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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_창업을_응원해] 벤처 1세대에서 다음 부사장 거친 그녀, 아트토이에 푹 빠진 사연

문효은 아트벤처스 대표

문효은 아트벤처스 대표




대학 졸업 후 아르바이트로 통역 일을 하면서 인터넷 세상을 처음 접했다. 인터넷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시절, 웹(WEB)이 지향하는 수평적이면서도 네트워크로 촘촘히 연결된 세상은 그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벤처 1세대로 사회에 발을 내딛었고 창의성을 심어주는 참교육을 목표로 인터넷교육업체도 설립했다. 두 번의 정보기술(IT) 창업 경험은 다음커뮤니케이션(지금의 카카오)과의 인연으로 이어졌고 10년간 다음에 몸담으며 인터넷 세상의 혁신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홍콩 출장길에 우연히 접한 아트라는 세상은 제2의 인생을 모색하는 그에게 터닝포인트가 됐다. 소수만 누리는 아트와 자신이 수십 년 갈고 닦은 IT 노하우를 접목할 방법을 찾던 중 새로운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예술(아트)과 장난감(토이)이 결합된 예술의 한 장르인 아트토이를 국내에 선보인 문효은(51) 아트벤처스 대표의 이야기다.

이화여대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한 문 대표는 대학을 졸업한 1980년대 말 정보기술(IT) 관련 번역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 은행권을 제외하고는 민간 부문에서 여성 공채가 거의 없던 시절이라 취업을 시도하는 한편으로 아르바이트를 병행한 것이다.

인터넷의 ‘I’조차 몰랐던 문과생이었지만 해외 PC통신 업체의 서비스 매뉴얼을 번역하는 일을 맡았다. 모뎀이나 윈도우 등의 단어가 생소했던 만큼 직접 써봐야 번역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판단에 집에 모뎀을 깔고 해외 PC 통신에 접속해 직접 사용하면서 번역을 해나갔다.

“통신으로 접속해서 해외 또래 친구들이랑 채팅하는 일이 너무도 즐거웠지만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만큼 인터넷 기술 변화에 뒤처졌던 셈이죠. 다이얼로그, 렉서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생소한 용어를 직접 익히면서 내 것으로 체화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기억 나는 게 미국 컬럼비아대 사이트에 들어가 필요한 원문 자료를 다운 받았더니 주변에서 엄청나게 놀라며 이걸 어떻게 했냐고 물어왔던 일이에요.”

당시 번역 아르바이트 수입이 한 달에 15만원 내외, 하지만 통신 접속으로 인한 해외 전화료가 40만~50만원을 오가며 강남에서 전화비가 가장 많이 나오는 집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고 한다.

문 대표는 “인터넷으로 접속 가능한 어느 곳의 정보라도 내 눈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가슴이 떨릴 정도로 좋았다”며 “마치 신세계를 본 듯한 느낌이었기에 내가 가야 할 길도 바로 이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인터넷이 갖는 수평적인 문화가 가장 큰 매력 요인이었다고 한다. “인터넷의 속성 자체가 상하의 서열관계가 명확한 하이어라키(hierarchy)를 거부하고 수평적인 문화를 추구하는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고 있잖아요. 이 시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자 이 사회의 패러다임 변화도 그런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어요. 인터넷 산업이 지향하는 가치도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리는 정보에 초점을 맞춘 만큼 제가 원하는 기업 철학이 내재해 있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러다 보니 어느 조직에서도 나이나 직급에 상관 없이 수평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런 문화가 몸에 배어 있다 보니 창업 과정에서든,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일할 때든, 나이 들어 창업에 나선 지금도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저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됐던 거죠.”

