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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리고 엎어진…이 모든건 '당신의 조각들'

■중견 조각가 배형경 개인전

"불편한 자세 취한 청동 인물상

답 찾아 헤매는 인간군상 표현

'실존'에 대한 근본적 질문 던져"

갤러리시몬에서 개인전 ‘채색하중’을 열고 있는 조각가 배형경. /성형주 기자




그냥 울어도 좋다. 저 조각처럼, 털썩 주저앉아 멍하니 있어도 괜찮다. 무릎 꿇은 이, 찬 바닥에 머리를 박고 엎드린 이, 아예 땅으로 스며들 듯 나무토막처럼 누운 이…. 저들 중에 혹여 내가 있을까. 청동 인물상들 사이에서 붉게 빛나는, 쪼그려 앉은 두 무릎 사이로 얼굴 파묻은 저것이 나인가. 매끈하게 다듬지 않아 울룩불룩한 피부는 호흡하는 것 같으면서도 흐느끼는 듯하다. 툭 불거진 등뼈와 마디 굵은 손가락은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삶의 흔적이다. 자신을 작품에 투영시켜보고 공감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차피 성별도 인종도 나이도 알 길 없다. 누구인지는 전혀 중요치 않으니 인간 대 인간으로 음미하길 청하는 배형경(64)의 조각들이다.

중견 조각가 배형경의 개인전 ‘채색하중(Colorful Weights)’이 종로구 통의동 갤러리시몬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2017년 같은 곳에서 열린 ‘말러와 눕다’ 이후 2년 만의 개인전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혼란스러운 시대상에서 비롯된 인간 실존”을 화두로 작업해 온 배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도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관객에게 던지고 스스로 그 답을 모색해 보여준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시몬에서 내년 1월11일까지 열리는 배형경 개인전 전경. /성형주 기자


1층 전시장을 꽉 채운 신작 인물상들은 어느 것 하나 편안한 것이 없다. 그 사이를 거니는 발걸음이 무겁고, 마음은 먹먹하다. 꼭 이렇게 힘겨워야 하느냐는 질문에 작가가 답했다.

“인간이 도덕적, 윤리적으로 성숙하고 선한 정신으로 진화하는가에 대한 회의와 의혹에서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저 인간들이 왜 저러나. 인간이 왜 저래야 하나. 그렇게 실존에 대해 저 자신에게, 관객들에게 다시 묻죠.”

고개 숙이고, 무릎 꿇고, 웅크리고, 드러누운 이들은 “아무리 엎드리고 조아려도 쉽게 얻을 수 없는 답을 찾아 헤매는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총 12개의 표본으로 제작됐고 그 중 11개 유형이 전시되고 있다. 작가는 “인간이 태어나서 살아가다 죽기까지의 여정을 계절이 가듯 열두 달로 만들어 본 것”이라며 “잔뜩 웅크린 태아 같은 형상도 있고 3, 4월 정도를 상징하는 무릎 굽힌 인체는 꼬물거리기 시작한 애벌레를 닮았다”고 설명했다. 여름에 피어오르고 가을에 무르익는 인생이건만 쾌락은 없고 고행만 처연하다. 12월에 해당하는 인물상을 두고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에서 성모 마리아의 품에 안긴 축 늘어진 예수의 자세를 본떴다”고 귀띔했다.

“좋은 사람,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요? 제대로 된 인간이 대체 뭘까요? 하지만 악을 알아야 선을 알고, 슬픔을 느껴야 기쁨을 만끽하고, 비극이 존재해야 희극이 즐겁습니다. 이런 작품을 보고 세상을 다시 한 번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군가는 내 맘 보듬어 주는구나’라며 공감에 기뻐하면 좋겠고요.”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청동 조각상에 색(色)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변화의 시도다. 기존의 청동 작업에 색채를 입혀 ‘물성의 충돌’을 야기했다. 은색, 반짝이는 녹색, 광택 없는 붉은색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작가는 “무거운 삶의 수많은 이야기를 위장하고 포장함으로써 다양한 감정을 다른 각도로 해석하게 유도했다”고 설명했다.

조각가 배형경의 신작 설치작품 ‘벽(Wall)’ /사진=성형주 기자


배형경 ‘채색하중’ 설치전경.


2층 전시장에는 6개의 청동 인물 중 하나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설치작품 ‘벽(Wall)’이 선보였다.

“서 있다가 꼬꾸라진 게 나예요. 살다가 꼬꾸라지기도 하지만 다시 일어나 한 발 떼고 나서는 게 삶이에요. 삶의 과정에서 마주하는 ‘벽’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란 사실을, 인간이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죠.”

인물 조각을 통해 정신을 그려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배 작가는 형태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앞서 인간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미술교사로 잠시 교편을 잡기도 했던 그는 첨예한 갈등의 시대를 살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모색했다. 그러던 중 인체를 연구하고, 나아가 인간의 본질을 이야기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2010년 김종영 미술관의 ‘오늘의 작가’로 선정됐고 김세중미술관, 북경 페킨 파인 아트 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서울시립미술관·경기도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과 프랑스 카르카손느 시청,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전시는 내년 1월11일까지.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사진 성형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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