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에 체포·구금됐던 한국인 316명이 12일 전세기로 귀국했다. 한미 당국의 신속한 후속 조치로 안전하게 돌아온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 공장을 짓다 우리 국민이 쇠사슬에 묶여 구금된 장면은 한미 관계에 상처를 남겼다. 공사 현장의 중장비는 멈췄고 주차장은 텅 비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은 “이번 일로 최소 2~3개월의 공정이 지연될 것”이라고 했고, 블룸버그는 “경제적 파급효과는 이제 시작”이라고 지적했다.
구금자들이 풀려나 인천행 비행기에 오른 11일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한국은 협정을 수용하거나 관세를 내야 한다”며 강공에 나섰다.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 펀드 등 한미 무역 합의의 세부 조율에서 미국의 요구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한미는 이달 8일부터 진행된 실무 협의에서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우리 정부는 펀드의 대부분을 대출·보증 한도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미국 측은 직접 투자와 일본과 같은 방식의 수익 배분·투자처 결정 등을 요구했다. 러트닉 장관은 일본을 거론했지만 외화보유액이 우리보다 세 배나 많은 준기축통화국 일본과 우리는 처지가 다른 만큼 협상에 차분히 임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마냥 버티다가 협상의 틀까지 흔들리는 위험한 상황이 초래되도록 해서는 곤란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이익이 되지 않는 사인을 왜 하느냐”고 말했다. 이날 대통령실은 러트닉 장관의 발언에 “합리성과 공정성을 벗어난 합의는 없다”고 밝혔다. 원칙적으로 옳은 말이지만 한미 관세 협상에서 최우선 가치는 국익 수호와 기업 피해 최소화임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일본·독일은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췄지만 우리는 아직 25%다. 반도체·의약품의 최혜국대우도 미정이다. 때로는 유연함도 필요하다.
구금됐던 우리 국민의 귀국도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대미 투자 기업의 전문 인력 파견을 위해 한국인 전문직 종사자용 입국사증(E-4 비자) 신설을 이끌어내고 미국이 약속한 세제 혜택과 보조금 지급도 꼭 이행하게 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넘어야 할 고개가 수없이 많다”고 했다. 협상 과정에서 한미 양국이 감정을 앞세우다 고개를 더 늘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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