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시 애호가에게 명절은 미술관 나들이에 더없이 좋은 시기다. 전국 국공립 미술관 대다수가 무료 개관으로 문턱을 낮추고, 사립미술관과 미술축제도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관객을 맞이한다. 열흘간 이어지는 추석 연휴, 미뤄뒀던 전시를 찾아 나서보는 건 어떨까.
서울경기 | 김창열에서 모네까지, 명작의 향연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 덕수궁, 청주 3개관을 추석 명절인 5일부터 4일간 무료 개방한다. 서울관은 명절 당일인 6일 휴관해 5일과 7~8일 문을 연다.
50년간 물방울을 그린 '물방울' 작가 김창열(1929~2021)의 대규모 회고전이 서울관의 최고 볼거리로 꼽힌다. 회화와 아카이브 등 12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아 김창열의 물방울이 맺힌 과정부터 의미까지 사유해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전시장 입구부터 김환기, 최욱경, 이성자의 대작이 관람객을 맞이하는 서울관 최초의 상설전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역시 꼭 봐야 할 전시다.
정동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향수(鄕愁), 고향을 그리다'는 추석 명절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이중섭, 유영국, 김환기 등 한국 근현대 작가 75명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그려간 풍경화 21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과천관에서는 인상파 거장인 클로드 모네부터 동시대 거장 아이웨이웨이까지, 해외 유명 작가의 명작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MMCA 해외명작 '수련과 샹들리에'를 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국제 미술품 1045점 중 44점을 엄선한 전시로,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작품들이 모였다. 시대와 지역과 장르를 넘어선 100년의 미술사를 단숨에 훑어볼 수 있어 미술 초심자도 흥미롭게 즐길 수 있다. 청주관에서는 미술은행 20주년 특별전 '돌아온 미래 : 형태와 생각의 발현' 전시를 통해 김기린, 김수자, 곽훈, 이강소, 윤형근, 정상화, 전광영 등 한국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수원시립미술관도 5~9일 정상 개관하면서 추석 당일 무료 입장 이벤트를 연다. 행궁 본관에서는 나혜석의 유일한 유품인 사진첩을 매개로 박수근, 이중섭, 임군홍, 천경자 등 한국 근현대 주요 작가 13인의 작품을 만나는 전시 '머무르는 순간, 흐르는 마음'이 열리고 있다. 또 시각 예술가 윤향로와 사운드 작가 유지완, 소설가 민병훈이 참여한 실험적 전시 '공생'과 동시대 회화 작가 채지민, 함미나의 2인전 '네가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할 거야'도 개최 중이다. 수원시립미술관은 개관 10주년을 맞아 7, 8, 9일 오후 3시 로비에서 재즈 그룹의 축하 공연도 펼친다. 포니정홀에서는 시민들이 퍼즐에 축하 메시지를 그려 작품으로 완성하는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대구 | 조선 삼청도에서 현대 실험미술까지
추석 연휴 대구를 찾는 미술 애호가라면 간송미술관과 대구미술관 방문을 계획해보자. 대구간송미술관에서는 지난달 23일 개막한 광복 80주년 기념 기획전 '삼청도도-매·죽·난 멈추지 않는 이야기'가 열리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를 살아낸 절의지사들이 남긴 삼청(매화·대나무·난초) 작품 35건 100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특히 보물로 지정된 탄은 이정(1554~1626)의 시화첩 '삼청첩(三淸帖)' 56면이 최초로 전면 공개된다. 5만원권 지폐 뒷면에 연하게 인쇄된 대나무 그림이 바로 조선 세종의 5대손이자 당대 최고의 묵죽화 대가로 꼽혔던 이정의 '풍죽'이다. 검게 물들인 비단 위에 금니(아교에 개어 만든 금박 가루)로 대나무를 그린 '신죽'과 매화를 그린 '월매' 등도 도도한 자태를 뽐낸다.
간송미술관은 추석 연휴를 맞아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이벤트도 마련했다. 우선 10월 한 달간 매주 금요일 방문객이 작품 속 달의 모습이나 전시 공간 곳곳의 달을 찾아 자신의 SNS에 업로드하면 선착순 15명에게 이정의 '문월도'가 담긴 한정판 손수건을 지급한다. 연휴 첫날인 3일에도 오후 2~4시까지 이벤트가 진행되니 잊지 말자. 또 3~5일에는 기획전 관람객 선착순 200명에게 간송 소장품을 담은 '간송 컬러링북'을 제공한다. 이밖에 9일 오후 7시에는 미술관 박석마당에서 '2025 밤의 미술관'이 열린다. 대구 군위군을 배경으로 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즐기며 가을밤 달빛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을 전망이다.
