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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경제위상 걸맞게 환율표시단위 변경해야

화폐 액면 변경 - 찬성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주임교수

● 화폐교체비용 이상 부가가치 창출로 내수부양

● 지하경제 양성화 따른 세수 증대효과도 기대

● 한국경제 디플레이션 예방하는 방법 될수도

화폐 액면을 동일한 비율의 낮은 숫자로 변경하는 ‘리디노미네이션(화폐개혁)’을 놓고 찬반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 단위 숫자 ‘0’을 떼어내 예컨대 1,000원을 1원(혹은 환)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거래상 편의성과 화폐단위당 구매력을 높이는 효과로 매년 논란거리가 됐는데 지난 3월 “논의를 한번 할 때가 됐다”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이 논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달 이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리디노미네이션 추진 계획이 전혀 없다”고 말을 바꿨지만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오는 13일 정책토론회를 여는 등 정치권은 논의의 군불을 때고 있는 형국이다. 액면 변경 찬성 측은 세계 경제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격상된 만큼 환율 표시 단위가 변경돼야 하고 리디노미네이션으로 내수부양과 지하경제 양성화에 따른 세수 증대 효과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액면 변경이 주로 경제위기를 겪는 후진국에서 단행되고 있으며 변경할 경우 불분명한 정치적 의도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국가 경제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고 반박한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최근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에 대한 찬성 근거는 이렇다.

우선 우리 경제의 규모가 크게 확대됐다. 지난 2018년 국내총생산(GDP)이 1,782조2,689억원으로 2차 리디노미네이션을 한 1962년(3,658억원)보다 4,872배나 증가했다. 또 한국은행의 자금순환계정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총금융자산이 2010년 1경원을 넘어섰고 2018년에는 1경7,148조원에 달했다. 카페에서 5,000원짜리 커피 한잔을 5.0으로 표기하는 이유다.

둘째, 한국의 수출은 세계 6위(2017년 기준)에 이르는 등 대외 교역 규모가 커졌는데 1달러당 1,100원대의 환율은 너무 높다. 한국보다 경제 규모가 작은 대만의 통화인 대만달러는 지난달 말 현재 미 달러당 30.9, 싱가포르달러는 1.36, 말레이시아 링깃은 4.13 등으로 단위가 낮다. 중국 위안도 달러당 6.73 정도이다. 세계 경제에서 한국의 위상이 격상된 만큼 환율 표시 단위도 같이 조정돼야 한다.



셋째, 리디노미네이션으로 내수를 부양할 수 있다. 높은 가계부채로 소비가 부진한 상태에서 기업투자도 위축되고 있다. 여기에다 GDP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수출도 세계 경제의 성장 둔화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화폐 단위가 변경되면 은행은 현금지급기는 물론 금융거래와 관련한 각종 소프트웨어를 대체해야 한다. 기업도 생산된 제품의 가격표를 바꿔야 한다. 이것이 관련 기업에는 비용이겠지만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기업에는 수입이 된다. 2004년 리디노미네이션 논의가 있었을 당시 제지·잉크·컴퓨터·자동판매기 교체 등으로 2조6,000억원의 비용이 들지만 5조원 정도의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때보다 우리 경제의 규모가 2배 정도 확대된 만큼 지금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면 효과도 클 것이다.

넷째, 지하경제 양성화에 따른 세수 증대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는 추정 방법에 따라 GDP의 8~25%로 크게 다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2015년 기준 우리 지하경제가 GDP의 8%에 이를 것이라는 보수적 추정을 내놓았는데 그렇더라도 그 규모가 125조원에 이른다. 리디노미네이션으로 숨어 있던 돈이 밖으로 나오면 세금도 내야 하고 소비지출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돈이 돌게 된다. 2018년 말 기준 5만원권 발행잔액이 95조원으로 화폐발행액의 84%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5년 동안 5만원권의 평균 환수율은 49% 정도로 낮다. 우리 통화승수(광의통화(M2)를 본원통화로 나눈 통화 유통 속도)는 올 2월 현재 15배로 2008년의 26배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통화승수가 이처럼 급락한 것은 가계의 현금통화 보유 비율이 크게 늘어난 데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폐 단위가 변경되면 단기일 수도 있지만 일단 돈이 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으로 갈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데 있다. 올 들어 4월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5%에 그쳐 한국은행이 통화정책 목표로 내세운 2%를 훨씬 밑돌고 있다. 실제 물가상승률이 목표치를 밑돈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2013~2015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목표를 2.5~3.5%로 설정했으나 실제 물가상승률은 평균 1.1%였다. 2016년 이후로는 물가안정 목표를 2%로 두고 통화정책을 운용해왔으나 역시 지난 3년간 물가상승률은 평균 1.5%로 목표치 아래였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준(準)디플레이션 현상의 원인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근접한 상태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벤 버냉키 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행동하는 용기’라는 저서에서 “인플레이션이 아주 낮은 것은 아주 높은 것만큼이나 경제에 해로울 수 있다. 낮은 인플레이션 혹은 디플레이션에서 빠져나오기는 매우 힘들어서 단기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낮추더라도 완전고용 수준에 이르기는 역부족일 수 있다”고 했다. 적극적 재정 및 통화 정책뿐 아니라 리디노미네이션 같은 제도적 요인도 디플레이션을 예방하는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시작된 디플레이션으로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하던 나라에서 가장 더디게 발전하는 국가로 변했는데 우리 경제가 비슷한 길을 뒤따르고 있다. 행동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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