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앞에 말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아니다. 필자가 좋아하는 배들은 무게만큼 보트 몸체가 물로 들어가 흘러 다니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정말 좋아하는 배는 그저 나무조각으로 만든 배다. 길이와 폭의 비(比)가 아주 크고 젓는데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그런 배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진짜 정교한 보트는 물 위에 둥둥 뜨는 나무 조각 배로, 물에 떠서 자기 힘으로 저을 수 있는 데 까지 젓고 다니는 그런 배다.
대학 시절 필자는 여덟 명이 노를 젓는 셸(레이스용 경 보트) 팀에 합류한 적이 있다. 셸은 놀라우리만큼 정교한 보트다. 이 팀에 합류했다고는 했지만 사실 체구가 너무 작아 (경량팀의 이물 자리에 앉기에도 작았다 - 보트에 탄 노젓는 사람들의 평균 몸무게가 67kg 정도가 되도록 보트의 이물 자리에는 보통 강인하고 체구가 작은 사람을 앉히는 게 보통이다) 결국 얼마 못 가 쫓겨났다. 이 팀은 결국 필자를 쫓아낸 후 세계 경량급 보트 경기에서 우승하는 영예를 거머 쥐었다.
그래서 곧 혼자 젓는 경주용 보트 스컬을 타기로 했다. 물 위에 달랑 뜬 모습이 딱정벌레처럼 작고 좁으며, 미끄러지는 자리에 두 다리는 발판에 끈으로 묶고 앉았다. 물에 닿는 두 노의 날은 아우트리거(outrigger)처럼 생겼는데 이 작은 배의 중심을 잡아주는 장치는 그것 둘 뿐이었다. 스컬은 빠르고 조용한데다 효율성이 높으며, 스즈키 사무라이처럼 잘못하면 옆으로 기울어지기 쉬웠다. 그것도 이제 옛말이다.
이제는 해양 카약을 즐기고 있다. 한동안 카약이란 새 관찰하는 사람들이나 나체주의자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왔다. 밖에 나와 햇볕을 즐기며 돌아다니는 일을 신성시하면서 잘 웃지도 않는 그런 부류 말이다. 하지만 지금 해상 카약은 유머 감각도 풍부하고 모험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가고 있다. 다른 배들은 아예 접근도 못하는 그런 좁은 수로에 이 가느다란 배를 타고 들어가는 재미를 추구하게 되면서 말이다.
해상 카약 이야말로 기가 막힌 기계이다. 현재의 해상 카약들은 인간이 발명한 것들 가운데 가장 효율성이 뛰어난 무동력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 기준이 효율성, 단순성, 속도에 효용성까지 덧붙인다면 말이다. 자전거는 카약보다 물론 훨씬 빠르지만 훨씬 더 복잡한 기계이다. 까마득히 먼 어린 시절에 필자가 타던 스컬 따위는 노를 젓는 보트로서 카약보다 빠르지만 그런 것들은 효용성이 전혀 없이 그저 잔잔한 물에서만 다니는 보트들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카약을 타고 대양도 횡단하였고 온 종일 시속 5 내지 6km의 속도로 앞과 뒤의 방수 공간에 상당한 양의 장비를 넣고 다닐 수 있다.
카약을 탈 때는 글자 그대로 몸을 끼워넣고는 ‘스프레이 스커트’를 허리에 단단히 두른다. 이 스프레이 스커트는 마치 멜빵 달린, 우스꽝스러운 짧은 옷 같다. 이것은 물방울 모양으로 생긴 좌석 코밍(테두리材)에 달라 붙어 완벽한 방수막을 이룬다 (카약에서 내린 사람이 뭍에 올라서 이 스프레이 스커트를 앞으로 길게 뒤로는 짧게 드리운 채 서 있으면 마치 자기 트레머리가 바람에 달랑거리고 있는 것을 모르는 채 서 있는 킬트 복장의 어벙한 스코틀랜드 인 같아 보인다).
속도가 나면 날수록 카약은 더 불안정해지며 장단비가 높아질수록 보트는 옆으로 기울어지기 쉽다. 얼마 전 산악지역 여행 전문 가이드 소벡(Sobek) 팀에 합류하여 멕시코의 바야 캘리포니아의 라파즈 연안에서 노를 저으며 다니던 중 - 이것은 지금까지 노라고는 한번도 저어본 일이 없는 사람들도 카약의 재미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이다 - 필자는 여행객들 가운데 다른 사람들은 아예 엄두도 내지 않는 5.7m 길이의 경주용 보트를 저어볼 기회가 있었다. 미끌미끌한 유리섬유 재질로 된 이 이쑤시개 모양의 녀석은 자기 조종사를 세 번이나 뱉어냈다. 그러고 나서야 겨우 요령을 좀 터득하게 되었다. 솜씨가 더 좋은 카약 선수 같았으면 아마 보트가 흔들리지 않도록 노로 물을 탁탁치며 중심을 잘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곡예단의 외발 자전거를 처음 타보는 사람처럼 세련되게 중심을 잡으려고 애를 써야 했다.
