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피해지원특별법과 탄력근로제 확대를 위한 근로기준법 등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었던 민생 관련 법안들이 여야 정쟁 탓에 상정조차 장담 못할 상황에 내몰렸다. 국민의힘이 본회의에서 여당 주도로 상정되는 쟁점 법안뿐 아니라 비쟁점 법안에 대해서도 무제한 토론으로 의사 진행을 합법적으로 방해하는 필리버스터의 실행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상정 법안을 80여 개에서 4개로 줄이기로 했다. 국민의힘은 3대 특검의 수사 기간을 연장하지 않는 대신 정부조직법 개편안 처리에 협조하기로 한 합의를 민주당이 파기해 무한 필리버스터로 맞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당초 이번 본회의에서 69개 비쟁점 법안과 쟁점 대상인 11개 패스트트랙 법안 등을 비롯해 총 80여 개 법안을 통과시킬 예정이었다. 이들 안건마다 무제한 토론이 실시되면 여당이 법안들을 모두 처리하는 데 2~3개월이 걸릴 수 있다. 이에 민주당은 이번 본회의에서 검찰청 폐지 등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비롯해 4개 법안만 우선 처리하기로 했다. 그래도 다른 법안들의 입법 지연을 피하기는 어렵다. 특히 경북·경남·울산 산불 피해 지원을 위한 특별법처럼 시급한 민생법안들은 또 뒷전으로 밀리게 됐다.
국회 협상이 교착된 데는 난폭 운전하듯 거칠게 정국을 끌고 간 여당의 책임이 크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이달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민의힘을 향해 “정당 해산 심판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겁박했다. 또한 검찰·사법 개혁 및 기업 옥죄기 법안 등 민감한 쟁점 법안을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이고 있다. 급기야 사법 독립을 강조한 조희대 대법원장을 겨냥해 23일 “대통령도 갈아치우는 마당에 대법원장이 뭐라고”라며 거취를 압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다가는 70여 일 남은 정기국회가 빈 수레만 굴릴 판이다. 시급한 민생 법안부터 입법화를 서둘러야 한다. 쟁점 법안에 대해서는 숙의 정치를 복원해야 국정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대통령실과 총리실은 중재력을 적극 발휘해 여당 독주를 자제시키고 여야 민생경제협의체가 제대로 가동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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