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의 정상적인 경영 판단까지 범죄로 몰아 경영 활동을 위축시켜온 배임죄가 70여 년 만에 폐지 수순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정상적 경영 판단에 따르거나 주의 의무를 다한 사업자는 배임죄 처벌이 면제되고, 경미한 의무 위반은 과태료 부과 수준으로 처벌이 가벼워지게 된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30일 ‘경제 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태스크포스(TF)’ 당정협의에서 배임죄를 폐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시급한 개선이 필요한 경제 형벌 규정 110개도 우선 추진 과제로 마련했다.
배임죄는 오랫동안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법 적용으로 기업 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모호하고 포괄적인 구성 요건 탓에 선의의 경영 판단조차 결과에 따라 언제든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기업들에 특히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기업인들이 적극적인 투자와 혁신을 주저하고 안전제일 위주의 소극적인 경영에 머문 것도 배임죄 때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이번 조치는 과도한 형벌로 위축된 기업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반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정은 배임죄가 빨리 폐지되도록 입법에 속도를 내야 한다. 다만 배임죄 폐지 이후의 민사책임 강화 조치로 취해질 증거 개시 제도 도입과 집단소송제 확대에 대해서는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합리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형사처벌의 족쇄를 풀자마자 또 다른 족쇄를 채우는 결과가 초래돼서는 곤란하다. 배임죄 폐지가 대장동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이재명 대통령을 구하기 위한 꼼수’라는 국민의힘의 지적에 대해서도 보다 낮은 자세로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배임죄 폐지는 때늦은 감은 있지만, 이를 계기로 시대에 맞지 않는 비합리적 규제를 신속히 제거해야 한다. 당정은 개인과 법인을 하나의 사실로 동시 처벌하는 공정거래법상 양벌 조항 등을 추가로 개선하는 등 경제 형벌 합리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기업들에 더 큰 활력을 불어넣어 줘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노동계의 무분별한 파업을 사실상 조장하는 노란봉투법과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 역량을 점증적으로 훼손시키고 있는 거듭된 상법 개정안에 대한 보완 입법을 서두르는 일이 중요하다. 기업 옥죄기가 계속되는 한 일자리 창출도, 경제 회생도 더욱 어려워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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