간송미술관과 나란히 자리한 대구미술관은 현재 진행 중인 4개의 전시에 대해 3~9일 무료 개관한다.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이강소 작가의 작품 세계를 130여 점의 회화, 조각, 설치 등으로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대규모 회고전 '곡수지유:실험은 계속된다'를 비롯해 대구미술관이 선정한 '2025 다디스트' 장용근 사진작가가 걸어온 20여 년간 여정을 8개 대표 시리즈로 감상하는 '장용근의 폴더 : 가장자리의 기록' 등이 전시 중이다. 또 한국 근대사의 흐름 속에 대구 화단의 전개를 조망한 대구미술관의 첫 상설전 '대구 근대회화의 흐름'과 신소장품을 중심으로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계속 변화한다, 모든 것은 연결된다, 영원히 계속된다'도 이 기간 무료 관람할 수 있다. 연휴 기간 대구미술관을 방문한 후 '대구미술관', '이강소', '장용근' 등의 키워드를 해시태그해 이벤트에 참여하면 5명을 추첨해 이강소 작가의 친필 사인 부채를 증정하는 이벤트도 열린다. 두 미술관은 10월 6일 월요일 하루만 휴관한다.
부산 | 다대포 해변서 펼쳐지는 미술의 향연
부산에서는 지난달 26일부터 개막한 '2025 바다미술제'가 관람객을 기다린다. (사)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가 격년으로 주최하는 바다미술제는 부산 바다를 배경으로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2011년 부산 송도에서 시작해 다대포와 일광해수욕장 등으로 자리를 옮긴 후 6년 만에 다대포로 다시 돌아와 고우니 생태길, 몰운대 해안산책로, 옛 다대소각장 등을 무대로 미술 축제를 펼치는 중이다.
올해는 수면 아래 흐르는 물결이라는 의미의 '언더커런츠(Under Currents)'를 주제 삼아 보이지 않는 흐름과 숨겨진 아름다움을 탐색하는 기획을 시도했다. 세계 17개국에서 23개 팀의 아티스트(38명)이 참여해 다대포가 가진 에너지에 주목하는 46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매일 오전 10시~오후 6시까지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가운데 3~9일에는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연계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바다를 따라 걸으며 예술을 만끽하는 도슨트 프로그램이 하루 4차례 운영된다. 낙동강 하구에서 채집한 식생과 씨앗을 모아 거대한 구 형태로 만든 오미자 작가의 '공굴리기' 작품을 함께 굴리는 워크숍도 8일 오후 2시, 3시, 5시 열린다. 다대포에 살았을 법한 고생물을 부산대 학생들과 '이어 그리기'로 재현한 안체 바에브스키 작가의 작업과 연계해 관람객들도 다대포의 고생물을 상상해 그려보는 프로그램이 3~5일 오후 1시~5시까지 진행되며, 버려진 재료로 거대한 카펫을 제작한 마티아스 케슬러·아멧 치벨렉 작가의 작업을 따라해보는 워크숍도 5일 열린다.
을숙도의 부산현대미술관도 연휴 기간 야외 독서 행사와 가족 참여형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니 들러봐도 좋겠다. 3~9일 오전 10시~오후 5시 미술관 야외 정원에서는 관람객들이 전시를 관람한 후 빈백과 파라솔에 앉아 독서와 휴식, 선선한 가을 날씨를 만끽하도록 한 '책그림섬 소풍'이 열린다. 3~4일에는 식물 세밀화 작업을 이어온 신혜우 작가가 참여 가족들을 대상으로 직접 식물을 관찰해 세밀화를 그려보도록 돕는 워크숍 '그린 랩 : 작은 잎, 섬세한 시선'도 연다. 또 미술관에서 유료 전시 중인 ‘힐마 아프 클린트 : 적절한 소환’은 5일 부산 시민에 한해 무료 개방된다. 연휴 동안 도슨트 프로그램 등도 정상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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