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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 속의 첨단과학, 위폐 방지기술

우리는 이것을 위해 일하고, 이것을 얻고자 기도한다. 어떤 이는 이것을 저장하며, 또 다른 이는 이것 때문에 싸움을 벌인다. 혹자는 이것에 맞아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도 한다.

물론 이것을 남에게 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 숫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그 누구도 이것의 도움 없이는 결코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이것의 정체는 바로 ‘돈’이다.

사회가 급속도로 디지털화 되면서 신용카드의 사용이 늘고 있지만 아직도 현금은 지갑 속에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자신감을 북돋워 주는 빛과 소금 같은 존재다.

누구나 원하고 누구나 좋아하는 돈. 하루에도 수 십번씩 만나고 헤어짐을 거듭하고 있지만 이러한 돈 속에 수 십여 가지 이상의 첨단 과학기술들이 숨쉬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사실 지폐는 과학기술의 총아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제작 단계에서부터 재질의 선정, 잉크, 인쇄기법, 위·변조 방지기술 등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비밀을 감추고 있다.

주머니에 대충 구겨 넣은 1,000원 짜리를 새삼 다시 보게 만들어줄 지폐 속 과학기술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속옷과 지폐는 형제지간

지폐는 무엇으로 만들까. 종이로 만든다는 사실은 아마 초등학생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무실의 복사기나 프린터기에 들어있는 바로 그 종이일까. 물론 아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현재 각 나라에서 통용되고 있는 은행권 지폐는 대부분 면(綿) 100%의 펄프를 원료로 만들어진 제지가 사용된다. 미국 등 일부 국가가 면과 함께 린넨(linen)과 같은 소재를 일부 섞기도 하지만 이는 특수한 사례에 속한다.

즉 소재 측면에서만 보면 우리가 입고 있는 속옷과 지폐는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지간인 셈이다.

이처럼 지폐를 면으로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폐는 한번 발행되면 최소 수년에서 수 십년 이상 사용돼야 하는데, 이 정도의 기간동안 찢어지지 않는 강도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소재가 면이기 때문이다.

물론 외관상 일반종이와 별다른 차이를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손으로 만져보면 면 소재가 제공하는 지폐 특유의 감촉을 느낄 수 있으며, 자외선에 비추어보면 일반종이에 비해 색감이 어둡게 나타나는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현존하는 은행권에는 특수배합 폴리머(polymer)를 소재로 한 플라스틱 지폐도 있다.

면에 비해 제조단가가 2배 가까이 높지만 내구성이 4배 이상 뛰어나 유통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시킬 수 있다. 이 같은 장점 때문에 최근 들어 플라스틱 지폐를 발행하는 국가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또한 소재의 특성상 지폐에 투명한 부분을 만들 수도 있어 위·변조 방지에 탁월한 효용성을 발휘한다.

실제로 플라스틱 지폐의 선두주자인 호주의 달러는 웬만한 사람의 힘으로는 찢을 수 없을 만큼 강도가 세고, 세탁기에 넣고 돌려도 사용에 지장이 없을 만큼 훼손이 적다.

단지 열(熱)에 취약해 변형의 개연성이 있고, 잉크가 지워질 수 있는 것 등이 단점으로 꼽힌다. 호주를 비롯해 뉴질랜드, 멕시코, 인도네시아 등 22개국에서 사용되고 있다.

40여개 첨단기술로 위·변조 봉쇄

현재까지 개발된 화폐(지폐·주화)와 관련한 위·변조 방지기술은 약 40여종. 각 국가에서는 제조비용, 기술력, 유통량 등에 따라 자국에 적합한 기술들을 선택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전 세계 3위권의 화폐기술 보유국인 우리나라는 약 21개 정도의 기술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중 10여개 정도만 외부에 공개된 상태다.

