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다재다능한 방사선 기술

일반적으로 방사선 기술하면 X선 촬영이나 CT 촬영, 그리고 방사선 동위원소를 이용한 암 치료 등 제한적으로만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에서는 오히려 건강에 극히 해로운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방사선 기술의 적용 범위는 의외로 넓다. 방사선 기술을 이용하면 원단의 두께를 정확하게 측정, 비용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한 방사선을 이용한 비파괴 검사를 활용하면 검사 대상을 쪼개보지 않고도 내부에 결함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방사선 기술은 이와 함께 아토피 피부염의 증상 완화나 상처 치료를 위한 보습제품, 그리고 우주인을 위한 우주식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아토피 증상을 완화시켜 주는 겔 타입의 밴드, 방직공장에서 제작되는 최적 두께의 옷감,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가 국제우주정거장에 갖고 간 우주식, 우리나라 정부가 공식 문서에 날인하는 국새….

이처럼 다양한 분야, 갖가지 기능의 제품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기술은 무엇일까? 바로 방사선 기술이다.통상 방사선 기술이라고 하면 암이나 골절 등을 진단하기 위한 X선 촬영과 컴퓨터 단층(CT) 촬영,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한 암 치료 등 제한적으로만 활용되고 있을 뿐 건강에는 극히 해롭다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방사선 기술이 미치지 않는 산업분야가 없을 정도로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섬유의 두께 정확하게 측정

방직공장에서 섬유를 짜는 것과 방사선 기술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 바로 원단의 두께를 정확히 재기 위해 방사선을 사용한다.

질이 떨어지고 싼 섬유의 경우라면 생산 공정에서 원단 두께가 일정하지 않거나 다소 얇더라도 판매에 큰 영향이 없다. 하지만 고부가가치 원단을 제작해 고가로 판매하는 공장들은 두께를 일정한 기준치에 맞추어 불량이 아닌 정상 제품으로 출고하도록 품질검사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정작 섬유의 두께를 측정하는 기술은 주먹구구식이다. 시험적으로 원단을 생산한 뒤 일정한 크기만큼 잘라 무게를 잼으로써 간접적으로 평균 두께를 재는 식이다. 기준치보다 두께가 얇다고 판단되면 원사를 더 많이 투입하도록 조절해서 재생산에 들어간다. 이런 식이니 처음부터 불량품이 나오지 않도록 원사를 10% 정도 넉넉하게 넣는 일이 흔하다.

문제는 비용이다.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원사를 많이 넣을수록 원사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 고부가가치 섬유를 생산하는 공장에서는 두께 0.1㎜ 차이로 한 달에 수 천 만원의 원사비용이 오락가락한다.

섬유를 짜면서 원단 두께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면 품질 수준을 유지하면서 그만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때 방사선을 이용하면 불과 ±1% 이내의 오차, 즉 1㎜ 두께의 원단이라면 0.01㎜ 안팎의 오차범위 내에서 섬유의 두께를 측정할 수 있다. 방사선이란 원자가 붕괴돼 다른 원자 종류로 바뀌는 과정에서 방출되는 입자 또는 빛을 말하는데, 그 투과력에 따라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이라는 3가지로 나뉜다.

알파선은 양성자 2개와 중성자 2개가 결합된 입자가 튀어나오는 것인데, 한마디로 헬륨 원자에서 전자를 뺀 핵만을 가리킨다. 베타선은 전자들이 방출되는 것이며, 감마선은 입자가 아니라 에너지가 아주 강한 빛을 내는 것으로 투과력이 가장 세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하장호 박사팀이 개발한 ‘베타선 두께 측정 장치’는 3가지 방사선 중 베타선을 이용한 것이다. 즉 방사성 기체인 크립톤(Kr)-85가 포함된 이 측정기는 옷감을 향해 수직으로 베타선을 방출한다. 베타선, 즉 크립톤-85에서 튕겨져 나온 전자들은 옷감을 향해 날아가 일부는 옷감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과 부딪혀 여러 방향으로 튀고, 일부는 원자들 사이의 빈 공간을 유유히 빠져 나와 옷감 반대편으로 통과해 나온다. 그리고 옷감 반대편에는 전자들의 수를 세는 센서가 있다.

결국 측정기로부터 방출된 전자들 중 몇 %가 옷감의 원자들과 부딪쳐 산란됐고, 몇 %가 그냥 투과했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 전자는 특정 원자를 지나칠 때 몇 %가 산란되는지가 물리학적으로 정밀하게 알려져 있기 때문에 산란된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알면 거꾸로 얼마나 많은 원자 층을 지나쳐 왔는지 알아낼 수 있다.

