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슬로건으로 재집권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관세를 부과한 지 수개월이 흘렀다. 각국은 미국을 상대로 최대한 낮은 관세율을 적용받기 위해 협상에 나섰다. 문제는 협상이 철저하게 미국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과 일본은 미국이 관세를 깎아주는 대가로 미국산 제품 구매 확대와 투자 약속이라는 불평등한 협상에 동의했다. 우리나라도 당초 25% 수준의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1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와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약속을 하며 큰 틀에서 미국과의 협상을 타결했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한 고비를 넘긴 것으로 보였던 한미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이 우리가 수용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투자 방식과 기간, 수익 배분 등을 요구하면서다. 일각에서는 다시 농업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는 소식까지 전해져 농업계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미국의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 요구가 거센 상황에서 쌀·소고기 등의 추가 개방을 막았고 앞으로도 농업이 협상 테이블에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지만 미국이 농축산물 추가 개방과 비관세 조치 완화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의 농축산물 추가 시장 개방 요구는 전혀 타당성도 없고 적절하지 않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현재 우리나라가 체결한 FTA 중 우리 농축산물 시장을 가장 높은 수준으로 개방한 협상이다. 그 결과 미국은 한국 농축산물 시장의 최대 수출국으로 부상했고 우리나라는 캐나다·중국·멕시코·일본에 이어 미국산 농축산물을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이 수입하는 국가가 됐다. 미국과의 농축산물 교역에서 매년 80억 달러 안팎의 막대한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추가적으로 요구한다면 오히려 우리 국민의 반감을 불러오고 미국산 농축산물에 대한 선호도를 줄임으로써 미국의 농업 통상 이익에 부정적 영향이 더 클 수 있다. 설사 미국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더라도 미국이 상호관세 근거로 내세운 무역적자를 개선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미국이 농업 분야 이슈를 계속 제기하는 이유는 실질적인 수출 이익보다는 협상 전략 차원에서 농업 분야를 레버리지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크다.
정부는 미국의 불공정한 요구에 흔들리지 말고 협상의 득과 실을 꼼꼼하게 따져 대응 방향을 정해야 한다. 특히 미국이 우리 농업을 꽃놀이패로 사용하도록 두고 봐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국이 반도체·조선·배터리 등 분야에서 한국의 협력을 요구하듯 우리도 당당히 농업이 민감한 영역이고 국가 전략산업으로서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이는 상호주의 원칙에 부합하며 건강한 동맹과 통상 관계를 위한 기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한미 통상 협상과 관련해 “대한민국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절대 하지 않는다. 합리성과 공정성을 벗어난 어떤 협상도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국가 식량 안보의 기반인 농업을 지키면서도 대미 투자에 있어 협상의 디테일이 국익에 부합하는지 철저히 따져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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