첫 번째 회사는 삼성SDS 출신이 설립한 IT 정보제공업체 아이비즈넷이었다. 초창기 멤버로 합류했던 만큼 창업 초기 겪는 다양한 경험을 직접 맞닥뜨렸다. 당시 해외 IT 정보에 대한 수요가 급속하게 늘면서 최신 IT 정보는 생산되는 즉시 소비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아이비즈넷은 1990년대 후반 IT 업계의 오피니언 리더로 자리를 잡으며 매일 이용자가 300명씩 늘어날 정도로 핫한 매체였다.

문 대표는 “미국의 지디넷닷컴을 벤치마킹해서 다양한 비즈니스에 대한 분석 리포트를 실었는데, 당시 아이비즈넷을 모르면 인터넷 비즈니스가 불가능하다는 말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오고 갔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아이비즈넷은 박병진 대표를 비롯한 전문 컨설턴트를 통해 인터넷비즈니스의 방대한 분석 정보와 전문 커뮤니티를 보유하고 있는 국내 최대의 IT 미디어 사이트로 자리잡고 있었다.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링 컨설팅과 웹사이트 가치 평가 컨설팅, CRM컨설팅을 적극 펼치며 국내 인터넷 마케팅 담당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사이트 조사에서도 아마존 다음으로 6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지난 2000년 한 코스닥 기업에 인수됐을 땐 광고 단가가 국내 최고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광고 수요가 급증할 정도로 사업 전망이 밝은 대표적인 매체로 주목 받았다. 엑싯을 한 후 창업 멤버들은 상당한 규모의 목돈을 손에 쥐었고, 문 대표 역시 주식으로 번 돈 수 억 원을 들고 창업에 나섰다.

그는 “어릴 적부터 창의성을 심어줘야 인터넷 비즈니스에 적합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고 인터넷교육회사를 설립했다”면서 “4차 산업혁명이 뜨거운 화두인 지금만 해도 ‘창의성’이라는 단어가 교육에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지만 당시만 해도 취지는 좋지만, 사업으로 연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더구나 2002년부터는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인터넷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사업체마다 문 닫는 곳이 부지기수로 늘었다.

“직원들 월급 주는 것도 힘겨운 시기였어요. 주식으로 번 돈을 다 쓴 뒤에는 이화여대 리더스개발원에서 강의도 하고 업무도 보면서 돈을 벌러 다녔지요. 낮에는 밖에서 일하며 인건비를 벌었고, 밤에는 회사로 돌아와 낮에 못한 업무를 하면서 버텼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2004년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부사장을 맡아 달라는 제안이 왔고, 이후 10년간 다음과의 인연이 이어졌다.

문효은 대표가 이대리더십 정규 과정을 듣는 학생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 부사장으로 분주한 일상을 보내던 문 대표는 ‘다음세대재단’의 대표까지 맡으며 활약하게 됐다. 다음의 비영리법인인 ‘다음세대재단’은 ‘미디어 및 커뮤니케이션의 현명한 사용을 통해 가치 있는 개인들이 창의적이고 다양한 모습으로 함께 살아갈 다음세대 창조’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인터넷 세상에 매력을 느꼈던 가장 이유가 수평적 문화와 모두가 누릴 수 있다는 공익성이 컸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다음세대재단은 제가 인터넷 비즈니스를 하는 가장 큰 이유인 ‘공익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이었던 셈이죠.”

문 대표는 일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전제 조건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심장이 팔딱팔딱 뛸 정도로 신명 나게 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업(業)의 본질과 철학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일치해야만 했다. 그런 차원에서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보낸 10년은 그녀의 인생을 빛낸 시간이었던 것이다. 문 대표는 “업(業)의 본질적인 철학과 내가 좋아하는 일이 두 개의 바퀴처럼 맞물리는 게 내가 그 일을 하는 가장 중요한 동기이자 이유”라고 말했다.

다음세대재단 대표로 있던 지난 2013년 이화여대 리더십개발원 교수도 겸직하면서 그는 다시 갈증을 느꼈다. 15년 전 인터넷 세상이 수많은 비즈니스를 창출하면서 세상을 변화시켰던 것처럼 모바일 세상이 가져올 변화의 진폭이 엄청나다는 것을 직감했던 것이다.

