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외교안보 핵심 당국자들이 남북 ‘두 국가론’을 두고 연일 엇갈린 입장을 내놓고 있어 정책 혼선을 자초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외교안보 정책을 정교하게 설계하지 않고 상반된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발신하면 북한과 미국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고 북한 비핵화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25일 “남북은 사실상 두 국가”라며 “잠정적으로 통일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생긴 특수 관계 속에서 국가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북 관계를 실용적·현실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도 했다. 이 같은 상황 인식은 앞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정부는 두 국가론을 지지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고 발언한 것과 정면 배치된다.
이들 안보 라인의 조율되지 않은 발언은 국제사회에서 우리 외교안보 정책의 신뢰성과 일관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헌법과 남북기본합의서에 기반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동맹파’와 한국이 독립적으로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자주파’ 간 해묵은 갈등이 노출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잖아도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제시한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 이른바 ‘엔드(END) 이니셔티브’가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만 풀어주고 정작 북한 비핵화로는 귀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한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도 우리 안보가 확고히 보장되는 조건에서 진행돼야 한다. 국방부가 24일 미국 측과 ‘상당한 진전’에 공감했다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아태 지역으로 안보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는 현실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북핵은 대한민국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사일·핵 고도화를 위협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협상에 나설 태세다. 정부가 ‘두 국가론’과 ‘비핵화 방법론’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낼 경우 북한과 미국의 정책 오판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북핵 관련 발언은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