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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관계 시작… ‘중국 황후’





한파가 기승이던 1784년 2월22일 미국 뉴욕 항. 쾌속 범선 한 척이 얼음이 채 풀리지 않은 항구를 빠져나갔다. 범선의 목적지는 중국. 영국과 싸워 독립을 쟁취한 미국이 동양과 교역로를 뚫기 위한 첫 시도였다. 신생 미국의 경제 여건은 혹독했던 추위만큼이나 얼어붙었던 터. 영국의 무역 보복 탓이다. 미국의 독립을 확약한 파리협정(1783년 9월) 체결 5개월 지난 시점. 영국은 서인도제도 무역 봉쇄를 시작으로 미국의 목을 죄었다. 무역 의존도가 큰 지역에서는 식민지 시절이 나았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국은 다각적으로 활로를 찾았다. 유럽과 교역을 확대하는 한편으로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섰다. 가장 큰 대안은 아시아. 중국과 인도 시장을 뚫으면 예전의 종주국인 영국과 교역을 넘는 수익이 가능하다는 기대를 품었다. 연방정부는 힘이 없었지만 돈이 먼저 움직였다. 독립전쟁 내내 대륙회의(아메리카 13주의 대표기관)의 재정을 책임지던 로버트 모리스 등이 앞장 서 자금을 모으고 모험투자단을 꾸렸다.

자본금 12만 달러를 모은 투자자들은 무역선부터 찾았다. 배는 널리고 깔렸다. 영국과 전쟁을 치르러 새로 건조된 선박 가운데 낙점받은 배가 엔젤릭(Angelic)호. 대형 전함보다는 작은 크기였으나 삼단 돛대에 대형 돛을 달아 속도가 빠른 배였다. 당초 영국 선박을 노략질할 목적으로 건조된 이 배를 무역선으로 쓰기 위해 구입한 투자자들은 ‘중국 황후(Empress of China)호’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추운 날씨에도 투자자들은 서둘렀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생일(2월22일)에 맞춰 출항하기 위해서다.

유빙(流氷)에 난파될 수도 있다는 우려와 달리 이 배는 무사히 항구를 벗어났다. 뉴욕 항을 떠나 6개월 동안 대서양과 아프리카 희망봉, 인도양, 말레카 해협을 거치는 2만 8,918㎞ 항해 끝에 ‘중국황후호’는 처 중국 광저우(당시 서양식 지명은 칸톤·Canton)에 닿았다. 무턱대고 들어왔어도 이 배는 환영 받았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유럽 상인들과 달리 미국인들은 공손하고 조심스러웠다. 둘째, 상품 구성이 좋았다. 인삼 30t과 2,600여장의 모피가 중국인들의 구미를 당겼다. 스페인산 은괴도 환영받았다. ‘무턱대고 물물교환을 요구하던 유럽인’들과 달리 판매와 결제 수단으로 은을 싣고 온 미국 상인들은 광저우의 중국 관리들의 신뢰를 샀다.

중국인들이 무엇보다 반겼던 화물은 인삼. 조선의 거상 임상옥이 중국에 진출(1821년)하기 37년 전부터 시작된 미국산 인삼의 중국 반입은 고려인삼의 가격을 크게 떨어뜨릴 만큼 막대한 분량이었다. 보다 주목할 사실은 인삼을 비롯한 미국과 중국 간 교역이 단 한 번에 그친 게 아니라 시작이었다는 점. ‘중국 황후호’가 중국에 기항한 3년 뒤 미국은 관리를 파견할 만큼 거래 규모를 키웠다. 영국에 이어 2위 교역국가로 떠올랐다. 중국이 미국을 화기국(花旗國·화기는 성조기를 의미)라고 부른 것도 중국황후호의 기착 이후부터다.(미국 인삼은 아직도 花旗蔘이라고 불린다. 시티뱅크의 중국 상호가 花旗銀行인 것도 이런 연유다.)



중국산 차와 도자기, 자개장과 담뱃대 등을 사서 이듬해 5월 뉴욕항으로 돌아온 ‘중국황후호’는 3만727달러의 순수익(수익률 25.6%)을 거뒀다. 최초의 대중 교역에서 성공했다는 소식에 미국인들은 앞다퉈 중국을 찾았다. ‘중국황후호’의 모험 항해는 미·중 교역의 출발점이었을 뿐 아니라 역사의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로 출발했던 미국인들은 영국 상인의 뒤를 따라 아편을 팔아 아편전쟁 발발과 중국의 몰락을 부추겼다. 중국과 무역이 늘어날수록 무역선과 고래잡이 어선의 중간 기착지의 필요성도 높아져 미국은 일본을 개항시켰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18세기 미·중 무역에서 미국은 항상 적자였다. 중국 시장에서 통할 상품이 없었던 탓이다. 요즘도 그렇다. 지난해 미국과 중국 간 무역수지는 미국의. 3,470억 달러 적자. 미국 전체 무역수지 적자의 69%를 차지한다. 해마다 미국의 대중국 무역수지 적자는 전체 적자의 47~70%에 이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 무역 전쟁을 예고하는 것도 금액으로 보면 무리가 아니다. 중국 위안화 절상 압력을 포함해 어떤 방식으로든 ‘조정’ 압박이 예상된다.

문제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대미 무역수지 흑자국이 분명하지만 중국, 일본에 비해서는 조족지혈인데도 덩달아 압박이 오고 있다는 소식이다.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는 등 알아서 기는 기업들도 있다. 미국산 상품 수입 압력도 커질 판이다. 위기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 ‘중국황후호’가 미·중 교역을 튼 직후, 조선 상인들은 신제품을 홍삼을 주력 상품으로 삼아 화기삼의 시장 진입에 맞섰다. 한국경제호는 어떤 혁신으로 시대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을까. ‘중국황후호’의 항해 같은 과감하되 정교한 도전이 필요한 시기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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