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라이스 버너(rice burner=밥통)’라고 불리기도 했던 이러한 아시아 자동차들은 10여년 전부터 LA의 언더그라운드 도로 레이싱 문화에 깊숙하게 침투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스테인레스 강철 배기관을 장착한 악명 높았던 혼다 자동차들이 미국 동서부를 막론하고 굉음을 내면서 달리는 광경이 보이더니, 90년 대 말에는 수입 자동차 전시장과 합법적인 ’드래그 레이스(가속경주)‘에 많은 군중들이 모이기도 했다.
헐리우드가 뒤늦게 뛰어 들면서 2001년에 분노의 질주가 상영되었다. 이 영화는 초고속 자동차, 사랑 등이 잘 어우러진 영화로 수입 개조 차량의 무대가 미국 중부 지방까지 옮겨지는 계기가 되었다.
새롭고 멋진 고속질주 차량들은 그들의 선조와 마찬가지로 전시용과 실전용으로 나눌 수 있다. 여전히 빠른 차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시끄러운 자동차 전시회에 모여 든다. 블루스 하우스가 있는 길가에서 열리는 길거리 자동차 전시회를 상상해 보자. 여기 모여 드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광경들은 라이프스타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아니, 자신들의 삶 전부라고 할 수도 있다.
“이 사람들은 가처분 소득의 전부를 자동차에 쏟아 붓습니다.” 애틀란타에 있는 거대 부품 공급 업체, NOPI의 대표인 마이클 마이어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자신의 개성을 차로써 나타내죠.”
엄청난 속도를 내는 자동차들은 직선 주로 주행, 400m 주파 시간 등과 같은 측면에만 신경을 쓴다. 이는 곡선 주로가 많은 로드 레이스 경기장과는 달리 코너에서 시작해서 직선 주로만을 달리는 드래그 레이스의 특징 때문. “15달러만 내면 금요일 밤 팜데일(LA 카운티 경주용 주로의 본거지)까지 달리는 경기에 참가할 수 있죠.” 최근 몇 년 동안 네 개의 프로 수입차 드래그 레이싱 시리즈 중 하나에 참가하면서 분노의 질주 제작에 기술 자문을 맡았던 크레이그 리버맨의 말이다.
수입 개조차 운전자들은 로드 레이싱에 신경을 쓰는 것만큼이나 초광폭 바퀴에서부터 커피 테이블 크기만한 리어 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개조를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한다. 이러한 부품들 중 대부분은 값비싼 일본 규격 수입품이다. 일본 내수용 제품 매니아들은 일본제 규격 헤드라이트를 구입하기 위해 500달러에서 천 달러를 지불하기도 한다. 베일사이드 USA의 총 책임자인 레이먼드 퐁은 차체 키트에만 1만4천달러를 쏟아 부은 고객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걸 설치하기 위해서, 연료 탱크도 떼 내고 연료 전지를 장착해야 했다”는 것이 퐁의 설명이었다.
일본 내수용 제품을 극단적으로 대표하는 것은 바로 닛산 스카이라인 GT-R. 이 차는 플레이스테이션(PS) 2용 게임인 그란투리스모 3(Gran Turismo 3)을 통해 미국에서 컬트가 된 저가형 수퍼카이다.
온순해 보이는 차체 안에는 연료를 그다지 많이 소비하지 않고도 450 마력까지 출력하도록 쉽게 튜닝이 가능한 터보차저 엔진이 버티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걸 ‘고질라‘라고 부르죠.”LA에서 오른쪽 차선 주행용인 수퍼카를 수입하는 회사 모토렉스의 판매 담당 켄 다카하시는 이렇게 말했다.
수입 튜닝 차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매력은 바로 ‘드리프팅(drifting)’의 묘미. 주차장에서 미끄러지면서 평행 주차를 하는 것 같은 기술이 바로 드리프팅이다. 물론 단순히 멋을 위해서겠지만 만일 경주용 트랙에서 이런 기술을 쓴다면 어떨까? 이미 일본에서는 이러한 드리프팅만 하는 프로 경기도 열리고 있다.
