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공차 중량이 약 4.5t으로 운전이 만만치 않다. 운전석 공간도 매우 비좁고 다른 사람이 탑승할 수 있는 여유 공간도 거의 없는 형편이다. “더 많은 배터리를 탑재해야 하는데 공간이 이러니 어쩔 수 없죠” 라고 어빙은 볼멘소리를 한다. 그렇다면 집 앞에 차를 대놓고 음악을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것도 여의치 않다. 어빙의 오디오 시스템은 음악을 재생할 수 없단다. 이 시스템은 단일주파수-74㎐-를 매우 크게 연주하도록 설계되었다. 아시다시피, 어빙은 dB(데시벨) 드래그 레이서다.
데시벨 드래그 레이싱은 좀 생소하지만 이제 막 떠오르고 있는 국제 경기로서, 참가자들이 2~3초 동안 동시에 경합을 벌여 누구의 사운드 시스템이 가장 큰 지를 정한다. 그래서 경기 이름에 드래그 레이싱이 붙은 것이다. 2002년 기록은 베일에 가려진 독일 오디오 엔지니어 팀이 수립한 177.6 dB이었다.
747점보기가 이륙할 때 내뱉는 굉음이 대개 140 dB 정도란다. 하지만 열린 공간에서의 점보제트기의 와이드스펙트럼 소음과 반향성이 뛰어난 밀폐된 공간에서의 저주파 순음을 비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데시벨 크기는 로그값으로 표시되어 10dB의 증가는 감지된 소리(즉, 소음)의 배(倍)에 해당되기 때문에 dB 드래그 레이서들은 매우 큰 음조를 만들어 낸다(좀더 알기 쉽게 말하면, 다른 모든 상황이 동일한 경우 전형적인 dB 드래그 레이싱 시스템의 소리가 3dB 씩 증가하려면 앰프출력은 배로 늘어나야 한다). 캐라밴의 실내와 같이 밀폐된 공간이 아니라면 그런 소음은 아마도 우리들 머릿속을 두부처럼 만들어 버렸을 것이다. 이들 레이서들은 차량 도어를 볼트로 죄어 놓았다. 어빙은 공업용 지그 죔쇠와 나선으로 된 1인치 강철 로드와 너트를 사용해서 유리창을 보강했다.
드래그 레이서들은 앞 유리창과 다른 유리창을 2인치나 되는 플렉시글라스(Plexiglas)로 교체하고 아메리카컵 출전용 요트에 사용되는 턴버클로 창틀을 고정시키며, 일부는 도어에 콘크리트를 채워 넣기도 한다. 톤 버스트(tone burst)가 일어나면 팀원들은 지붕위에 큰 대자로 드러눕거나 밖에서 차를 밀어붙인다. 극도로 단단한 것을 원하는 한 참가자는 장갑트럭을 사용한 적도 있다. 여건이 허용만 된다면 이라크 전에 출전한 M1A1 에이브라함 탱크가 하얀 연기를 피우며 굉음을 내는 모습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새어 나가는 소리가 마치 스피커 와이어가 느슨하게 껴있고 볼륨이 한껏 올라가 있는 홈스테레오를 무심코 켰을 때와 비슷하다. 우르릉거리며 머리를 망치로 때리는 듯한 파괴적인 윙윙거림이다. 문자 그대로 파괴적이다. 많은 팀들이 경기 사이사이 날아가 버린 스피커 콘을 수리한다. 드래그 레이싱에서 존 포스의 피스톤이 녹아내린 것과 마찬가지다. “스피커는 Funny Car (Funny Car, 드래그 레이싱에 참가한 자동차)의 엔진에 비교되죠. Funny Car는 대개 3~4초에 승부가 납니다. 순식간에 엄청난 출력을 쏟아내는데 적합하도록 설계되었죠. 그래서 음악을 틀고 30분만 달리면 스피커는 무용지물이 돼 버립니다”라고 어빙은 말한다. 데시벨 레이싱에 사용되는 볼륨 수준에서, 스피커 보이스 코일의 온도는 순간적으로 260℃에 육박하고 사운드는 저하된다.
각각의 주요 경기가 끝나면, 예선을 통과한 4명이 5분간 “죽음의 경기”를 펼치게 된다. ‘승자독식’ 방식의 대결로 시간이 종료될 때까지 스피커와 전원이 망가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면서도 가능한 최대의 볼륨으로 서로서로 사운드 포격을 퍼붓는다. 이런 포화 속에 단 한 명만 살아남는 경우가 다반사다. 장비가 매우 고가이기 때문에 든든한 스폰서를 잡지 못하면 마지막 대결을 펼 칠 기회조차 잡기 힘들다.