“저는 인터넷 비즈니스를 온 몸으로 경험한 세대잖아요. 모바일 세상이 열리면서 이게 10년 만에 온 기회라는 걸 알 수 있었죠. 다시 한번 이 거대한 물결에 몸을 맡겨 서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잔뜩 설레기도 했죠. 동시에 다시 내 심장을 뛰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시작은 운명처럼 찾아왔다. 홍콩으로 출장을 갔다가 일행들과 함께 찾은 홍콩아트페어에서 예술을 직접 접하면서 숙명을 예감했다.

“예술, 그 중에서도 미술에 대해선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10여명의 일행들이 마침 아트페어를 하고 있으니 가보자고 해서 별 생각 없이 갔는데, 마치 신천지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었어요. 그림을 보기 위해 전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의 눈이 경이로움으로 빛나는 것으로 보면서 ‘이건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호기심이 생겼죠. 더 나아가 미술이라는, 어떻게 보면 소수자의 향유물처럼 인식된 예술 장르를 대중 속으로 확산시키면 어떨까, 그 곳에서 내 재능을 불태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인터넷 벤처 1세대로서, 낯선 인터넷을 대중화시킨 경험과 다양한 IT 노하우를 접목하면 가능할 것 같다는 확신이 생겼던 겁니다.”

자신의 인생 2막을 펼칠 비즈니스 영역으로 ‘아트’를 선택하게 됐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학과 석사 학위에 도전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다양한 문화 후원 활동을 했던 경험을 떠올려 관련 책자도 찾아보고, 전시회도 부지런히 다니면서 견문을 넓히고 네트워크를 쌓기 시작했다. 뭔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몸을 담그고, 지식을 쌓고, 네트워크를 구축했던 경험을 십분 살렸다. 인터뷰 중간에는 자신을 ‘디지털의 최첨단 영역에서 아날로그 영역으로 들어간 여자’라고 표현하며 웃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처럼 일반 비즈니스 영역에 있던 사람들이 아트를 경험할 때 높은 진입 장벽을 느끼는 이유를 가장 깊이 고민했다. 일반인에게는 너무 어려운 영역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인터넷이 생소한 영역이었다가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매체가 된 것처럼 예술 역시 대중과 친밀해지면 폭발적으로 확장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트라는 건 너무나 좋은 콘텐츠잖아요. 보기에도 좋고 여러 사람과 나눌 수도 있구요. 정서적인 순기능도 많구요. 아트를 제대로 알면 인터넷이나 모바일 비즈니스 영역은 내가 잘 아니까 양쪽을 접목해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융합을 통해 밸류에이션(가치)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이었죠.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양쪽의 브릿지 역할을 잘 할 수 있을 거라 믿었어요. 그럴 자신도 있었습니다.”

그렇듯 예술 영역으로 부지런히 촉수를 내밀고 있었을 때 우연치 않게 이정용 가나아트 대표와 연이 닿게 됐다. 이호재 가나아트 창업자의 장남인 이 대표가 주변 지인들로부터 인터넷 업계의 맏언니로 통하는 문 대표에 대한 얘기를 듣고 만나고 싶다고 청해온 것이다.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이 대표와의 만남을 계기로 다양한 작품을 접하며 예술에 눈을 떴고, 아트를 통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고자 하는 열망을 품게 됐다.



첫 전시는 2014년 4월이었다. 법인 설립 전이라 이 대표와 함께 개인 자격으로 ‘아트토이컬처’ 전시를 동대문 DDP에서 열었다. 세월호 참사(4월 16일) 바로 다음 주라 모객이 가능할지 의구심이 컸지만 다행히 아트를 통해 위안을 찾고자 하는 발길이 이어지면서 첫 전시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지난해 5월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렸던 아트토이컬처 전시회 전경.


