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신문에서 발행하는 파퓰러사이언스가 이번 6월로 창간 7주년을 맞습니다. 서울경제신문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있는 미국의 파퓰러사이언스는 올해로 창간 136주년을 맞게 되죠.
파퓰러사이언스는 정보통신, 자동차, 군사무기, 생명공학, 로봇, 엔지니어링 등 전 세계 과학기술계는 물론 경제, 산업분야의 최신 트렌드와 핫이슈를 흥미롭고 재미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미국 남성잡지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책은 유료 발행 부수만도 230만부에 달합니다.
편집장으로 부임한지 5개월 남짓 되는 것 같습니다. 잡지를 만들면서 어려움도 많이 있었지만 어느 페이지에 그물을 던져도 싱싱한 고기들을 건져 올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처음의 다짐이 조금씩 이루어져 가는 기쁨도 맛보고 있습니다.
창간 7주년을 맞아 창간사를 준비하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과학기술계 원로, 관계기관장, 또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보다는 일반 독자의 창간사, 또는 추천사가 어떨까 한 것이죠. 마침 그 때 포털에 올라온 어느 독자분의 서평이 눈에 띄었습니다.
몇 월호를 보고 쓴 것인지 모르지만 그대로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파퓰러사이언스는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과학기술과 관련된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묶은 잡지다. 이 잡지에서는 그 동안 알지 못했던 과학상식은 물론 과학기술의 발전 정도, 그리고 새로 나온 발명품까지 한 눈에 볼 수 있다.
특히 여기에 등장하는 발명품들은 가전제품에서부터 환경을 생각한 제품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이다.
예를 들어 TV 화면의 이미지를 인쇄할 수 있는 프린터 내장 47인치 컬러 TV, 자동차에 뿌리고 닦고 헹구면 세차가 끝나는 청정 자동드라이 등이 그 것이다.
깜찍한 아이콘의 사용으로 보충설명을 해주고 있어 눈요기에도 좋고 지식을 쌓는 것에도 도움이 된다.
휴대폰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뇌가 손상될 수 있다는 기사처럼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의학에 관한 내용도 실려 있다. 의학적인 내용은 그리 많지 않지만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의학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는 것이 이 잡지의 장점 중 하나인 것 같다.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특히 성공한 사람을 미국에서만 뽑지 않고 한국과 일본 등 기타 지역에서도 차별 없이 선정,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 것 같다.
나날이 과학기술이 발전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얼마만큼 발전했는지, 그리고 얼마만큼 발전하고 있는 중인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파퓰러사이언스를 볼 때마다 항상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과학기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보다 많은 지식을, 과학기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준다는 점에서 나는 이 잡지의 구독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독자분의 글을 그대로 옮긴 것이지만 제가 읽어도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이번 6월호의 편집장 칼럼은 조금 색다르게 느껴질 것입니다. 글의 양이 평소보다 길어 부담을 느끼는 독자분도 있을 것 같아 고전에서 소재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제갈량(諸葛亮)과 사마의(司馬懿)에 얽힌 얘기죠. 물론 이 이야기는 정사인 삼국지(三國志)나 소설인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일종의 풍류담이죠.
숙명의 라이벌인 제갈량과 사마의는 한때 동문수학하던 관계였다고 합니다. 당시 스승에게는 조상대대로 비전돼 온 기서(奇書)가 한 권 있었는데, 이 책 안에는 천문지리와 용병술은 물론 제세안민(濟世安民)에 관한 기기묘묘한 방책들이 두루 씌어져 있었답니다.
누구이건 이 책을 손에 넣으면 천하를 흔들만한 대사업을 이룰 수 있었기에 사람들은 이를 천서(天書)라고 불렀죠.
그런데 스승은 이미 환갑을 넘은 나이에 슬하에는 자식도 없어 천서를 제자에게 넘겨주려고 작정하게 됩니다. 우선적인 대상은 물론 제갈량과 사마의였겠죠. 과정은 복잡하지만 결국 부모에 대한 효성, 스승에 대한 존경 등 인간성의 문제로 인해 이 책은 제갈량의 수중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제갈량과 사마의는 전장에서 맞붙게 되고, 이 와중에 제갈량이 죽어 정군산(定軍山)에 묻혔다는 말을 사마의가 듣게 됩니다. 천서도 함께. 사마의가 가만있을 리 없죠. 그는 즉각 두 아들인 사마사(司馬師)와 사마소(司馬昭)를 데리고 제갈량의 묘를 찾게 됩니다.