섬유를 구성하는 탄소, 수소, 산소 등의 비율에 각 원소의 산란율을 곱해 계산한 수치와 실제로 원단에서 베타선이 산란된 비율을 비교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원단의 두께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

이 같은 옷감 두께 측정기는 주로 독일 등 해외에서 제품화, 국내 섬유업체들은 1억 원대의 고가 수입품을 사서 써왔다. 하지만 비용 절감의 혜택은 그보다 훨씬 크다. 섬유 두께 측정 장비의 국내 시장 규모는 1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새의 균열 여부 확인

방사선을 이용한 비파괴 검사도 옷감의 두께를 측정하는 것과 같은 원리를 활용한다. 비파괴 검사란 검사 대상을 쪼개 보지 않고 내부에 결함이 있는지 확인하는 기술로 항공기나 원전 등의 내부에 보이지 않는 균열을 검사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실시된다.

비파괴 검사에는 초음파도 쓰이지만 감마선이나 X선과 같은 방사선 투과 검사도 포함된다. 즉 사람의 신체 내부를 들여다보기 위해 초음파 검사나 X선 촬영을 하는 것과 같은 셈이다.

시험 대상에 감마선이나 X선을 쪼이면 균열이 없는 곳, 즉 원자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곳보다 균열이 있는 곳을 더 잘 투과하게 마련이다. ‘베타선 두께 측정 장치’에서 옷감 반대편에 베타선을 감지하는 센서를 둔 것과 마찬가지로 시험 물체 반대편에 감마선이나 X선을 감지할 수 있는 감광필름을 부착해 두면 내부의 균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올해부터 이명박 정부에서 새로 제작해 사용하기 시작한 국새는 중성자 투과 시험을 거쳤다. X선이나 감마선이 아닌 중성자를 투과시켜서 내부의 균열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국내 유일의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에서 방출되는 중성자를 국새에 투과시킨 뒤 중성자의 속도가 얼마나 느려지는지를 측정하면 내부에 금이 가지 않았는지 알 수 있다. 균열이 있는 경우, 즉 시험 대상의 원자 밀도가 낮은 경우 감마선이나 X선은 원자에 부딪혀 산란되는 비율이 떨어지고 더 잘 투과돼 나오는 반면, 중성자는 운동 속도가 감속되지 않고 빠른 속도를 유지한다.

중성자 투과 검사는 다른 방사선을 이용한 비파괴 검사와 똑같지는 않지만 원자 밀도의 차이를 검사해 내부 균열을 확인한다는 원리는 비슷하며, 비파괴 검사 중 가장 정밀하다. 지난 2005년 행정안전부(당시 행정자치부)가 국새를 새로 제작하기로 결정한 이유도 원자력연구원이 기존 국새에 대해 중성자 투과 검사 등을 실시한 결과 내부에 7개의 결함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아토피 피부염 치료

방사선 기술은 아토피 피부염의 증상 완화나 상처 치료를 위한 보습제품에도 활용된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정읍방사선과학연구소의 노영창 박사팀은 방사선 기술을 이용한 ‘아토피 피부염 치료용 패치’를 개발, 곧 기업체에 기술이전을 할 예정이다.

최근 환자 수가 크게 늘고 있는 아토피 피부염은 환경오염이나 가공식품의 해로운 성분 때문이라는 막연한 원인이 회자될 뿐 정확한 발병원인이나 치료법이 없다. 피부가 건조하지 않도록 자주 스킨로션을 바르는 것이 그나마 가장 효과적인 처방이다. 항히스타민제, 항알레르기제, 부신피질 호르몬 등의 약물을 처방하기도 하지만 하루아침에 완치되지 않는 아토피 환자들에게는 장기 사용으로 인한 부작용이 또 다른 문제가 된다.

피부에 수분을 공급하는 데에는 스킨로션을 자주 발라주는 방법도 있지만 ‘겔’만큼 확실한 것이 없다. 겔이란 묵이나 한천처럼 수분 함유량이 높아 말랑말랑하면서도 액체처럼 퍼지지 않고 입체적인 모양이 유지되는 형태를 가리킨다.

스킨로션을 적신 마스크 팩을 피부에 덮어두는 것도 뛰어난 보습효과를 나타내지만 수분 함량이 높은 하이드로 겔은 이보다 훨씬 보습효과가 뛰어나다. 때문에 고가의 보습 팩으로 이미 시중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렇다면 방사선으로 겔을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 겔을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한천, 젤라틴처럼 천연 겔도 있고, 다양한 용매와 시약을 써서 가열하거나 용해해서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고분자 물질에 방사선을 쪼이면 여기서도 겔이 만들어진다.

고분자가 녹아있는 물에 방사선을 쪼이면 고분자를 이루고 있는 탄소와 수소의 결합이 끊어졌다가 전체적으로 다시 이어진다. 그러면 고분자 전체가 하나의 촘촘한 그물망을 형성하고 물 분자는 그물 속에 갇혀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겔 상태다.
특히 방사선 조사방법은 수분 함유량을 90% 이상으로 높일 수 있고, 말랑말랑한 정도를 조절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멸균까지 겸해 고부가가치 하이드로 젤로 개발될 여지가 있다.