“온 국민이 슬픔이 잠겨 있을 때라 전시 일정을 미루고 싶었지만, 해외 작가들은 이미 스케줄이 확정된 상태라 취소가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진행했던 건데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셔서 감사했죠. 다만 국내 작가 작품이 너무 없었던 건 아쉬웠어요. 아트토이 수집 문화가 발달한 서구권과 달리 국내는 관련 산업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거죠. 우리가 뭔가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던 거죠.”

이듬해인 2015년 문 대표와 이 대표의 힘을 모은 아트벤처스가 설립됐다. 대중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작품 비용을 낮추는 것과 함께 전업작가로서 생활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인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삶에 기여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

문 대표는 “상당수 미술 전공자들이 졸업 후 자신의 전공을 살려 생계를 꾸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이들에게는 새로운 비즈니스 창구를 열어주고 대중들에게는 적은 비용으로도 아트를 접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10년간 몸담았던 다음커뮤니케이션의 미션이 ‘세상을 즐겁게 변화시키자’로 규정됐던 것처럼 아트벤처스 역시 아트를 매개로 세상을 즐겁게 변화시키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가치 있고, 비즈니스적으로 의미가 있으며, 내 개인적으로도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왔어요. 일이 괴롭고 힘든 무언가 족쇄 같은 게 아니라 나를 즐겁게 하고 세상을 즐거운 방향으로 변화시킨다면 그 만큼 의미 있는 게 없겠죠. 창업 경험도 그러했고, 다음에서의 생활도 그랬던 것처럼 아트벤처스도 즐겁게 내 일을 하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사업입니다.”

아티스트에게 비즈니스 활로를 펼쳐주겠다는 목표처럼 지금까지 4번의 신진작가 공모전을 열었다. 아트토이를 전혀 경험한 적 없는 순수미술이나 디자인, 혹은 패션 전공자들이 대거 참여했고, 공모전을 통해 배출한 작가들이 아트토이컬처에 참여하면서 해를 거듭할수록 전시는 더욱 풍성해졌다. 현재 아트벤처스가 확보한 작가 인력풀은 700여명 수준이다. 순수 미술, 패션이나 디자인은 물론 피큐어 아티스트 등 다양한 영역에 펼쳐져 있다.

아트토이는 그 자체로도 세상에 하나 뿐인 온리원(Only One) 작품으로 희소성을 가진다. 이미 아트토이 산업이 발달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한 점당 수억원을 호가할 정도이며 중국에서도 인기를 얻으며 한번 전시가 열리면 수천 만원 짜리가 순식간에 팔려나간다고 한다. 또한 리미티드 에디션(한정된 수량만큼 제작)으로 만들거나 대량 생산을 하는 방식도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적으로 성장성이 큰 영역은 캐릭터 산업이다. 월트 디즈니의 만화 미키 마우스부터 시작된 캐릭터 산업은 만화 영화나 팬시 사업은 물론 의류나 외식, 유통 등 각종 산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토이라는 오브제 자체가 사람들이 손쉽게 접하고 소비할 수 있는 대상인 만큼 여기에 예술적 감성을 접목하면 충분히 시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문 대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아트 영역에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접목하고자 하는 비전도 갖고 있다. 그는 “미술작가든, 소비자든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임하면 모든 일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며 “아티스트들이 갖고 있는 고유의 예술가적 감성과 앙트러프러너십을 접목하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산업이 창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트벤처스가 플랫폼을 깔아 놓고 여기서 성공모델이 나오면 아트를 기반으로 한 신산업의 발전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해외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는 문 대표는 1차 타깃으로 중국을 잡았다. 지난해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토이쇼에 전시 부스를 열고 참석, 뜨거운 반응을 얻었으며 이런 여세를 몰아 올해는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두 차례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문 대표는 “중국의 경제 성장이 급격하게 이뤄지면서 아트토이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폭발적이며 관련 산업이 커지고 있다”면서 “중국에서 한국 작가들의 감수성을 높게 평가하며 이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중국의 완구업체와 유통회사 등에서 개별적으로 한국 작가를 접촉하기 어렵다며 아트벤처스에 좋은 작가를 추천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미술작가들의 작품이 지적재산권(IP)으로서의 가치를 가지며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지고 비즈니스의 기회가 열리는 선순환 생태계가 열리는 것이 아트벤처스가 지향하는 사업 방향이다.

