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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생상품, 금융공학 그리고 산술적 사고

미국 발(發) 금융위기로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습니다. 세계 5대 투자은행 중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만 살아남고, 그나마 은행지주회사로 기업구조가 변경됐습니다. 지난 30년간 세계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했던 월가의 투자은행 모델이 결국 바람과 함께 사라진 것이죠.

이번 금융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란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을 말합니다. 우량 고객을 대상으로 대출해주는 프라임 모기지와 달리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에게도 대출해주는데, 고위험 고수익 원칙에 따라 프라임 모기지보다 3~4%의 금리가 더 붙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활발히 이루어진 것은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됩니다. 집값이 상승할 경우 대출받은 사람의 자산이 늘어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이자를 쉽게 갚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죠.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체들은 대출 자산을 담보로 주택저당채권을 만들어 자금을 회수하는 자산 유동화에 적극적이었습니다. 빌려준 돈을 받기도 전에 또 다른 형태의 빚을 지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투자은행들이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체들이 발행한 채권을 파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기초로 파생상품인 부채담보증권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또한 부채담보증권을 다른 채권 및 파생상품과 섞은 뒤 쪼개 파는 구조화증권도 선보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가 꾸준히 인상되고 집값 역시 하락하면서 연체율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기반을 둔 채권과 증권가격이 폭락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결국 금융기관의 연쇄부실로 연결된 것이죠.

그런데 투자은행들은 왜 이렇게 위험한 상품을 만들어 팔았을까요. 바로 금융공학에 대한 맹신 때문입니다. 금융공학이란 수학적 분석도구를 이용해 파생상품을 설계하거나 위험을 관리하는 것을 말하는데, 투자은행들은 위험을 끝없이 분산시킴으로서 결국 제로로 만들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보듯 파생상품은 위험을 끝없이 다른 사람에게 미룰 뿐 위험이 현실화될 경우 수많은 사람에게 손실을 전파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또 무수한 확대 재생산 과정으로 인해 채권과 채무 관계도 불명확합니다.



금융공학은 지난 1970년대 블랙과 숄즈가 옵션의 가치를 계산하는 블랙숄즈 방정식을 선보이면서 본격화됐습니다. 방정식은 대수(代數)로서 문자에 특정한 수를 대입하면 성립하는 것인데, 일정한 조건에 따라 방정식을 세우면 자동화·정형화된 절차에 의해 해답이 나오게 돼 있습니다. 일종의 기계적 계산이라고 할 수 있죠.

기계적 계산에는 효율성과 엄밀성이라는 대가가 주어지지만 유연한 사고와 다양한 관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수학자들은 초등학교 때 배우는 산술(算術)이 오히려 인생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다고 말합니다.

산술은 계산 문제에 픽션을 이용합니다. 세 사람이 합승한 택시요금을 계산하는 문제, 형과 동생이 받은 용돈의 합을 구하는 문제처럼 일상생활이나 인간관계를 함께 다루죠. 계산하는 사람에 따라 문제의 해석이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투자은행들이 평소 사람 사는 얘기, 즉 경기침체로 대출이자 감당하기도 어렵다는 말을 귀담아 들었다면 어땠을까요. 또한 파생상품의 위험성, 다시 말해 위험을 무수히 쪼개기는 했지만 근본자산이 부실화되면 결국 모두의 위험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산술적 사고를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구영 파퓰러사이언스 편집장 gy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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