지폐에 적용된 기술을 모두 공개할 경우 위조지폐 사범들에게 힌트를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지난해에만 국내에서 발견된 위조지폐가 전년 대비 70% 가까이 증가한 2만2,000장(1억7,000만원 상당)에 달하는 등 위폐기술이 날로 발전하면서 이에 대응한 위·변조 방지기술 또한 점차 정교화, 세밀화, 첨단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위폐방지 기법을 살펴보면 가장 먼저 복사방지 기술을 들 수 있다. 이는 미세한 선이나 점을 사용, 스캔 및 인쇄시 지폐의 도안이 일그러지도록 만드는 기술로 대부분의 위폐가 고성능 컬러복사기나 스캐너를 사용한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도안의 변형 대신 복사를 할 때 ‘무효’(VOID) ‘가짜’(FAKE) 등 숨겨진 단어가 표출되도록 하기도 한다.

빛에 비추었을 때만 그림이 나타나는 워터마크(숨은 그림)도 거의 모든 지폐에 빠짐없이 사용되는 기술의 하나다. 이 워터마크는 종이의 두께를 달리함으로써 구현하는데 두께가 얇은 곳이 밝게 나타난다는 점을 이용, 초상화와 같은 특정 도안을 그릴 수 있다.

최근 들어 자주 채용되는 기법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형상이 구현되는 홀로그램이다. 컬러복사기가 색깔 있는 형태만 복사할 수 있다는 약점을 파고든 것이다.

올해 초 발행된 1만원권 신권의 경우 우리나라 지도, 태극문양 및 숫자 10000, 태극기의 4괘가 번갈아 나타나는 홀로그램을 부착하고 있다.

지폐의 제조단가를 높이는 값비싼 기술이기는 하지만 현존하는 대부분의 위·변조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도입하는 국가도 늘고 있다.

이와 함께 펄프에 작은 형광섬유를 넣어 자외선에 반응케 하는 ‘형광색사’, 손으로 오톨도톨한 촉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음각인쇄’(볼록인쇄), 그리고 복사가 불가능한 ‘특수 은선’도 사용된다.

또한 확대경으로만 보이는 ‘미세문자’, 용지의 두께 차이로 숫자나 글자를 표시한 ‘돌출은화’, 앞뒷면의 무늬가 합쳐져 하나의 형상을 구현하는 ‘앞뒷판 맞춤’ 등도 첨단기술력을 요하는 위·변조 방지 기술의 대표주자다.

지폐 색깔도 기술이다



지폐에 사용된 것은 사소한 것 하나도 절대로 그냥 정해지는 법이 없다. 어떠한 색상을 사용할지를 결정하는 데에도 위·변조 방지를 생각해야 한다.

언뜻 예쁘고 보기 좋은 색상을 사용하는 것 같지만 지폐에 쓰이기 위해서는 특정한 조건을 갖춰야 한다.

예를 들어 대다수의 컬러프린터들은 연두색을 노란색으로 인쇄한다. 또한 붉은 색은 복사할 때 흐리게 나오며, 푸른색은 진하게 나오는 특징이 있다.

즉 이들 색상으로 지폐를 인쇄하면 고가의 특수기술들을 활용하지 않고도 비교적 간단하게 적지 않은 위조방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만원권, 미국 달러화 등 많은 국가의 고액권 지폐들이 연두색을 메인 색상으로 채택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붉은색이나 푸른색 지폐가 많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고심 끝에 색상을 선택했더라도 어떤 종류의 잉크를 사용할 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단계가 남는다.

잉크의 종류에 따라 구현할 수 있는 위·변조 기술들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위·변조 방지용 잉크의 종류는 크게 4~5종. 먼저 형광물질을 함유한 형광잉크는 거의 모든 지폐에 사용되는데, 자외선을 쏘이면 발광하기 때문에 위조지폐 판별에 유용하다.

형광잉크는 또 눈에 안보이게 사용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자외선에만 반응할 뿐 스캔을 할 때에는 투명하게 나와 위조방지의 기능을 수행한다.