가끔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드리프팅 행사를 개최해 온 스피드트라이얼USA’라는 단체의 운영자 토미 첸은 이 드리프팅을 ’자동차 컨트롤‘ 경기라고 부른다. “드리프팅을 한다고 트랙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니까요”라고 설명한다.게다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드래그 레이스에서도 수입차는 환영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아무도 아시아에서 생산된 스포츠카를 ‘라이스 버너(=밥통)’라고 부르지 않는다. 자동차 회사들은 20 억 달러 규모의 소형 자동차 시장을 조금이라도 차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시장은 수십 종의 전문지, 수 백 곳의 자동차 용품점과 수없이 많은 부품업체들의 생활터전이다. 마즈다 스피드의 포르테제, 다지 SRT-4 및 포드 포커스 SVT와 같은 양산 메이커 스포츠카들은 제조업체의 품질보증을 곁들인 맞춤형 자동차를 원하는 고객들의 기호를 겨냥한다.
그러나 본 기사가 소개하는 자동차들에 비하면 이러한 양산 스포츠카는 하드코어 수입 튜닝차들의 특징인 기술적인 세련됨과, 미세한 곳까지 과도할 정도로 배려하는 것을 흉내조차 못 내고 있는 게 사실.
도요타 수프라
도요타 수프라는 일본판 램보르기니 디아블로라고 할 수 있다. 너무 섹시하고 과도한 성능이며 최고중의 최고. 미국에서 1998년까지 판매된 이 차는 강력한 직렬 6기통 엔진 때문에 중고차 시장에서 명성을 얻게 됐다. 몇 가지 간단한 업그레이드만으로도 ‘대충 쓸만한‘ 파워를 내도록 엔진을 개조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 세계에서 ’대충 쓸만한‘ 파워라 함은 900마력 정도).
하지만 샌디에이고에 ’스피드 포스 레이싱‘ 튜닝 샵을 운영하는 키스 타는 좀 더 강력한 성능을 갈구했다. 그는 피스톤, 커넥팅로드, 엔진 내부를 업그레이드한 후 두 개나 되는 거대한 터보차저와 이 터보로 압축된 공기를 냉각시키기 위한 한개의 트윈 코어 인터쿨러, 개조된 흡, 배기매니폴드와 튜브를 장착했다. 그리고 죽여주는 파워를 얻기 위해 필요한 순간에 일시적으로 강력한 파워를 내는 니트로 시스템을 장착했다. 2.34기압을 과급하는 터보의 작용으로 엔진이 바퀴에 천 마력을 더 제공할 수 있게 되어 총 1,200 마력의 파워를 출력하며 이산화질소(니트로)를 첨가할 경우 추가 80마력이 더 출력된다고 한다.
또한 다른 수프라와는 달리 날렵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양산형 차체 키트 부품과 개조 부품을 결합했다. 이 차는 거대한 19 인치 바퀴에다 후륜에는 12.5인치 광폭 타이어를 장착하고 있다. 폼나는 외모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아스팔트 위에서 천 마력이나 되는 힘을 감당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는 이 345/35짜리 레이싱 타이어에 양산 모델보다 작고 스팀롤러 같은 브레이크를 후륜에 적용했다. 그러나 이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레이스용 14인치 로터를 앞쪽에 장착해야 했다). 이 수프라의 내부를 살펴보면 운전대에 니트로 분사를 위한 밝은 빨간색 버튼이 장착되어 있다. 분명히 과도한 중량은 별 문제되지 않아 보였다. 게다가 미니 TV도 설치되어 있다. “물론 운전하면서 보지는 못하죠.”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자동차 전시회에서 지루할 때 보면 괜찮더라구요.”
