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랜도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미국 조지아주에서 일어난 한인 대규모 구금 사태와 관련해 유감을 표하면서 유사 사태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 미국 고위 당국자가 공개적으로 유감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미 양국은 또 이번 구금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된 비자 제도 개선을 위한 후속 논의를 속도감 있게 이어가기로 했다.
박윤주 외교부 제1차관과 랜도 부장관은 14일 서울에서 한미 외교차관 회담을 열고 한국인 구금 문제 해결 및 비자 제도 개선 협력, 한미 정상회담 후속 조치 등에 대해 논의했다.
랜도 부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 문제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귀국자들이 미국에 재입국 시 어떠한 불이익도 없을 것”이라며 “향후 어떠한 유사 사태도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번 사태를 제도 개선 및 한미 관계 강화를 위한 전기로 활용해 나가자”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기업의 대미 투자 활동이 미국 경제에 기여하는 측면이 크다”면서 “한국 근로자들의 기여에 합당한 비자가 발급될 수 있도록 실무 협의를 속도감 있게 진행하자”고 덧붙였다.
이에 박 차관은 우리 기업 근로자들이 미국 구금 시설에서 감내해야 했던 불편한 처우를 언급하며 “해당 근로자뿐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이번 사태로 깊은 충격을 받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이번 구금 사태 해결 과정에서 한미 양 정상 간 형성된 유대관계와 양국의 호혜적 협력의 정신이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박 차관은 “미국 측이 우리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실질적인 재발 방지 및 제도 개선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요청했다. 구체적으로 △귀국자 미국 재입국 시 불이익 방지 △한국 맞춤형 비자 카테고리 신설 논의를 위한 위킹그룹 창설 등을 제안했다.
미국 고위 당국자가 공개 유감 표명과 함께 대응책 논의 의지를 밝힌 만큼 재발 방지 해법으로 지목된 비자 확대 협상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정부는 우선 단기 상용 비자(B-1)가 전문 인력의 단기 파견을 위한 상용 비자가 될 수 있도록 미국 측과 협상을 이어갈 계획이다. 현지 취업이 가능한 전문직 취업비자(H-1B)의 한국인 할당 확보에도 나설 예정이다. 이와 함께 한국인 전용 취업비자(E-4) 발급 근거가 담긴 ‘한인 동반자법’의 미 의회 통과에도 힘을 실을 방침이다.
차관 회담에서는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후속 조치와 지역 및 글로벌 정세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양측은 이달 유엔 총회, 다음 달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국제행사를 계기로 한 한미 고위급 외교 일정에 관해서도 논의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조선·원자력·첨단기술 등 분야에서 진전된 협력 성과를 도출하자는 데도 뜻을 같이했다.
양측은 또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 미측이 ‘피스메이커’, 한국이 ‘페이스 메이커’로서 각자 역할을 다해 나가자고 했다. 랜도 부장관은 “한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면서 “향후 대북정책 관련 긴밀한 공조를 지속해 나가자”고 의지를 피력했다.
차관 회담에 앞서 랜도 부장관을 만난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번 구금 사태가 양국에 윈윈이 될 수 있도록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당부했다. 아울러 “한미 정상회담의 양 정상 간 합의사항이 신속하고 충실하게 구체적 조치로 이행될 수 있도록 랜도 부장관이 직접 챙겨봐 달라”고 독려했다.
한편 조 장관은 17일쯤 취임 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할 것으로 전해졌다. 조 장관은 방중 기간 동안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 등을 만나 한중 간 현안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회담에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다음 달 말 경주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방한 관련 논의도 중점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측은 아직 확답하지 않고 있지만 외교가에서는 시 주석의 APEC 참석이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북한 문제와 함께 중국이 한국 서해상에 설치한 구조물에 대해서도 얘기가 오고 갈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전임 조태열 장관이 지난해 5월 중국을 찾은 바 있어 이번에는 형식상 중국 측이 방한할 차례지만 조 장관은 순서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새로 취임한 만큼 실리에 방점을 두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조 장관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도 “꼭 순서, 격식을 따져 할 것이 아니라 필요하면 상호 방문도 하는 방향으로 실용적으로 접근해서 한중 관계를 잘 관리해 나가고자 한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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