여러 가지 조속기나 조절기를 가지고 모호한 명령을 하기보다는 기계를 정말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아무렇게나 해도 잘 굴러가는 차는 재미가 없다. 통통한 SUV 차량들이나 보잉 747 등도 마찬가지.
요즘의 크루즈용 선박들은 자동 안정 장치가 되어있어 기술이 시원찮은 사람들도 사용하는데 별 문제가 없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아주 민활한 F-16 전투기 같은 정교한 장치를 조종하려면 컴퓨터의 도움이 필요하다. 제대로 운전하는 사람들은 스로틀로 조종도 하고 단순히 방향만 잡는 게 아니라 로테이션도 하는 차를 좋아한다. 중심을 잡으려고 무던 애를 쓰는 일이 없다면 카약을 타는 게 무슨 재미가 있으랴? 라파즈 연안에서 필자는 한동안 비행기를 처음 조종하는 파일럿처럼 앉아 정신을 차리려고 먼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곁의 누군가가 소리친다. “돌고래 떼다!” 하지만 거기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멀미가 느껴진다. 엉덩이로 균형을 잡았나 하면 어느 새 보트는 또 몸부림을 친다.
카약 선수라면 자기 보트가 뒤집히는 경우 별 것 아니라는 듯 360도로 회전을 하면서 (일명 에스키모 구르기) 물 밖으로 빠져 나올 것이다. 보트가 뒤집히자, 보트에 붙들어 맨 스프레이 스커트 때문에 뒤집힌 보트에 붙들린 채로 있다가 결국 천천히 물 위로 떴다. 토글을 당기면 스프레이 스커트는 쉽게 빠진다. 하지만 보트가 뒤집혀 물 속에 빠진 상태에서 토글을 찾는 것은 여의치 않다.
물론 기술 발전으로 이 스포츠에도 일대 혁명적인 발전이 일어났으며 고급화가 수반되었다. 카약하면 으레 물개 가죽과 고래 뼈로 만든 것을 연상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이제 대개 카약들은 케블라, 탄소섬유, 유리섬유 또는 티타늄 같은 것으로 만든다. 옷을 잘 차려 입은 신사가 카약을 취미로 좀 타보겠다고 수천 달러 상당의 장비들-노, 스프레이 스커트, 복장, 첨단의 카약용 구명조끼, 섬광전구, 위성항법 시스템 (GPS), 방수 PDA 전화 (위험을 예방하기 위하여 조수 관련 사항을 알아보아야 하겠지) 그리고 다른 부수장비들-을 떡 하니 사는 세상이다.
노는 카약의 프로펠러이며, 제대로 된 모양과 날 부분을 얻어내는 것은 항공기의 프로펠러가 그렇듯 아주 중요한 일이다. 최경량에 최고가인, 게다가 섬세한 (이 섬세한 노를 가지고 연안의 바위들을 밀어낼 생각일랑 접을 것) 노는 탄소섬유나 유리섬유로 만든다. 하루 종일 아래로, 위로, 주위로 흔들거리며 균형을 잡으려면 단 몇 십 그램의 중량도 신경 써야 한다.
해상 카약의 몸통 자체는 칼처럼 좁고 뾰족하지만 보급품을 상당히 많이 넣을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 있다. 발로 조작하는 경량의 빌지 펌프, 데크에 장착하는 해양 나침반, 접어지는 스케그나 키 (이것들도 발로 조작한다), 노 젓는 사람의 몸이 보트의 몸통에 단단히 자리를 잡도록 도와줄 허벅지 브레이스와 엉덩이 패딩, 그리고 여러 가지 필수품들을 앞과 뒤의 공간에 넣을 수 있다.
이렇게 필요한 장비들을 갖추고 나면 이제 폭이 좁은 멋진 칼 모양의 효용성이 많은 깜찍한 카약의 선장이 된다. 아마도 이것을 저어 북쪽으로 알래스카로 가보고 싶은 충동이 들 것이다. 가는 길에 그저 몸을 바로 하고 균형을 잘 맞출 마음의 준비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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