닛산 240SX
닛산의 실비아는 해외로 수출되면서 원래의 터프함을 잃어 버렸다. 일본 내에서 실비아는 강력하고 균형 잡힌 후륜 구동 쿠페로서의 명성과 함께 완벽한 드리프팅 차량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240SX로 수출되면서부터 일본 내수용 규격 터보차지 엔진 대신에 트럭 엔진이 설치된 조잡한 중고차로 인식되어 이 실비아라는 차는 예쁜데도 아무도 춤추지 않으려는 소녀 취급을 받게 됐다.
하지만 이런 소녀들이 커서는 수퍼 모델이 된다. 이치. 논 후지타씨는 LA에 있는 튜닝 샵인 에논바티브 포스를 운영하면서 이미 대중화된 튜닝 방식, 즉, 미국사양 엔진을 실비아의 SR20DET로 개조하는 튜닝 방식을 선도한 인물. 그러나 후지타는 단순히 SR20DET에 그치지 않고 본격적인 레이싱 엔진을 만들어 냈다. 실린더 보어를 다시 가공한 뒤 교환용으로 공급되는 피스톤, 커넥팅로드, 크랭크 등의 부품을 장착했으며 양산형 터보를 교체하는 등 동력부의 거의 모든 부분들을 업그레이드시켰다.
이제 이 소녀는 450 마력 이상을 출력한다. 후지타의 240은 탄소 섬유 후드를 내리고 겉모습을 살펴보면 그 가치가 더욱 빛난다. 후지타는 뒤쪽 범퍼와 휠 아치를 개조했고 앞쪽 부분을 닛산 스카이라인 R-33과는 다르게 바꾸어 놓았다. 내부에는 레이싱용 가죽 시트에서부터 TV와 플레이스테이션 2가 장착된 400 와트짜리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으로 화려함이 극치를 달렸다.
5년이나 작업을 계속해 왔지만 후지타는 아직 이 240에 대한 작업이 완료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럼 다음에는 뭘까? “이제 더 이상 말씀 못 드립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벌써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 차를 그대로 베끼고 있거든요.”
혼다 시빅
11년 전 LA의 튜닝 자동차 업계가 그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을 무렵, 폴 호는 조잡하지만 나름대로 개조를 거친 혼다 시빅으로 거리에서 자동차 경주를 하던 소년이었다. 이제 26살이 된 그는 포모나의 인젠 테크놀러지에서 연구 개발 부문을 맡고 있으며 여전히 시빅을 몰고 있다. 그러나 이젠 수입 튜닝에 있어 최고 결정판이라고 할 만큼 완벽하게 개조한 모델을 운전하고 있다. 이 차는 일반 도로에서도 무리 없이 쉽게 운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11 초 내에 드래그 레이싱급 속도로 가속할 만큼 강력한 힘을 제공한다.
고속 시빅을 만드는 첫 번째 단계는 바로 엔진을 탈거하는 일. 폴 호는 아큐라 인테그라 GS-R에서 적용된 보다 강력한 1.8ℓ짜리 트윈캠 VTEC인 B18C를 장착하기 위해 1994년형 Si 모델에서 4기통짜리 엔진을 제거했다. 이러한 교체 방식은 매우 쉬워서 대중적으로 활용되고 있고 따라서 이 B18C는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소형 스포츠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인테그라의 도난 확률이 다른 차에 비해서 2.5배나 높은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폴 호는 그의 엔진을 직접 설계하고 균형을 맞추었으며 직접 연결까지 해서 전통적인 고속 엔진으로 변신시켰다. 그러나 1.8 ℓ짜리 엔진에서 실제적인 파워를 얻으려면 강제 과급으로 파워를 내게 할 수 밖에 없다. 그의 비장의 무기는 자신이 직접 설계, 용접한 배기관에 맞춘 거대한 터보였다. 트랙에서 1.8의 압력까지 상승시켜서 600마력 이상의 파워를 얻는 것이다.
그는 마치 양의 탈을 쓴 늑대와 같은 조용한 차를 원했고 일본 내 규격에 맞는 차체 키트에 절제하는 듯한 일본 내수용 외관을 채택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