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설탕·밀가루·전력기기 등 물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핵심 품목 전반에서 담합 의혹을 겨냥한 전방위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가격 왜곡으로 서민 부담을 키우는 담합을 엄정히 단속하라는 이재명 정부의 기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나희석)는 11일 대한제분·CJ제일제당·사조동아원·삼양사·대선제분 등 5개 제분사 본사와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대한제분 대표이자 한국제분협회장인 송인석 대표를 포함해 각 사 최고경영진의 휴대폰, 내부 보고 문건, 회의 자료, 출하량 조정 문서 등 담합 정황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자료 전반이 확보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관계자 소환 조사에 착수해 담합 여부와 구체적 방식 규명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수사팀은 이들 업체가 수 년간 사전 협의를 통해 밀가루 가격을 올리거나 출하 물량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짬짜미’를 이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밀가루 시장 점유율이 높은 대한제분과 사조동아원이 가격 결정 구조를 주도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하고 있다. 두 회사는 매출에서 밀가루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 가격 변동이 실적에 직결되는 만큼 검찰은 이들이 담합 구조의 핵심 축을 형성했는지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9월 국무회의에서 생필품 가격 급등과 관련해 “업체 간 담합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지적하며 정부 부처에 적극 대응을 지시했다. 이후 공정거래위원회는 제분업계의 담합 정황을 포착해 대한제분·CJ제일제당·사조동아원·대선제분·삼양사·삼화제분·한탑 등 7개 사를 상대로 현장 조사를 벌였다. 다만 공정위 행정처분까지는 통상 1년 이상이 소요되는 구조적 한계가 있어 검찰이 이번 사건을 ‘서민경제 교란 범죄’로 규정하고 선제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공정위는 2024년 3월 시작한 설탕 담합 조사도 1년 9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처분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이번 강제수사는 검찰이 서민 경제를 흔드는 담합 사범에 직접 칼을 빼 든 세 번째 사례다. 검찰은 앞서 국내 주요 제당 3사인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이 2021년 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설탕 가격 변동 시기·폭 등을 사전 합의해 3조 2715억 원 규모의 담합을 벌인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에 나섰다. 이후 검찰은 지난달 최 모 전 삼양사 대표, 김 모 전 CJ제일제당 한국식품총괄 임원을 구속 기소했고, 삼양사·CJ제일제당 법인과 임직원 9명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담합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4%에 그친 데 비해 설탕값은 담합의 영향으로 최대 66%까지 급등한 점에 주목했다. 특히 설탕 원료인 원당 가격이 하락했을 때도 이를 제품 가격에 적절히 반영하지 않아 그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한 것으로 판단했다.
검찰은 전력기기 분야의 입찰 담합 수사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10월 15일에는 한국전력공사가 발주한 사업에서 담합을 통해 부당 이익을 챙긴 혐의를 받는 효성중공업·LS일렉트릭·HD현대일렉트릭·일진전기 등 전력기기 제조사들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했다. 이들 업체는 2015년부터 2022년까지 한전의 ‘가스절연개폐장치(GIS)’ 입찰 과정에서 낙찰가를 높이고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사전에 물량 배분에 합의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수사팀은 담합이 없었다면 경쟁을 통해 가격이 낮아졌을 가능성이 크지만 오히려 시장가보다 높은 낙찰가가 유지돼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업계에서는 담합이 없었다면 한전이 최소 수백억 원에서 많게는 1000억 원 이상을 절감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검찰은 압수물 분석과 참고인·피의자 조사를 진행 중이며 이르면 다음 달 관련자 기소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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