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유엔(UN) 총회 연설에서 강조한 ‘모두의 인공지능(AI)’와 ‘AI 기본사회’의 비전은 단순한 기술 정책을 넘어선 인류적 메시지였다. 대통령은 AI를 특정 국가나 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 세계 시민이 자유롭게 접근하고 함께 활용해야 할 공공재로 규정했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혜택과 위험은 어느 한 나라의 울타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국경을 넘어 파급되는 기술의 성격상, 접근의 보편성과 분배의 공정성이야말로 인류가 직면한 핵심 과제라는 점을 환기한 것이다.
AI는 지금까지 주로 효율과 성장의 언어로 설명되어 왔다. 그러나 효율과 성장은 그 자체로 불평등을 확대할 위험을 내포한다. AI 기술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활용할 수 있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는 전혀 다른 미래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이 불평등은 단순한 소득 격차를 넘어 삶의 질과 인간 존엄에까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의 메시지는 기술적 비전이 아니라 사회적 비전, 나아가 인류적 비전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의식은 사실 낯설지 않다. 2022년 필자가 쓴 ‘블랙박스를 열기 위한 인공지능법’의 추천사에서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는 이렇게 말했다. “인공지능 시대, 어느 때보다 공정해야 합니다. 인공지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짧지만 무거운 이 문장은 오늘날 ‘모두의 AI’라는 구상으로 이어지고 다시 ‘AI 기본사회’라는 국가적 의제로 확장되었다. 학문적 성찰에서 출발한 가치가 국가적 정책 담론으로, 그리고 이제는 국제사회의 비전으로 공표된 것이다.
최근 필자가 집필한 ‘모두의 AI’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체계적으로 풀어내려 한 시도였다. AI는 시장에서만 거래되는 사적 자원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사회적 자원이며 권리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단순히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개방을 요구하는 차원을 넘어, 교육·복지·문화 등 사회 전반에서 AI 활용의 기회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다시 말해 AI 접근권은 앞으로의 사회적 기본권 논의에서 결코 배제될 수 없는 핵심 요소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개념이 ‘AI 기본사회’다. 이는 인공지능이 사회의 주변적 도구가 아니라 정치·경제·문화·법 질서를 재편하는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임을 선언한다. 산업혁명이 기계와 자본의 질서를 만들었다면 AI 혁명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질서를 만든다. 그리고 그 질서 속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사회적 연대의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AI 기본사회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우리 시대가 직면한 필연적 과제이자 설계도라 할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철학을 제도화하는 과정이다. 대통령이 위원장인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에서는 국민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AI 접근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데이터 인프라의 공공성 확보, 교육과 훈련을 통한 디지털 역량 강화, AI 윤리와 안전을 위한 규제 체계, 그리고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분배 장치가 종합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임문영 상근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위원회에서 이 같은 비전을 구체적인 제도로 뿌리내릴 수 있게 정책을 추진할지 관심이다. .
더 나아가 한국이 제시하는 ‘모두의 AI’와 ‘AI 기본사회’는 국제 무대에서도 설득력을 가진다.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시대에 AI를 공공재로 선언하는 것은 강대국과 약소국을 아우르는 새로운 가치 외교의 기회다. 한국이 제안하는 이 비전은 단지 국내 정책을 넘어, 인류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보편적 질서의 초석이 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의 유엔 연설은 학계와 시민사회가 오랫동안 축적해온 문제의식을 국가의 이름으로 국제무대에 천명한 순간이었다. 당초 학문적 논의에서 출발해 정책적 구체화로 나아가고 있으며 이제는 인류 공동의 비전으로 확장되고 있다. AI 시대에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공정의 깊이다. 인류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AI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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