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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주차장 건물의 변신, 용인 헤르마 주차빌딩

빛을 품은 빌딩… 차가운 거리에 감성을 입히다

ex.01 Main perspective view (by photographer Sun Namgoong)
경기도 용인 헤르마 주차빌딩은 획일화된 주차장의 이미지를 벗어나 고급상가를 연상시키는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도시의 랜드마크가 됐다. /사진제공=남궁선 사진작가
ex.02 Main entrance (by photographer Sun Namgoong)
헤르마 주차빌딩의 측면은 협소한 삼각형 대지 형태 그대로 뾰족한 삼각형이다. 자동차 라디에이터 그릴을 연상시키는 환기창이 인상적이다. /사진제공=남궁선 사진작가
ex.03 Commercial area at ground lv.
헤르마 주차빌딩 1층에 들어선 상가들.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상가의 수익성을 높였다. /사진제공=남궁선 사진작가

지하철 분당선 죽전역을 나와 경기도 용인시 보정동 '죽전 카페거리' 초입에 이르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플라스틱 패널로 마감한 건물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건물 1층에는 자동차들이 분주하게 들고나기를 반복한다. 얼핏 미술관이나 고급 상가를 연상시키지만 사실 이 건물은 주차빌딩이다. 주차장의 고정관념을 허물며 도시의 랜드마크로 우뚝 선 '헤르마 주차빌딩'이 그 주인공이다. 헤르마 주차빌딩은 주차장이 도시 미관을 해치는 흉물이 아니라 화려한 디자인으로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요소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한 건물이다.

열악한 대지에 순응한 건축물

건설사들도 두 손 든 뾰족한 삼각형태 땅

창조적 발상으로 애물단지가 보물단지로


헤르마 주차빌딩은 사실 건축주에게 애물단지 같은 존재였다. 건물이 들어선 주차장 용지는 한쪽 면이 삼각형태라 공간활용이 불가능한데다 폭도 14m로 좁아 주차장으로 활용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주차장법에 따라 주차대수가 50대 이상일 경우 6m 폭의 경사로를 확보해야 하는데 14m에 불과한 용지 폭을 고려하면 상가시설을 들일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 같은 설계상 어려움 때문에 건축주는 15억원에 용지를 매입한 뒤 6년째 착공조차 못하고 있었다.

몇몇 설계사무소와 건설사들이 두 손을 든 이 건물의 설계를 맡게 된 이정훈 조호건축 대표는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바로 주차대수를 50대 미만으로 줄여 경사로의 폭을 3.3m로 크게 축소하고 늘어난 공간에 상업시설을 더 채우기로 한 것이다. 이 용지는 연면적의 20%까지 상업시설을 들일 수 있다.

아울러 개천과 접한 여유공간에는 테라스를 설치해 상가의 경쟁력을 높였다. 주차장으로 기능이 불가능할 정도였던 입지의 한계를 특별한 아이디어와 디자인으로 극복한 것이다. 실제로 대지에 순응하며 세운 건물의 측면부는 뾰족한 삼각형이라 경쾌한 리듬감을 자아낸다. 주차장 용지치고는 상당히 작은 규모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이 대표는 "땅값이 비싼 대규모 주차장 용지는 수익성을 맞추기 위해 디자인적 측면을 무시하기 쉽지만 헤르마 주차빌딩은 협소한 용지에 들어서 상대적으로 건물 본연의 가치를 창출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디자인으로 건물의 가치를 높이다

