린 1층 로비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주최 측은 참여인원을 600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 7일 당정은 금감원 내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분리해 ‘금융소비자보호원’이란 별도 조직으로 세우고, 금감원·금소원을 공공기관으로 재지정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금감원 직원들은 △금소원 분리 철회 △공공기관 지정 철회 △내부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등을 요구했다. 노조 측 관계자는 “금융 감독과 검사, 소비자 보호는 떨어질 수 없다”며 “감독원을 강제로 찢어 놓으려 한다”고 반발했다. 이어 “통합금융감독원이 출범한 건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해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라며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조직개편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특히 공공기관 재지정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하다. 공공기관 재지정 시 예산·조직 인사 등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강화되면서 처우, 복지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노조 관계자는 “공공기관 재지정을 하겠다고 이야기가 나온 게 (불과) 2~3일 전이다. 몇몇 공무원에 의해서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된 것 같아 안타깝다”며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정부에서 독립된 채로 금융감독을 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간부들에 대한 규탄 목소리도 직접적으로 나왔다. 금감원 조사역 A씨는 자유발언을 통해 “이 원장께 한 말씀 드린다. ‘정녕 이것이 최선이냐’”며 “외부 은행·보험사·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날 때처럼 내부 목소리도 한 번만 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전일 내부 설명회에서 ‘개편안 수용’을 전제로 발언한 이세훈 수석부원장을 향해선 “2인자가 할 이야기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노조 측 인사 B씨는 이 부위원장이 금소원 분리 이후 인적교류를 추진한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어이없는 말”이라며 “아무런 고민 없이 막 질러댄다. 부위원장은 우리 편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 원장은 출근길 도중 집회 현장을 마주했지만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금감원 노조 측은 이 원장에게 면담을 요청해 둔 상황이다.
노조위원장 대행직을 맡고 있는 정보섭 부위원장은 “어제 원장님께 정식 공문을 통해 면담을 요청했고, 원장님 다름대로 계획이 있을 걸로 생각한다”며 “적극적으로 도와주실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조 측은 향후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총파업 등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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