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발생 이후 첫 평일인 29일 대규모 ‘민원 대란’이 현실화했다. 사고 발생 나흘이 지났지만 우체국 금융 등 일부만 복구됐을 뿐 국가 전산망 대부분은 여전히 ‘작동 불능’ 상태에 놓여 있다. 온라인으로 화장장을 예약할 수 있는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 접속이 안 돼 발인을 미뤄 4일장을 치렀다. 국가전자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가 마비되면서 추석을 앞둔 중소기업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공인중개사들은 부동산 거래 온라인 서비스가 막혀 직접 관청을 찾아 부동산 거래 신고를 해야 했다. 면허관리시스템에도 장애가 생겨 온라인 발급을 받을 수 없어 국·영문 증명서는 우편이나 팩스로 신청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국가 전산망 관리에 구멍이 뚫리고 민원 대란이 일어나면서 온 나라가 하루아침에 ‘아날로그 시대’로 퇴행해버린 형국이다. 정부는 이날 “국정자원 화재에 영향을 받은 96개 시스템을 대구센터로 이전·복구하는 데 약 4주 정도 소요된다”며 사실상 이번 사태의 장기화를 예고했다.
전대미문의 디지털 재난을 초래한 전산망 화재에 대해 국가 인프라와 전산망 투자를 소홀히 한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비상사태 발생 시 행정 업무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2008년부터 추진한 공주데이터센터 건립은 18년째 헛돌고 있다. 이중화 방식으로 데이터를 백업·가동하는 공주센터가 당초 계획대로 문을 열었다면 이번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낮게 책정된 사업비와 사업자 선정 유찰, 입찰 방식 변경 등 정부의 준비 미흡과 안일한 대처로 5월 말 기준 공정률은 66.9%에 그치고 있다. 핵심 국책 사업이 역대 정권과 현 정부의 무책임에 18년이나 겉돌았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런데도 여야는 한심하게 “네 탓” 공방이나 벌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전산망을 빨리 정상화해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총력을 쏟아야 할 때다. 확장재정에 방점을 찍은 올해 예산은 677조 원으로 전년 대비 3.2% 증가했지만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25조 5000억 원으로 외려 1조 원이나 줄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산망 등 국가 인프라에 대한 예산 투입을 늘리고 전문 인력 확충도 서둘러야 한다. 공공 분야에 민간 클라우드(원격 가상 서버) 서비스를 도입하는 ‘클라우드 네이티브 전환’에도 가일층 속도를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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