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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보다 질긴 슈퍼 나노종이

종이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산업소재로서도 탁월한 효용성을 갖고 있어 수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종이가 넘보지 못하는 영역도 있다. 바로 강도가 요구되는 분야다.

종이는 유연하고 가볍지만 강도만큼은 다른 소재에 비해 떨어지는 것. 하지만 앞으로는 이 같은 고정관념이 깨질지도 모른다. 최근 국내 연구팀이 금속보다 질긴 초강력 슈퍼 나노종이의 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첨단기술이 적용된 이 슈퍼 나노종이는 인장강도가 알루미늄의 4배, 금의 2배에 달한다.


종이는 서기 105년 중국 후한시대의 환관이었던 채륜에 의해 처음 발명된 이래 2,000여 년간 인 류와 동고동락을 함께 해온 역사의 동반자다. 때로는 역사를 담는 그릇이 되고, 때로는 문화예술가들의 혼이 스며든 작품이 됐으며, 때로는 소식을 전하는 소통 의 도구가 돼 우리 곁을 지켜왔다.

이 같은 종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활용 영역이 넓혀져 이제는 산업의 소재로까지 자리매김을 한 상태다. 단순히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도구를 넘어 벽지, 포장재, 바닥재, 지폐, 컵, 휴지 등으로 무한변신을 거듭하며 여러 산업의 태동을 불러일으킨 것.

여기에는 유연성, 경량성과 같은 종이가 가진 물성이 큰 역할을 했다. 또한 목재의 35~40%를 구성하는 셀룰로오스를 원료로 한 친환경 소재라는 점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셀룰로오스는 여타 유기물질과 비교해 지구상에 가장 풍부하고 넓게 분포돼 있는 자원의 하나다. 하지만 종이에도 단점은 존재한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이선영 박사팀이 개발한 슈퍼 나노종이는 종이의 유연성과 경량성, 금속의 강도를 모두 겸비하고 있다.


강하지 못해 쉽게 찢어지고 파열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종 이는 뛰어난 물적 특성과 친환경성, 가격 경쟁력, 원료 수급의 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강도가 요구되는 분야에서는 활용이 제한됐다.

과학자들이 오래전부터 다양한 물리·화학적 기술 을 동원해 종이의 강도 향상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국내 연구팀에 의해 2,000년 종이 역사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해줄 성과가 도출됐다. 국립산림과학원 이선영 박사 연구팀이 금속보다 강한 슈퍼 나노종이의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외유내강의 고강도 종이

이 박사팀이 개발한 슈퍼 나노종이는 명칭에서 연상되 듯 나노기술이 접목돼 있다. 종이의 원료인 셀룰로오스 입자들을 나노 크기로 분쇄한 뒤 종이 제조에 사용하 는 것이 핵심이다.

이 나노 셀룰로오스의 생산을 위해 연구팀은 시료 분쇄기의 일종인 고압 호모게나이저를 사용했다. 이 박사는 "셀룰로오스를 500㎖의 현탁액으로 만 들어 최소 4회에서 최대 20회 가량 고압 호모게나이저 를 통과시키면 나노 셀룰로오스가 된다"며 "나노 셀룰 로오스의 크기는 직경 20~40㎚ 수준"이라고 밝혔다.

바로 이 나노 셀룰로오스로 종이를 만들면 금속보다 우수한 물성의 슈퍼 나노종이가 탄생하게 된다.

실제 이 박사팀의 테스트에 따르면 아무런 처리도 하지 않고, 그 어떤 첨가물도 넣지 않은 순수 나노 셀룰 로오스 100%로 만든 종이의 인장강도가 80㎫에 달했다. 인장강도는 특정 물질을 잡아당겼을 때 재료가 파 괴되지 않고 버텨낼 수 있는 최대의 힘을 말한다.

또한 나노 셀룰로오스를 알칼리 용액에 1차 처리하 는 것만으로 인장강도를 170~180㎫까지 높일 수 있으며, 여기에 실란(SiH4) 등을 사용한 화학적 개질공정을 더하면 190~200㎫의 인장강도 구현이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알루미늄의 인장강도가 40~50㎫, 금은 100 ㎫, 주석은 110~220㎫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금속을 능가하는 질긴 종이가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강도가 세졌다고 종이 자체가 딱딱해진 것은 아니다. 일반 종이와 똑같이 유연하고 가볍다. 단지 다른 점은 마치 기름종이처럼 백색의 반투명을 띠고 있다는 것뿐이다. 이로 인해 육안으로는 슈퍼 나노종이의 강력한 인장강도를 인지하기 어렵다.

