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자녀를 낳은 동성커플의 경우 두 사람 모두에게 부모의 지위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0일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 법원은 체외수정(IVF)을 통해 아들을 낳은 레즈비언 부부 중 출산한 여성에게만 부모의 지위를 인정한 것은 위법하다고 지난 9일 1심 판결을 했다.
법원은 출생신고를 접수한 당국이 동성부부 모두를 부모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자녀의 프라이버시와 가족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앞서 중국인 여성 R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홍콩 영주권자인 여성 B는 2019년 해외에서 결혼한 뒤 IVF를 통해 아들을 출산했다. R이 난자를 제공해 B가 2021년 출산을 한 이들은 홍콩 당국이 출생신고에서 출산한 B만 법적 부모로 인정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R이 자기 아들과 유전적으로 연결된 유일한 생물학적 가족임에도 어떠한 법적 지위도 갖지 못했다고 SCMP는 짚었다.
이후 이들은 2022년 '부모와 자녀 조례'의 적용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하는 법적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법원 또한 R이 관습법상 부모라고 표명은 했지만, 법원은 입법위원들의 입법 역할에 대한 침해가 우려된다면서 R이 부모로서 어떤 법적 권리를 누릴 수 있는지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아들의 부모에 B만이 아닌 R까지 포함해 재등록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법무부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2023년 사법심사를 청구했다.
이번에 이들 부부의 손을 들어준 러셀 콜맨 판사는 "자녀의 출생증명서가 실제 가족관계를 정확하게 기재하지 않아 아들이 신념 체계와 자아를 형성해나가는 과정에서 행정적, 실무적 장애물들에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출생 증명서에 K의 실제 가족 관계를 부정확하게 묘사한 것이 어린 시절 아이의 사생활과 가족 권리를 방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R을 법정후견인으로 지정하라는 정부의 제안은 충분하고 효과적인 대안이 아니다"라면서 "요컨대 '부모는 그냥 부모인 것'(a parent is a parent)"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성커플의 관계가 파탄에 이를 경우 규율할 법제가 없다는 정부의 우려를 인정하면서도 필요시 법원이 자녀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부모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제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파도를 막으려 했던 크누트 대왕의 전설을 언급하면서 현실에서 일어나는 불가피한 일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콩에서는 세금 또는 상속 등 제한된 목적에 한해서만 동성커플의 권리가 인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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