문 대표는 “지금까지 4번의 전시회를 열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훌륭한 작품이 선보이면서 신진작가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점차 대형 제조사나 유통사와 캐릭터 판권 계약도 늘어나는 것도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아트토이컬처 출신의 캐릭터 중에서도 카카오프렌즈처럼 하나의 캐릭터 산업으로 자리잡은 스타 아이템이 탄생할 수 있다는 믿음도 점차 커지고 있다.

아트토이컬처를 통해 배출한 다양한 아트토이들이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다.


이미 성공 사례가 나오고 있다. 일본의 유명 아트토이인 ‘베어브릭’은 루이비통과 손잡고 콜라보 작업을 진행하면서 성공을 거두며 ‘플랫폼 토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이런 흐롬 속에서 아트토이컬처가 배출한 작품들이 서서히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슈퍼픽션’은 LG전자 등과 협업을 통해 확장성을 여실히 보여줬고, ‘쿨레인’ 역시 나이키의 조단, 에어맥스 등과 협업하면서 유명세를 치렀다. 이밖에 핸즈인팩토리, 햄스, 초코사이다 역시 다양한 영역에서 사업 제안을 받으며 성공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문 대표는 “아트토이 자체의 작품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 플랫폼 토이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라며 “아트토이가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되는 등 활동 영역은 무한히 확장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최근 새로운 도전에도 나섰다. 지난해 12월 ‘플레이아트(playart)’라는 신규 브랜드를 론칭한 것. ‘컬러 마이 라이프(Color My Life)’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플레이아트는 플레이아트는 바쁜 일상 속에 여유를 누리지 못하는 현대인들이 그림을 그리면서 온전히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공유 오피스의 비어있는 시간(저녁이나 주말 등)을 활용해 20여명 규모의 미술 강좌를 여는 것. 전업 작가가 강의를 맡는데, 수강생들은 자신 앞에 놓인 캔버스에 강사가 알려주는 대로 스케치를 하고 색을 입히면 된다. 강의가 끝나면 어느새 나만의 아크릴 작품이 눈앞에 놓이게 된다. 문 대표는 “현대인들은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면서 “몰입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에게 온전히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그 결과물로 자신의 작품을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트 호스트로 일하는 전업 작가는 2시간 강의를 통해 부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현재 위워크, 성수동 카페, 연남동 작가 사무실 등 공유 오피스에서 플레이아트가 진행되고 있으며 인당 비용은 3만 5,000원이다. 특히 공유 오피스 운영업체들이 입주사를 위한 특화된 문화 서비스는 물론 공감대 형성 차원에서도 강좌 개설에 적극 호응하고 있어 사업 확장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아트벤처스가 야심차게 선보인 ‘플레이아트’에 참가한 직장인들이 자신의 그림을 그리며 몰입의 시간을 갖고 있다.


4번에 걸친 아트토이컬처의 누적 관람객은 25만여명, 누적 거래 매출은 45억원 수준이다. 아트토이컬처가 대표적인 아트토이 전시로 자리를 굳힌 데다 플레이아트도 정착하면 올해 30억원의 매출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 대표는 “국내 수많은 미술 전공자가 있는데 아직까지 전업 작가로 성공하는 것은 소수에 그치고 있다”면서 “이들이 비즈니스 영역과 만나 창업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아트벤처스가 작게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아트라는 생태계가 비즈니스와 만났을 때 의미 있게 성장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이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민정기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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