하지만 직접 잡아당겨보면 극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성인 남성의 힘으로도 웬만한 A4 용지보다 두께가 얇은 슈퍼 나노종이를 끊기 어렵다. 한마디로 외유내강의 종이인 셈이다.

이 박사는 "연구 초기에는 셀룰로오스를 산가수분해해 나오는 결정질 셀룰로오스로 고강도 종이를 만들고자 했지만 너무 잘 부러진다는 단점이 있었다"며 "슈퍼 나노종이는 결정질과 비결정질 셀룰로오스를 모두 함유한 일반 목재 셀룰로오스를 나노화해 유연성과 강도를 모두 잡았다"고 강조했다.

나노의 힘, 쪼개면 강해져

도대체 셀룰로오스를 나노 크기로 쪼개는 단순한(?) 공정만으로 어떻게 이처럼 강력한 인장강도가 생성되는 것일까. 이 박사는 "셀룰로오스 입자를 나노화하면 전체 표면적이 넓어지고 입자간의 접촉 면적 또한 많아져 결착력이 강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셀룰로오스에는 하이드록시기(-OH기)가 들어 있어 수분을 제거하면 입자 간에 강력한 수소결합이 일어나는데, 입자들의 접촉면이 넓어질수록 수소결합 도 많아지기 때문에 그만큼 강한 종이가 된다는 것.

그렇다면 셀룰로오스를 더 작게 쪼개면 인장강도 역시 지금보다 커지지 않을까.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나노화 공정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경제성을 감안한 최적의 나노화 수준을 선택해야 한다. 아무리 금속보다 강하다고 해도 종이 1장 가격이 수 십~수백 만원을 호가한다면 상용성을 갖출 수 없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현재 슈퍼 나노종이 제조기술의 활용성을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모색 중에 있다. 하나는 나노 셀룰로오스를 제지공정에 직접 투입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슈퍼 나노종이를 산업소재로 활용하는 것이다.

먼저 나노 셀룰로오스의 경우 제지업계에 녹색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제지업체들은 펄프의 양을 늘리거나 지력 증강제를 넣는 방식으로 지질의 강도를 높여왔지만 펄프 원료에 나노 셀룰로오스를 소량만 첨가해도 눈에 띄는 강도 향상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의 실험 결과 나노 셀룰로오스를 일반 펄프에 5% 혼합했을 때 79%, 10% 혼합했을 때는 168%의 인장강도 향상효과가 발현됐다. 또한 칼로 흠집을 낸 뒤 일정 길이의 종이를 찢는데 필요한 에너지인 인열 강도도 각각 64%, 104% 향상됐다. 이와 함께 유연성을 측정하는 내절도 역시 169%, 400%나 높아졌다.

이 박사는 "나노 셀룰로오스는 펄프 원료 및 에너지 사용량 절감에 직접적 효과를 제공한다"며 "또한 화학 첨가물 투입량이 줄어드는 만큼 폐수의 오염도 역시 낮아 수질 정화 비용의 절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나노 셀룰로오스만으로 생산비 절감과 친환경 공정 구축이라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셈이다.

밀려드는 러브콜

하지만 이 박사는 산업소재로서의 가치에 더 주목하고 있다. 애당초 이 박사가 슈퍼 나노종이의 개발에 뛰어든 목적도 산림자원의 소재화에 있었다. 구체적으로 이 박사는 슈퍼 나노종이가 플라스틱, 금속 등의 보강재로서 커다란 효용성을 발휘할 것으로 믿고 있다. 이들 재료의 사이에 슈퍼 나노종이를 삽입하거나 표면에 부착하면 강도를 극대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플라스틱 휴대폰 케이스에 슈퍼 나노종이를 넣으면 지금보다 튼튼한 휴대폰 을 만들 수 있다. 굳이 강도 향상이 필요 없다면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여 케이스를 한층 박막화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기업은 원가 절감이 가능하고 국가적으로도 플 라스틱 소비가 줄어들어 이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이 같은 슈퍼 나노종이의 메리트에 주목한 관련기업들의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는 상태다. 이 박사는 "삼성전자, LG전자 등의 전자기기 제조업체들이 접촉 을 해왔다"며 "LCD TV의 프레임, 컴퓨터나 휴대폰의 케이스에 슈퍼 나노종이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연구팀은 슈퍼 나노종이가 건축소재, 전자 재료, 포장재료 등으로도 널리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슈퍼 나노종이를 활용하면 플라스틱 등 화학소재의 사용량을 줄일 수 있어 녹색성장과 21세기 글로벌 스탠다드를 위한 최적의 소재로 기대되고 있다.


