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인 9·7 대책에 대해 비판에 나선 것은 가파르게 오르는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서울 지역의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서울 집값 상승의 책임을 오 시장에게 돌리려는 움직임을 정면으로 반박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오 시장이 임기 중 신속통합기획과 모아주택 등의 정책을 통해 민간 주도의 정비사업 활성화를 추진한 점을 내세워 서울 집값 상승의 불안감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오 시장은 11일 중랑구민회관에서 열린 행사 ‘대시민 정비사업 아카데미’ 강연에서 9·7 대책에 대해 "서울이 아닌 수도권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며 “서울의 경우에는 성균관대 야구장 부지 등 여유 부지 몇 군데 찾아서 4000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공급하겠다는 정도 외에는 언급이 별로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서울 집값 상승을 막을 방안으로 “압도적 속도와 규모로 주택을 공급해 주택 시장과 주거 안정 목표를 빠르게 달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오 시장은 서울시 주택 공급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민간 주도의 정비사업 지원을 제시하면서 “여러분(시민)이 주축이 되고 서울시는 최대한 행정적으로 도와드리는 게 저희들의 철학”이라고 설명했다. 대표 정책으로 주거정비지수제 폐지, 신속통합기획 도입, 모아주택·타운 도입 등을 들었다.
오 시장은 2021년 4월 보궐선거 당선으로 10년 만에 서울시장직에 복귀한 다음 전임 고(故) 박원순 시장 임기 동안 ‘뉴타운 출구전략’에 따라 393곳에 달하는 정비구역 지정 해제로 정체돼 있던 재건축·재개발 사업 정상화에 나섰다.
2021년 9월 도입된 주거정비지수제 폐지는 재개발 사업 구역 지정 요건을 완화한 정책이다. 기존에는 법적 요건인 노후 건물 수 3분의 2 이상, 구역 면적 1만 ㎡ 이상에 해당되더라도 구역 내 건물 연면적 60% 이상, 평가 점수 70점 이상인 주거정비지수제 기준을 충족해야 재개발 사업 구역 지정이 가능했다. 같은 시기에 도입된 신통기획은 서울시가 정비계획 수립 및 정비구역 지정 기간을 평균 5년 내외에서 2년으로 단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2022년 1월 도입된 모아주택은 이웃한 다가구·다세대주택 필지 소유자들이 개별 필지를 모아 공동으로 아파트 단지를 개발하는 소규모 정비사업이다. 모아타운은 여러 모아주택을 묶어 아파트 단지처럼 관리하고 생활편의시설을 확충하게 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신통기획을 통해 153곳에서 약 21만 가구, 모아주택은 168곳에서 약 3만 5000가구 규모의 주택이 각각 공급될 예정이다.
오 시장은 당분간 서울시의 주택 공급 정책이 큰 틀에서 변화가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큰 틀에서 각종 행정절차를 통합해 진행하는 등 속도전을 하겠다는 목표는 정해졌다”며 “서울시가 얼마나 진심으로 (주택 공급) 속도를 앞당기기 위해 노력을 했는지를 아마 다 지켜보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진심이 이제 앞으로도 계속되느냐에 달린 문제지 제도를 어떻게 더 바꾸고 뭐 하고 할 문제는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의 9·7 대책을 두고 “서울의 주택 공급, 특히 정비사업과 관련해 확보된 물량을 어떻게 시민·국민들께 알려드려서 부동산 시장 안정에 대한 확신을 심어드리느냐가 서울시의 숙제가 됐다는 의무감을 느낀다”면서 “조만간 저희의 정리된 생각을 발표할 기회를 가지도록 하겠다”며 서울시의 주택 공급 정책 관련 발표를 예고했다.
한편 오 시장은 최근 박 의원과 주택 공급 정책의 성과를 두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박 의원은 이달 6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신통기획·모아주택 모두를 합쳐도 사업인가 기준 예상되는 주택 공급 가구 수는 1만여 가구에 불과하며 착공 기준으로 보면 신통기획의 경우 사실상 0에 머물렀다”고 주장했다. 이에 오 시장은 페이스북 글에서 박 의원을 겨냥해 “재개발·재건축이 빵공장에서 빵 찍어내듯이 주택을 찍어내는 것으로 아시는 분이 있다”며 “18.5년 걸리는 것을 신통기획으로 13년까지 줄여놓았더니 왜 아직 성과가 없냐고 묻는 무지함에 기가 막히다”고 반박했다.
박 의원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직 도전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오 시장 역시 3연임을 위한 도전이 유력한 가운데 서울 주택 공급 정책이 지방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두성규 목민경제정책연구소 대표는 “6·27 대책은 가계부채 관리 대책의 성격이 강했던 반면 9·7 대책은 이재명 정부의 사실상 첫 부동산 정책”이라며 “오 시장은 내년 지방선거 도전을 위해 부동산 시장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9·7 대책 비판에 이어 정부 정책과 차별화하기 위한 행보를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