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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고글 쓰니 신차가 눈앞에...허공에 팔 휘두르는대로 디자인 척척

[현대차 150억 투입 최첨단 VR품평장 가보니]

정의선 부회장 백팩PC메고 설계 검증…버추얼 개발로 미래차 대응

모션캡처 센서가 움직임1㎜ 단위 감지·다양한 주행환경도 접목

R&D 전과정 버추얼 프로세스 도입 땐 개발 기간 20% 단축 기대

현대·기아차는 자동차의 품질을 높이면서 개발 효율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가상현실(VR) 기반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를 본격 가동한다고 밝혔다. VR을 활용해 가상 공간에서 설계 품질을 검증하는 작업의 콘셉트 사진./사진제공=현대차그룹




#.백팩PC를 등에 메고 헤드셋을 착용하자 새로운 세상으로 진입했다. 분명 현대적인 사무 공간 안에 있었는데 주변에 갑자기 푸른 산과 들이 펼쳐져 있었다. 어리둥절 해 하고 있던 순간 현대자동차의 수소 전용 대형트럭 넵튠이 장비를 착용한 아바타들을 ‘통과’해 지나치다가 멈춰 섰다. 조심스럽게 차체 외부를 통과해 걸어 들어갔다. 넵튠의 미래지향적 실내 디자인이 실체처럼 구현돼 있었고, 조수석과 2층 침대 등 실내 공간의 움직임 또한 실제와 다름 없다. 산과 들이었던 배경 또한 프랑스 파리 라데팡스 한복판, 겨울 설산 등으로 바뀌기도 했다. 각기 다른 배경에서 차량 외관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를 검증하기 위해서다.

현대·기아차는 자동차의 품질을 높이면서 개발 효율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가상현실(VR) 기반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를 본격 가동한다고 밝혔다. VR을 활용해 가상 공간에서 설계 품질을 검증하는 작업의 모습의 콘셉트 사진./사진제공=현대차그룹


현대·기아차가 150억원을 투입해 남양기술연구소에 만든 최첨단 가상현실(VR) 디자인 품평장은 미래 자동차의 A부터 Z를 모두 경험할 수 있다. 지난 17일 미디어에 최초로 공개된 이 곳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을 통틀어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이 시설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을 포함한 최고 경영진들이 매달 헤드셋과 백팩PC를 착용하고 디자인·설계 검증에 나서고 있다. 실물 모델을 만들어 디자인과 설계를 검증하던 과거 방식의 물리적·시간적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차량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원하는 대로 쉽게 디자인을 바꿔가며 작업할 수 있고, 유럽, 미국, 중국, 인도 등 해외 디자인센터의 디자이너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돼 현지 환경에 맞는 조언을 실시간으로 해줄 수도 있다.

품평장에 설치된 36개 모션캡처 광학센서는 VR 장비의 위치와 움직임을 1㎜ 단위로 감지한다. 이 덕분에 가상 현실은 지연되는 느낌 없이 생생하게 구현된다. 현대차 관계자는 “선행 디자인 모델을 일일이 실물로 제작해야 하는 자원 소모를 줄이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신속하게 반영해 가장 가치가 높은 디자인의 차량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디자인 품평을 넘어 아이디어 스케치 등 초기 디자인 단계로까지 VR 기술 적용을 확대할 계획이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허공에 팔을 휘두르면 이를 따라 선이 그려지는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디자인뿐 아니라 설계에도 VR 기술이 적용되고 있다. VR 설계 검증 시스템 또한 체험해봤다. 헤드셋을 썼더니 신형 K5 모델이 나타났다. 손에 쥔 리모콘은 실제와 다름 없이 구현된 이 자동차를 마음껏 다룰 수 있게 해줬다. 버튼을 눌렀다가 원하는 위치에서 떼니 K5가 두 동강 났다. 놀라운 건 가상 현실 속 차량의 단면이 실제 자동차의 단면과 똑같이 구현된다는 점이다. 엔지니어들은 이 단면을 보며 부품 간의 설계 적합성이나 작동 상황 등을 검증하고 평가한다. 현실에서 차량을 정확히 원하는 대로 쪼개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상 현실에선 비용 없이 정확한 단면 측정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자동차의 품질을 높이면서 개발 효율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가상현실(VR) 기반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를 본격 가동한다고 밝혔다. VR을 활용해 자동차의 헤드램프를 디자인하고 있는 모습의 콘셉트 사진./사진제공=현대차그룹


연구자들은 이 가상의 자동차를 직접 운전할 수도 있다. 시운전을 통해 운전자 관점의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는지 검증한다. 또 글로브박스(조수석 수납 공간)이 제대로 열리는지, 차 문이 열리는 각도가 어떤지, 와이퍼 작동 상태는 어떤지까지 실제와 똑같이 실험할 수 있다.

이 같은 VR 설계가 가능한 것은 ‘데이터화’ 덕분이다. 실물 차량의 3차원 설계 데이터를 정교하게 모아 디지털 차량을 만드는 방식. 연구원들은 데이터를 통해 만들어진 이 가상의 차량과 실물 차량의 움직임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를 끊임 없이 검증해 그 정도를 높여간다. 이 과정을 거쳐 실제 자동차와 100% 일치하는 가상의 3D 자동차가 만들어지고, 현실에선 물리적 제약 때문에 불가능했던 검증이 가능해지면서 품질도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현대·기아차는 이 같은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가 연구·개발(R&D) 전 과정에 완전 도입될 경우 신차개발 기간은 약 20%, 개발 비용은 연간 15% 가량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향후에는 생산과 조립 라인 설계에도 VR을 도입해 조립 적합성을 높이고 인체공학적·효율적인 작업 환경을 만들어 갈 계획이다.

알버트 비어만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 사장은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 강화는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 변화와 소비자 요구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한 주요 전략”이라며 “이를 통해 효율성과 수익성을 높여 R&D 투자를 강화하고 미래 모빌리티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한신기자 hs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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