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에서 한 배심원은 모두가 ‘유죄’를 외칠 때 홀로 이의를 제기한다. 그가 원한 것은 당장의 무죄 판결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결정 앞에서 “단 1시간 만이라도 제대로 이야기해 보자”는 절차적 정의였다. 관세행정 현장에서도 이와 같은 목소리가 존재했다. 결과만으로는 전부 설명할 수 없는 납세자의 사정을 행정이 귀 기울여 듣고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통해 권익을 보호해달라는 요구였다. 2020년 7월 도입된 ‘관세 납세자보호관’ 제도는 그 목소리에 답한 결과다.
수출입 기업을 운영하는 박 모 대표는 수입하는 물품에 대해 과세 당국으로부터 ‘과세가격 결정방법 사전심사(ACVA)’ 승인을 받아 그 기준에 따라 성실하게 수입 신고를 해오던 터였다. 그러나 관세조사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과세처분 움직임이 감지되자 그는 막막함에 밤잠을 설쳤다. “정당한 요건을 갖춰 승인받은 대로 과세가격을 신고했는데 어디에 이 답답함을 호소해야 하나.”
과거라면 행정처분이 완전히 내려진 후에야 이의신청이나 심사청구 등의 불복 청구를 통해 길고 지루한 싸움을 시작해야 했을 것이다. 자칫 청구 기간을 놓치면 구제 기회 자체가 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박 대표는 곧장 관세 납세자보호관의 문을 두드렸다. 관세 납세자보호관 제도는 처분 전 단계에서도 권리보호를 요청할 수 있고 불복 청구 기간이 만료된 고충 민원까지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의 목소리는 납세자보호관과 전문 민간위원들로 구성된 ‘납세자보호위원회’에 전달됐다. 위원회는 사안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심의했고 결국 “과세관청의 결정을 신뢰하고 성실하게 자료를 제출한 납세자의 신뢰는 보호돼야 한다”며 관세조사 중지 결정을 내렸다. 행정이 스스로의 오류를 처분 전에 바로잡고 절차적 정당성과 신뢰를 지켜달라는 납세자의 목소리에 답한 순간이었다.
관세 납세자보호관 제도는 이런 ‘경청의 태도’가 제2, 제3의 박 대표에게 닿을 수 있도록 쉼 없이 달려왔다. 2024년에는 전담 조직인 ‘납세자보호팀’을 신설하고 고객지원센터를 통합해 민원 상담부터 권리보호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하는 체계를 갖췄고 2025년 12월에는 유니패스(UNI-PASS)에 ‘납세자보호 온라인 신청 시스템’을 개통했다. 직접 세관에 방문하거나 우편으로 신청할 필요 없이 클릭 몇 번으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런 변화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2021년 31건이었던 권리보호 처리 건수는 2025년 63건으로 4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경감된 세액도 12억 원에서 24억 원으로 확대됐다. 단순한 숫자의 증가보다 값진 것은 관세행정 현장에서 ‘납세자의 절차적 권리가 최우선’이라는 인식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행정이 스스로의 결정을 점검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고 있다는 사실은 관세행정의 신뢰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2026년 병오년, 붉은 말의 해를 맞아 관세 납세자보호관 제도는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한다. 국민의 절실한 목소리가 절차의 문턱 앞에서 외면받지 않도록 관세행정 전 과정을 치열하게 살피며 남아 있는 사각지대를 메워갈 것이다. 공정한 과세와 안전한 국경 관리라는 미션에 더해 국민주권 정부에서의 ‘납세자 권익보호’는 선택이 아닌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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