콘크리트구조 대신 빛에 민감한 외벽 선택

안팎 불빛 변화따라 다채로운 색상 연출


흔히들 주차빌딩 하면 철골이나 콘크리트 구조의 건물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헤르마 주차빌딩은 외관을 플라스틱 재료인 폴리카보네이트로 마감했다. 콘크리트에 비해 가벼운 느낌을 주면서 건물 내외부의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재료를 선택한 것이다. 반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외벽은 내리쬐는 햇빛을 반사해 다양한 색상을 연출하고 건물 내부의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도 은은하게 새어나온다. 건물 측면 삼각형 부분은 마름모꼴 형태의 패턴으로 구멍이 뚫려 있는데 자동차 라디에이터 그릴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디자인에 공을 들이면서 건축비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이 대표는 "건축비가 늘어나면서 건축주가 반대하기도 했지만 디자인의 완성도를 높여 주차장에 포함된 상가가 아니라 상가에 속한 주차장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건물의 가치를 높이자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헤르마 주차빌딩의 임대료는 일대에서 제일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또 지난 2010년 완공 이후 전체 상가의 절반인 4곳 정도가 계속 자리를 지킬 정도로 임차인들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도심 한복판 랜드마크가 된 주차장

공사 내내 끊이지 않던 주변 주민들 민원

독특한 외형 드러내자 거짓말처럼 사라져


이 대표는 헤르마 주차빌딩을 지을 당시 건물 주변의 가림막을 철거하던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공사기간 내내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는데 가림막에 감춰졌던 건물의 독특한 외형이 모습을 드러내자 민원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마을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이미지의 건물이 들어선 데 대해 환영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

이처럼 헤르마 주차빌딩은 동네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건축물로 자리 잡았다. 택시를 타는 손님들이 "헤르마 빌딩으로 가자"고 얘기할 정도다. 최근 사람들이 몰리는 죽전 카페골목의 이미지 역시 초입에 위치한 이 건물에서 시작된다.

사실 주차장은 그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대부분의 주차장 용지는 도시계획상 도심 한복판, 사람들의 접근이 가장 용이한 위치에 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골과 콘크리트의 단순한 외관에서 벗어나 헤르마 주차빌딩처럼 차별화한 디자인으로 무장한 주차장이 늘어날수록 우리 도시의 이미지도 한층 밝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반 시게루 등 세계적 거장 밑에서 쌓은 노하우가 원동력"


헤르마 주차빌딩 설계한 이정훈 조호건축 대표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세계적인 건축거장들이다. 지난 2014년 프리츠커상을 받은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는 르완다, 일본 고베, 스리랑카, 아이티, 네팔 등 지진과 전쟁으로 황폐해진 재난현장에 종이 튜브를 이용한 이재민 임시주택과 교회를 지어 '종이 건축가'로 불린다. 2004년 여성 최초로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이라크 출신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는 우리나라에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설계한 사람이다.

헤르마 주차빌딩을 설계한 이정훈(사진) 조호건축 대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들 건축가의 사무소에서 실무경험을 쌓은 화려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이 대표와 반의 인연은 그가 건축 분야 국비유학생으로 프랑스로 가면서 시작됐다. 당시 이 대표는 반이 설계를 맡은 '퐁피두 메츠 센터'의 디자인에 반해 그의 사무실로 무작정 전화하고 e메일을 보내 어렵사리 반과의 인터뷰를 거친 뒤 1년반 동안 그의 파리 사무소에서 일했다. 감명을 받았던 퐁피두 메츠 센터 프로젝트의 경우 처음 인턴으로 시작해 나중에 스태프로 설계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반은 건축가로서의 사회적 역할과 사회참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인간애가 투철한 건축가"라며 "특히 주변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의 철학에 따라 맥락 속에서 건축의 본질에 집중하는 태도에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반의 사무소를 나와 다른 프랑스 설계사무소에서 1년가량 근무한 이 대표는 프랑스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여러 해외사무소에 지원했고 영국 런던의 하디드 사무소에서 제안을 받았다. 그는 1년간 일했던 하디드의 사무소를 학교에 비유했다. 전 세계에서 온 300여명의 인재들이 자신들의 디자인 안을 채택시키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고 경쟁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하디드에 대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극도의 실험적 형태에 대해 절대 타협하지 않는 어마어마한 열정을 가진 인물"이라며 "그의 사무실에서 배운 업무 노하우와 기술이 지금 한국에서 사무실을 운영하는 데 가장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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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이재용기자 jyl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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