노영창 박사팀은 느릅나무, 어성초 등 아토피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토종 약용식물 추출물을 수용성 고분자와 혼합한 뒤 방사선 처리를 통해 이번 아토피 피부염 치료용 패치를 만들어냈다. 살균을 위한 화학약품이 전혀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피부에 부담도 적다. 이처럼 약용식물 추출물과 겔 소재를 활용하면 각종 보습제품으로 개발될 가능성이 많다.

이밖에 겔 제품은 의학적으로도 활용될 잠재력이 높다. 노 박사팀이 개발한 상처 치료용 밴드제품은 ‘클리젤’이라는 이름으로 시판중이다. 과거에는 피부에 상처가 나면 소독약을 바른 뒤 아물 때까지 물에 닿지 않게 하면서 일회용 밴드를 갈아 붙이곤 했지만 상처 부위를 촉촉한 상태로 유지해야 진물이 없어지고 피부가 재생되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는 연구가 나오면서 겔 타입의 상처 치료 밴드가 개발된 것.
미국 보스턴 대학 연구팀은 백내장 수술 뒤 상처를 봉합할 때 실과 바늘을 사용하지 않고 끈적끈적한 하이드로 겔을 도포하는 방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조직 재생을 위한 지지체로도 연구가 한창이다. 즉 신경세포나 근육, 뼈 등이 손상되었을 경우 줄기세포를 주사해 조직이 다시 자라도록 하는 연구가 한창인데, 세포만 넣어서는 조직이 제대로 재생되지 않는다는 점이 세포치료의 한계 중 하나로 꼽힌다. 이처럼 조직 재생에는 세포들이 발판 삼아 타고 자랄만한 지지체가 필수인데, 고분자 겔이 이러한 지지체로 적격이다. 고분자인데다 수분 함량이 높다는 점이 생체 친화적이기 때문이다.

이밖에 겔에 기능성 물질을 넣은 뒤 외부 환경에 따라 겔이 안에 들어있는 기능성 물질을 방출하도록 만들 수도 있어 약물 전달체로의 가능성도 연구되고 있다.

방사선을 이용한 멸균

식품을 멸균하기 위해 방사선을 쓰기 시작한 지는 오래 됐다. 방사선이 갖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수출 등을 위해 장기간 보존해야 하는 식품의 경우 방사선 멸균은 기본이다. 더구나 방부제가 몸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방부제가 사라진 자리를 방사선 멸균기술이 메워나가고 있다.

방사선을 이용한 멸균은 감마선 등 높은 에너지의 방사선을 쪼여 세균을 죽이는 것이다. 물론 익혀서 파는 식품이라면 고열로 조리하는 과정에서 식중독균 등 각종 세균을 멸균할 수 있지만 모든 식품을 다 고열 처리할 수는 없다.

가령 수확 후 곧바로 소비되지 않는 감자의 경우 장기 보관 중 싹이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방사선 멸균을 거치고 있다. 또한 방사선은 고열처리를 할 때보다 식품 변형이 적고 영양소 파괴가 적은데다가 포장상태에서 그대로 방사선을 쪼여 멸균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미국·영국·프랑스·독일·호주·이탈리아·스위스·벨기에 등 세계 52개국이 방사선 조사(照射) 시설을 갖추고 쇠고기, 닭고기, 생선, 과일, 곡류, 구근류, 향신료 등에 방사선 처리를 하고 있다.

감염과 보관 문제가 중요한 우주인을 위한 식품도 방사선 조사를 거친다. 지난 4월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머물다 온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는 국내에서 개발된 우주식을 싸들고 가 함께 거주하던 우주인들에게 ‘한국 우주식 만찬’을 베풀었다.
미각을 잃기 쉬운 우주인에게 매운 맛의 김치와 고추장, 건조되지 않아 밥맛이 제대로 살아있는 즉석 밥 등은 큰 인기를 끌었다. 김치와 고추장 등 발효식품은 말 그대로 ‘미생물 덩어리’라고 할 수 있는 식품이어서 방사선 조사로 확실히 멸균하지 않고는 도저히 우주에 가져갈 수 없는 식품이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국내에서 개발한 10여개 품목의 우주식은 모두 지난 1월 러시아 항공우주청의 승인을 통과해 이 씨와 우주 나들이를 함께 했다.
특히 김치를 우주식으로 개발한 것은 방사선 조사기술의 수준을 더욱 발전시킨 개가였다. 아무리 변형이 적은 방사선 기술이라고 하더라도 생채소의 아삭아삭한 조직감을 그대로 살리기는 쉽지 않은 일. 하지만 이 씨가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먹은 한국 김치는 국물만 흥건하지 않았을 뿐 매운 맛이나 씹는 맛이 그대로였다.

원자력연구원 부설 방사선과학연구소는 2년 여 간의 연구 끝에 영하 70도의 저온에서 방사선을 쬐면 채소의 조직이 파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이를 우주식 김치에 적용했다. 이 기술은 김치를 장거리 수출할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어 식품가공의 활용 범위를 크게 넓히고 있다..

김희원 한국일보 기자 hee@hk.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