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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장 된 원유시장…4,300억 ETN 휴지될 판

[원유파생상품 휴지조각 되나]

개미들 하루1조 이상 불나방 베팅

원금손실 가능성…거래중지 예고

21일(현지시간) 엑손모빌, 로열더치셸 등 글로벌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이라크 남부 바스라 유전지대를 총기를 든 경찰이 순찰하고 있다.  /바스라=로이터연합뉴스




사상 초유의 국제유가 폭락에도 원유 상품에 개인투자자들이 대거 몰리면서 관련 시장이 ‘투기판’으로 전락하고 있다. 하루 거래대금이 이틀 연속 1조원을 넘어서고 있지만 실제 기초자산 가치보다 비싼 가격에 ‘묻지 마 매매’를 하는 경우가 급증하며 시장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 급기야 한국거래소는 투기성이 강한 4,300억원대의 레버리지 원유 투자상품에 대해 원금 전액손실 가능성을 경고하며 거래중지를 예고했다. ★관련기사 6면

22일 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원유 관련 상장지수증권(ETN)과 상장지수펀드(ETF) 거래대금이 1조1,984억원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이틀 연속 1조원을 넘었다. 지난 21일에도 전날보다 60%나 급증한 1조333억원 어치가 거래됐다. 22일 새벽(한국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6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43.4%(8.86달러)나 급락한 11.57달러까지 주저앉으며 역사적 수준의 급락세를 이어갔다.

이에 유가 반등 또는 하락에 베팅하려는 투자자들의 수요가 동시에 몰리면서 ETN·ETF의 실제 가치와 동떨어진 가격의 거래가 급증했다. 이날 신한레버리지WTI 원유선물 ETN의 정상가치는 주당 63원22전에 불과했지만 이보다 928%나 비싼 650원에 거래를 마쳤다. 가격 왜곡이 극심해지자 거래소는 레버리지 ETN 2개 종목(신한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과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혼합 ETN(H)의 거래를 23일부터 이틀간 정지한다고 발표했다. 거래소 관계자는 “레버리지 상품은 원유선물 가격이 50% 이상 떨어지면 전액 손실을 본다”고 경고했다. 거래소에 상장된 레버리지 상품의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으로 4,345억원이었다. /이혜진·박경훈기자 hasim@sedaily.com



국제 유가의 유례없는 급락세 속에서 원유 상품에 대거 투자한 개인투자자들의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연초 배럴당 50달러 대였던 국제유가가 신종코로나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20달러 대로 급락하면서 반등을 노린 저가 매수가 크게 늘었으나 국제유가는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가격을 기록하는 등 급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상장지수증권(ETN)과 상장지수펀드(ETF)가 실제 가치 대비 수십~수백% 가량 고평가 된 가격에도 ‘묻지마’ 매매도 이뤄졌다. 특히 레버리지 상품의 경우 국제 유가가 50% 이상 떨어지면 전액 손실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6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이날 새벽 현지에서 43.4%(8.86달러) 하락한 배럴당 11.5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에는 전일 종가 대비 68% 하락하기도 했다. 국내 상장돼 있는 2배짜리 유가 레버리지 ETN상품의 경우 국제선물 가격이 -50%를 넘어가는 순간 100% 손실로 청산된다. 그나마 종가에 살짝 반등하며 휴지 조각이 되는 상황은 면했지만 언제든지 유가가 급락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같이 투기성이 강한 유가 상품임에도 이날 개인투자자들의 매수세는 뜨거웠다. 게다가 실제 가치보다 고평가된 가격에 ‘묻지마’ 매수 광풍으로까지 이어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신한레버리지 WTI원유선물 ETN은 전일보다 28.18% 하락한 650원에 거래를 마쳤다. 그러나 이 가격은 실제 가치를 고려하면 9배나 비싼 터무니없는 가격이다. 이 상품이 기초자산으로 삼고 있는 원유선물을 토대로 계산한 실제 가치는 주당 63원22전에 불과하다. 실제가치에서 매매가격을 뺀 ‘괴리율’은 그동안 50~60%선에서 고공행진을 해왔지만 이날 극단으로 치달았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이성을 잃은 듯하다”고 말할 정도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래에셋레버리지원유선물혼합ETN도 전일 대비 35.2% 하락한1,600원에 거래를 마쳤으나 괴리율은 231%에 달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482원으로 장을 마쳤어야 하는 상품이다.

원유 ETF의 경우는 가격제한폭 때문에 실제 가치보다 높게 매매가격이 형성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KODEX WTI원유선물(H)은 가격 제한폭인 30%까지 떨어졌으나 이는 실제 유가 하락폭인 약 40%에 못 미치는 금액이다. 그러다 보니 괴리율이 37%나 벌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개인 투자자들이 매수에 달려들어 총 4,351억원의 거래가 이뤄졌다.

개인 투자자들의 투기성 매수세가 이어지면서 시장조성자들인 증권사들은 사실상 손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거래소는 ‘시장의 문을 닫는’ 조치를 취했다. 신한금융투자는 전일만 해도 1억주 이상의 자체 보유 물량을 쏟아내며 괴리율 줄이기에 안간힘을 썼으나 이날은 백기를 들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당 ETN은 1일 거래량이 1억주가 넘는데 현재 신금투가 보유한 물량은 9,700만주밖에 안 된다”며 “가격 정상화를 위해 손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거래소는 신한레버리지 WTI원유선물 ETN(H)과 미래에셋 레버리지 원유선물혼합 ETN(H)을 23~24일 거래를 정지시키고 오는 27일 단일가매매 방식으로 거래하기로 했다. 이미 삼성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과 QV 레버리지 WTI원유 선물 ETN(H)은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이 4개 종목의 시가총액은 22일 기준으로 4,345억원이다. 거래가 정지된 상황에서 국제 유가가 50% 이상 떨어지면 이 상품들은 전액 손실 처리된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당국과 거래소·운용사 관계자들은 투자자들에게 연일 투자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60달러에서 30달러 가기는 어려워도, 10달러에서 5달러로는 언제든지 떨어질 수 있다”며 “한번 전액 손실이 발생하면 영원히 복구 될 수 없다는 점을 누차 고지하는 데도 도통 투자자들에게 먹히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참에 혼탁한 원유 상품 시장에 대한 제도 정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해외처럼 운용사나 증권사들이 자체적으로 상장폐지(조기상환)를 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에서는 최근 유가가 급락하자 관련 ETF 등을 자체적으로 상장폐지를 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국내에는 관련 규정이 전무하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자들도 무분별한 투자를 안 하는 게 최선이지만, 이를 방조하는 ‘미필적 고의’가 벌어지지 않게끔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혜진·박경훈기자 has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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