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상속세 공제액을 18억 원으로 높일 것을 지시하면서 28년째 묵혀 있던 공제 제도가 대폭 손질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편 논의가 단순히 공제액 인상에 머물지 않고 제도 전반에 숨어 있는 왜곡 요인들을 함께 개선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정상속분과 연동된 탓에 자녀가 많을수록 세 부담이 커지는 배우자공제, 여전히 선진국 대비 높은 최고세율 등이 대표적 문제로 꼽힌다.
12일 세무 업계에 따르면 현재 최대 30억 원까지 받을 수 있는 배우자 상속 공제의 개편 필요성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배우자공제는 일괄공제 5억 원과 함께 상속세 공제의 뼈대를 이루는 제도다. 배우자가 상속받은 금액이 없거나 5억 원 미만이면 5억 원을 공제하고, 5억 원 이상이면 ‘법정상속분’과 ‘30억 원’ 중 적은 금액을 공제한다. 문제는 이 제도가 법정상속분과 연계돼 있다 보니 자녀가 많을수록 배우자공제액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상속 재산이 같아도 자녀 수가 많은 가구의 상속세 부담이 더 커지는 구조다.
예를 들어 서울 용산의 아파트(20억 원)에 같이 살던 배우자 사망 시 남은 배우자는 무자녀일 경우 상속세가 없다. 자녀 2명이 있으면 배우자 지분이 42.86%로 줄어 배우자 공제액이 8억 6000만 원으로 줄어든다. 일괄공제 5억 원을 합쳐도 총공제액은 13억 6000만 원에 불과해 6억 4000만 원이 과세표준이 된다. 구간별 세율과 누진 공제를 각각 적용하면 1억 3200만 원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자녀가 3명이면 세금은 1억 9000만 원까지 불어난다.
고경희 광교 세무법인 세무사는 “현 상속세 배우자공제 구조는 자녀가 많으면 상속세 부담이 늘어나는 역진적 구조”라면서 “출산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인 상황에서 이 같은 구조는 출산을 장려하는 정부 기조와도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배우자가 법정 지분을 한도로 상속 공제를 받는 규정은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남은 배우자가 별다른 소득 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 상속세 마련을 위해 살던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법정상속분과 1억 6000만 엔(약 14억 6000만 원) 중 큰 금액을 공제해 배우자와 자녀의 주거권을 보장해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배우자 상속 공제 규정의 ‘법정상속분 이내’라는 조건을 없애거나 ‘30억 원 이내’로 단일화하는 방안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처럼 ‘법정상속분 또는 30억 원 중 큰 금액 이내’로 개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최고세율 구간을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 대통령은 상속세율 인하에는 선을 그었지만 재계와 야당은 선진국 대비 높은 한국의 최고세율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50%)은 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이번 상속세 개편을 계기로 국회에 발의된 유산취득세 도입 방안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편 이 대통령의 지시대로 공제 한도가 18억 원으로 오르면 상속재산이 18억 원 안팎인 상속인의 세 부담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자녀 2명을 둔 배우자가 20억 원 아파트를 물려받을 경우 현행 제도에서는 1억 3200만 원을 내야 하지만 개편 후에는 77% 줄어든 3000만 원만 부담하면 된다. 상속세율과 과세 구간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18억 원 아파트까지는 상속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