지폐에 광택을 주는 금속잉크도 일반적인 무 광택잉크와 달리 스캔과 복사를 불가능하게 해 컬러복사 방식의 위폐방지에 큰 효용성을 자랑한다.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가장 많은 면적에 쓰인 색상에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잉크 속에 얇은 특수필름 조각을 넣어 보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색 변환 잉크(OVI)는 비싼 가격 때문에 지폐 중 극히 일부분에만 사용되지만 현존하는 모든 위·변조기술에 대응 가능한 가장 강력한 위폐방지 잉크로 손꼽히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권 뒷면의 액면숫자가 OVI로 인쇄됐다.

이외에도 문자, 숫자, 문양 등이 태양광에서는 같은 색으로 보이지만 복사기(스캐너)가 내뿜는 인조광에서는 색상이 변하는 메타메릭잉크(metameric ink)도 지폐의 글자, 일련번호 등에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일부국가에서는 자기(磁氣)에 의해 위폐 식별이 가능한 자성잉크(magnetic ink)가 쓰이기도 한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역사 속 지폐 이야기

우리나라 최초의 지폐는 공양왕 3년(1391년) 송나라와 명나라의 지폐를 참고해 만들어진 ‘저화’(楮貨)다.
당시 저화는 지폐의 필요성 보다는 동전을 만들 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발행됐는데, 고려의 멸망과 정치적 혼란으로 말미암아 실제 통용되지는 못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지폐가 통화로서 활용됐지만 주화를 뛰어넘어 국가의 중심 화폐로서 본격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에 들어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실제 사용했던 지폐 중 가장 단명(短命)한 것은 무엇일까.

불명예스런 기록의 주인공은 바로 지난 1962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교체 발행된 100환권.

이 지폐는 박 정권이 국민의 저축 열기 독려를 위해 ‘통장을 든 모자(母子)’를 도안의 주인공으로 삼는 등 한국은행 창립 이래 유일한 비(非) 유명인 화폐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지폐는 발행된 지 20여일 만에 지폐 단위를 ‘환’에서 ‘원’으로 바꾸는 긴급통화조치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00환권의 입장에서 한 가지 위안거리는 이 같은 단명성이 희소가치를 크게 높이면서 지금은 화폐 수집가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인기 화폐의 하나이자 가격도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는 반대로 지난 75년 퇴계 이황을 도안으로 넣어 발행된 1,000원권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 국민에게 사랑받은 최장수 지폐다.

1,000원권은 위조방지 장치들이 추가되어 조금씩 모습을 바꿔왔던 5,000원권이나 10,000원권과는 달리 83년경 일부 도안이 수정된 이후 지금까지 무려 24년간 한결같은 모습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앞서 언급한 100환권과 비교하면 무려 420배나 장수한 셈.

올해 1월 신규 1,000원권이 발행되면서 점차 지갑 속에서 자취를 감춰가고는 있지만 위조기술의 발전으로 화폐 도안의 교체주기가 6~7년 정도로 짧아졌음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구(舊) 1,000원권의 장수기록을 깨뜨릴 강자는 출현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위폐 방지기술 특허출원 급증

한국은행의 신권 발행과 함께 위폐방지 기술이 부각되면서 이와 관련한 특허출원도 동반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발표된 특허청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에 특허 출원된 지폐 등 유가증권 위조방지 기술은 총 261건. 최근 2년간 이중 42%인 111건이 집중 출원됐다.

분야별로는 유가증권의 재료인 보안용지가 전체의 34%로 가장 많았으며, 인쇄기법 23%, 특수잉크 22%, 시변각장치 16%, 보안필름 5% 등 진위검사와 관련된 기술이 197건으로 75%를 점유하고 있다.

특히 진위검사 기술은 기존과 유사하게 광선을 조사(照射)하여 판별하는 방식이 28%로 수위를 차지했지만 자외선이나 적외선을 조사해 얻어진 이미지를 영상처리한 후 평가하는 등 한층 정밀한 위폐감지가 가능한 컨버전스형 기술들의 출원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출원인의 경우 국내 위폐방지 기술 개발 및 유가증권 제조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조폐공사가 전체 위조방지 유가증권 제조기술 64건 중 24건(38%)을 출원했으며, 내·외국인 비율은 각각 58%(151건), 42%(110건)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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