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요셉이었다가
요한이었다가
십자가의 나무였다가
노랑을 삼킨 장미였다가
잠자리였다가
끌려간 목수였다가
선녀를 감금한 사냥꾼이었다가
슬리퍼로 온 동네 돌고 온
구름이었다가
아나키스트였다가
푸른 포구였다가
암호였다가
가을 묻은 햇살이었다가
절벽 끝 중력이었다가
생각을 절개한
알타미라의 짐승이었다
시적 화자의 전생담이 눈으로 보듯 생생하다. 사람, 동물, 식물은 물론 포구와 햇빛에 이르기까지 유정과 무정을 자재롭게 넘나든다. 실제의 기억이 아니라 허구적 상상일 테지만 물리적 진실일 수도 있다. 세상은 수많은 생명과 물상들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는 끊임없이 몸 바꾸며 유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우주 반죽 속 뒤섞인 너와 나의 경계는 어디인가. 46억 년 태양의 지문뿐이랴. 우리는 찰나를 살지만 138억 년 빅뱅의 지문을 갖고 있다. 방금 핀 저 꽃도 지극히 오래된 젊음이다. <시인 반칠환>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