필자가 취재한 토론토 데시벨 드래그 레이싱에 참가한 자동차들은 볼썽사나운 홍보차량 같았으며 어떤 차들은 페인트칠이 바래긴 했지만 요란스러웠는데 스폰서나 소유주의 카 오디오 상점을 광고하는 문구들이었다. 적녹색 페인트를 칠한 닛산 펄사가 전시대 위로 가볍게 오르고 있었는데 운전석에는 어린 소년이 플라스틱 우유 상자에 앉아 있었다. 페인트가 뒤범벅이 된 뒷 유리창으로는 앰프와 케이블 그리고 배터리가 뒤엉켜 있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천둥소리 같은 158.2 dB의 소리는 상대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페인트칠을 한다고 해서 소리가 더 커지는 효과는 없습니다”라고 대회 참가자인 프랭키 발렌티는 말한다.
발렌티는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의 GMC 밴의 “밀봉”상태를 점검하느라 밤을 꼬박 새웠던 참이었다. 전체 시스템의 효과는 밴 내부에 설치된 끝이 날카로운 다면체 판-대개 4인치 두께의 나무로 만들어 진다-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대시보드와 중앙 콘솔, 조향 축을 포함하여 내부 볼륨을 감소시킬 우려가 있는 것들을 모두 유리섬유로 씌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능한 강한 사운드를 차 내부에 설치된 심사원의 마이크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밀봉판은 스텔스 폭격기처럼 각이 졌고 볼품이 없다. 그 중에는 효과가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냥 그럴 것이라고 추측하는 거죠”라며 어빙은 실토한다. “만약 공적(空積)을 줄였는데 효과가 있으면 자꾸 줄이게 거구요. 계량화할 수 없는 물리적 현상이라고나 할까요. 하여튼 심사원의 마이크로 파장을 이끄는 것이 중요해요.” 발렌티는 또, “어떤 한 부분을 움직여서 10dB을 올릴 수는 있지만 쉬운 일이 아니죠. 만약 저 뒷벽을 30cm 정도 앞으로 당길 수 있다면 누구 보다 높은 수치가 나올 거에요”라고 말한다.
발렌티는 ‘왜 이런 무의미한 취미에 몰입하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한다. “맞아요! 좀 유별난 취미죠. 하지만 우표 수집에 수십만 달러를 쏟아 붓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저한텐 그런 사람들이 더 이상해요.” 트로이 어빙의 파트너인 제이슨 브래들리는 “처음엔 그냥 평범한 카오디오로 시작하죠. 그러다가 점점 빠져들면 나중엔 걷잡을 수가 없어요. 한 가지 아쉬운 건 운전을 하면서 매일 음악을 즐길 수 없다는 거에요”라며 웃음을 지어 보인다. “한 푼이라도 생기면 몽땅 이 장비에 다 들어가요.”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데 괜찮은가? 별 문제가 없단다. 이번 시즌에만 465경기가 열린다. “우리 참가 선수들은 불경기를 모르죠”라며 데시벨 드래그 레이싱 주최자인 웨인 해리스는 전한다. “그들은 젊어요. 모든 에너지와 돈을 차에다 투자하죠. 경쟁심이 대단히 강합니다. 그런 점이 나이를 말해주는 거죠.”
대부분의 팀들은 스폰서를 광고하는 유니폼을 입고 차에 레이스페인트칠을 하거나 전사도장을 한다. 대개 6~8명의 ‘피트 크루(pit crew)’가 자동차를 맡게 된다. 그래서 제이슨 파슨스가 아무런 장식이나 마크가 없는 평범한 87년형 임팔라로 순전히 혼자 힘으로 수퍼 스트리트(Super Street) 클래스에서 155.8을 기록하며 우승한 것은 충격이었다. “네, 전 이 시스템으로 음악을 즐기죠. 그렇지 않는 게 우스운 일이죠”라고 그는 말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익스트림(Extreme) 클래스에 참가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전혀요. 그건 세계 기록을 좇는 사람들이 하는 거죠. 게다가 그들은 오디오샵의 세금혜택도 볼 수 있으니까요.”
9월 21일에 끝나는 dB 드래그 레이싱 시즌에 관한 정보는 www.dbdragracing.com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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