묘 앞에 서 있는 전각에 들어선 사마의는 제갈량의 신상을 보자 과거에 당했던 공성계, 팔괘진, 그리고 호로곡에서의 참패 등이 생각났습니다.
울화가 치밀어 신상을 파괴하려던 그는 생각을 바꿉니다. “공명은 이미 죽었다. 앞으로 나를 필적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니 절이라도 한 번 올리지 않는다면 천하가 비웃을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죠.
그래서 신상에 절을 하고 일어서려는데 마치 땅속에서 누군가 자신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발바닥이 달라붙어 꼼짝달싹할 수 없게 됐습니다.
사마의가 한참을 혼비백산한 상태로 있다가 머리를 들어 전각의 대들보를 보니 다음과 같은 문구가 조그맣게 적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동창의 정의를 생각해 그대의 목숨을 살려주노라. 투구와 갑옷을 벗으면 이곳을 빠져나갈 것이다.”
이에 황급히 투구와 갑옷을 벗고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사마의 부자가 병사들을 시켜 땅 밑을 파보니 그 곳에는 천근이나 되는 지남석이 묻혀 있었습니다. 제갈량이 죽은 후에도 자신을 데리고 논다는 생각에 수치심과 분노를 느낀 사마의는 울화가 끓어올라 닥치는 대로 제갈량의 신상을 베어 버립니다.
그런데 제갈량의 신상이 굉음을 내며 넘어지자 아래에서 갑자기 석비(石碑) 하나가 솟아올랐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가증스런 사마의여, 내 신상을 해치다니 천성이 독하기도 하구나.
강유(姜維)에게 글월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이 원수를 갚도록 하겠다.” 비문을 읽은 사마의는 냉소하며 두 아들을 데리고 전각 뒤편의 묘로 갑니다. 그리고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이 직접 묘 안으로 들어갑니다. 천성적으로 의심이 많은 그로서는 천서를 눈앞에 두고 다른 사람을 묘안에 들여보낼 수 없었던 거죠.
관 속을 더듬던 사마의의 손에 상자가 잡히자 그는 두 아들과 병사들을 다른 곳으로 보낸 후 그 것을 열어봅니다. 상자 속에는 누런 보자기로 싼 물건이 있었는데, 바로 스승이 지녔던 천서였습니다.
이제야 모든 울화가 풀린 사마의가 바야흐로 천서를 살펴보려던 순간 두 번 다시 제갈량에게 당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홀로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말합니다. “ 흥! 만약을 위해 이 몸은 이 책을 거꾸로 살펴보겠단 말일세. 제갈량군.”
그런 후 사마의는 책을 뒷장부터 거꾸로 보기 시작합니다. 사마의는 책을 볼 때 침을 발라넘기는 버릇이 있어 여느 때처럼 그와 같이 했습니다. 그런데 몇 장을 읽고 나니 현기증과 구토가 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득 의심이 들어 책의 맨 앞장을 살펴보니 그곳에는 작은 글씨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습니다. “책에다 독약을 발라놓고서 그대를 죽음으로 다스리고자 한다.” 이를 본 사마의는 이미 오장육부가 파열되고 혼백이 오락가락해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우러러 장탄식을 하게 됩니다. “참으로 증오스러운 공명이여! 죽고 나서도 나를 해치는구나!”
이 얘기가 과학기술과 무슨 관련이 있냐고 묻는 독자분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협의로 보면 관계가 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광의로, 그리고 과학기술의 외연을 넓혀보면 관련이 없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사실 우리의 일상생활과 관련해 과학기술이 연관되지 않은 분야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땅속에 지남석을 묻는 발상은 과학기술적으로 해석이 됩니다. 또한 책에 독약을 묻히는 것 역시 이번 호에 실린 ‘21세기 최초의 암살’과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제가 파퓰러사이언스의 편집장을 맡고 있어서 그런지 요즘 고전을 읽으면서도 과학기술 현상 또는 과학기술적 사고를 심심치 않게 발견해 내곤 합니다. 똑 같은 책을 과거에 읽었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죠. 이런 것이 과학 하는 사람들의 마음일까요.
파퓰러사이언스는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 재미와 흥미, 그리고 경이로움과 감탄을 선사합니다.
특히 파퓰러사이언스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보고(寶庫)로서 이공계 학생이나 연구원에게는 중요한 정보의 공급원이 되고, 기업가에게는 각종 사업을 위한 영감과 비전을 제공합니다.
파퓰러사이언스가 한국 과학기술의 대중화를 선도하고 국가발전에 실질적인 이바지를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정구영 파퓰러사이언스 편집장 gy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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