이의 일환으로 이미 서울시립대와는 리튬 이온전지의 플라스틱 분리막에 슈퍼 나노종이를 활용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플라스틱 분리막은 리튬이온전지 제조단가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고가여서 이 연구가 성공하면 리튬이온전지의 가격 경쟁력이 배가될 수 있을 것으로 예견된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현재 슈퍼 나노종이의 실질적인 상용화를 꾀하기 위한 기반 연구에 들어갔다. 셀룰로오스의 조건이나 농도에 따른 강도 변화 분석, 기술 경 제성 분석, 제조공정과 처리조건의 단순화, 대량 생산 기술 확보 등이 그것이다.

특히 어떤 나무에서 추출한 셀룰로오스인지에 따라 나노셀룰로오스의 인장강도에 변화가 발생하는지도 향후 파악해야할 부분이다. 나무마다 셀룰로오스에 함유된 결정질 및 비결정질 구조의 비율에 조금씩 차이가 있는 탓이다.

지금은 국내에 전문적인 셀룰로오스 제조업체가 없어 일본에서 수입한 원료로 연구를 진행했는데 일본산 활엽수라는 것 외에는 정확한 수종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박사는 "제지업체에서 사용하는 펄프를 정제하여 얻은 셀룰로오스를 이용해도 기존 결과와 큰 차이가 있을 것으로는 생각지 않지만 정확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지 이 박사는 슈퍼 나노종이가 플라스틱이나 금속을 보강하는 소재이지 대체재는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한다. 명칭에서 오는 이미지 탓인지 종종 슈퍼 나노 종이가 금속 대신 쓰일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자전거 제조업체가 자전거 프레임으로의 적용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했다. 이 박사는 "슈퍼 나노종이는 인장강도가 강한 것이지 휨강도나 내충격성 등은 기존 종이와 큰 차이가 없 어 금속의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전통 한지의 변신


슈퍼 나노종이와 함께 최근 주목받고 있는 종이 관련 연구 성과가 또 있다. 한국화학연구원의 류정용 박사 연구팀이 개발한 인쇄용 전통 한지가 그 주인공.

이 한지는 한마디로 일반 A4용지처럼 인쇄가 가능한 한지다. 사실 지금까지의 한지는 닥나무 섬유로 만들어져 친환경성, 장력, 촉감, 탄력성은 탁월한 반면 표면이 매끈하지 못하고 투명도가 높아 인쇄용지로는 부적합했다.

물론 표면의 매끈함은 면으로 풀칠한 한지를 여러 장 겹쳐놓고 다지는 도침(搗砧) 공정으로, 투명성은 한지를 두껍게 만들거나 탄산칼슘, 백토 등의 충전재를 넣어 개선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비용 상승과 강도 하락을 초래하며, 한지의 친환경성을 침해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 때문에 기껏해야 붓글씨용 화선지나 포장지, 전통공예품의 표면재료로 쓰는 정도가 순수한 종이로서 한지를 사용할 수 있는 전부였다.류 박사팀은 이 같은 문제를 해조류의 힘을 빌려 극복했다.

값싼 홍조류에서 추출한 표백 섬유를 닥 섬유와 배합, 매끈하고도 불투명한 한지를 만들어낸 것. 연구팀은 또 별도의 기계적 처리를 통해 홍조류 섬유 특유의 불량한 탈수성을 개선함으로서 기계를 이용한 인쇄용 한지의 대량생산 가능성도 열었다.

류 박사는 "홍조류 섬유를 함유한 인쇄용 한지는 불투명도와 백색도가 우수해 서적, 사전, 보존용 인쇄용지로 적합하다"며 "한지의 멋이 그대로 살아있어 서예나 고급 화선지로도 쓰임새를 넓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이 홍조류 한지는 한지 전문업체인 천양제지에 의해 상용화가 추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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