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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시대 노동법, 새 시대에 맞춰 바꾸는 게 노동개혁 본질"

[박지순 高大 노동대학원장의 노동개혁 제언]

시간·장소의 경계 자꾸 무너져

근로기준법 '전가의 보도' 아냐

4차 산업혁명시대 대처 하려면

낡은 산업화 규칙 과감히 버려야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이 13일 서울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노동개혁에 대한 제언을 하고 있다. 박 원장은 “산업화 시대 때 만든 공장 중심의 노동법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며 “근로기준법을 시대에 맞게 개정하는 등 노동의 기준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욱기자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이 13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노동개혁의 본질은 20세기 산업화 규칙을 21세기에 맞게 만드는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기준)”이라고 제언했다. 근로시간 단축, 연장근로수당 등 산업화 시대에 만든 근로기준법으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다양해진 노동수요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박 원장은 “정부부터 정치 논리가 아닌 시장 중심적 사고가 필요하다”며 “이를 공론화해 노동계를 설득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원장은 “산업구조는 변동하는데 근로기준법은 여전히 획일화돼 있다”며 “노조도 이를 무기 삼아 투쟁 일변도의 협상을 하는데 근로기준법은 더 이상 전가의 보도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현행 노동법의 가장 큰 두 줄기는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이다. 노조법은 쟁의행위의 관리·조정 등을 통해 단체협약을 체결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지만 근로기준법은 말 그대로 ‘근로의 기준’을 설정한 강행 규정이다. 문제는 이 강행 규정이 지나치게 산업화 시대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근로시간 규정을 들 수 있다. 주 52시간 근로제는 법정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근로시간 12시간으로 상한을 정해준 것이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 들어 업무 시간과 장소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기업들은 근로시간에 따른 연장근로수당을 어떻게 산정하고 지급할 것인가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박 원장은 “시간과 장소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고, 산업구조가 바뀌고, 새로운 작업 방식이 도입되고 있다”며 “노동의 토대가 바뀐 것인데 구체제의 산업구조 아래에서 만들어진 규칙에 아직 머물러 있다”고 꼬집었다.

박 원장이 내린 처방은 △블루칼라만이 아닌 화이트칼라를 포괄하는 노동법 △노사의 자율적 결정 확대 △4차 산업혁명에 맞춘 사회안전망 확충이다. 그는 “유럽도 산업별 노조 중심으로 하니 기업 경쟁력과 성과에 차이가 있어도 근로자들이 평균적인 근로조건을 공유한다”며 “산업별로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현실과 맞지 않다는 생각에서 기업 지향적 교섭체계가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노동자의 힘(FO) 등 강성 노총의 반발에도 기업별 사업장 노조를 지원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노사가 사업장과 업계 동향에 맞춰 노동을 유연화하면 근로기준법을 어겼다고 볼 게 아니라 노사합의로 존중하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전 국민 고용보험’ 등 사회안전망 강화도 기존 정책에 플랫폼종사자 등 새로운 직업을 끼워 넣는 게 아니라 변화된 노동여건에 맞춘 새로운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장 구직급여를 받을 수 있는 실직 요건이 소득 감소인지 폐업인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기존의 고용보험 체계가 아닌 새로운 기준과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이 13일 서울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노동개혁에 대한 제언을 하고 있다.




노동이사제 하려면 투쟁에 매몰된 勞부터 변해야
박 원장은 최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공기관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노동이사제’에 대해 장기적으로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투쟁 중심의 노사관계가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럽의 노동이사제 모델은 ‘노조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노조에도 신뢰에 부합하는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 노조는 그런 신뢰를 회복하고 있지 않다”며 “기득권이 아닌 회사 이익과 공동의 이익을 위해 주주의 이익을 챙기며 협상한 경험이 없다”고 말했다.

노동이사제는 노조 혹은 근로자대표가 기업 이사로서 발언권과 의결권을 갖고 기관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기관부터 노동이사제를 도입해 민간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정부는 노동이사제가 근로자 친화적이고 노사가 상생하는 경영풍토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경영계는 당장 단체협약부터 애를 먹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 기업의 경영기밀이 유출되고 노사갈등만 더욱 첨예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박 원장은 “노동이사제 논의는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경영 참가에 대한 전반적 검토 위에서 하나씩 발전해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며 “신뢰와 협력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기상조가 아닌가 하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 박 원장이 제안하는 대안은 ‘근로자대표제’다. 노조가 직접 참여하는 형태가 아니라 전체 근로자가 대표를 이사회에 보내는 방식이다.

'기브앤테이크' 교섭원칙 지켜야 사회적대화 결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 회의와 관련해 박 원장은 “노사정 합의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대부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노사정 합의문이 도출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지만 민주노총 강경파에 밀려 파행으로 결론 났다.

박 원장은 노사정 합의 파행에 대해 “교섭은 기브 앤드 테이크”라는 말로 정리했다. 그는 “민주노총은 해고 금지, 고용 보장, 사회안전망 강화, 근로기준법 4인 이하 사업장 적용을 다 말하고 경영계의 요구는 얼마나 수용할 것인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며 “임금을 동결하자고 하니 테이블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의 ‘투쟁’ 기조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시했다. 박 원장은 “민주노총은 양보해본 적이 없다. ‘투쟁이 공식’”이라며 “개별 기업에서는 교섭을 잘하지만 테이블에서 양보한 지도부는 여지없이 쫓겨나고 탄핵됐다”고 했다. 결국 요구사항만 쏟아내고 경영계의 요구는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면 세부적인 합의는 애초에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이 13일 서울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노동개혁에 대한 제언을 하고 있다.




정치논리로 끼워맞춘 'ILO비준' 더 공론화 필요


박 원장은 “(ILO 핵심협약 비준의) 궁극적인 목적이며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은 노조법”이라며 “현실에 비해 법규범이 너무 낡았다고 한다면 정상적인 법 개정 수요이지만 과연 노조법이 그런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제)와 해직·실직자의 노조 가입 제한이라는 ‘한국형 노사제도’가 과연 현상과 안 맞는 것인지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ILO 핵심협약 비준의 필요성으로 주장하는 ‘유럽연합(EU)의 요구론’에 대해 박 원장은 “EU 내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는 만큼 성립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한·EU 자유무역협정(FTA)에서도 ‘비준을 노력한다’는 원론적 문구만 실려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박 원장은 ILO 핵심협약이 노사관계를 한꺼번에 바꾸는 파급력이 있는 만큼 공론화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당이 176석을 가진 상황에서 ILO 핵심협약을 밀어붙일 수 있겠지만 우려된다”며 “영향을 받는 것은 경제 주체인 만큼 국회에 환경노동위원회·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등 몇 개의 위원회가 모이는 노동특별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공익위원 안을 마련했다고 끝낼 것이 아니라 더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포함시켜 논의하는 것이 성숙한 국가의 모습이라는 설명이다.

하청 비정규직 → 원청 직고용이 정의? 정치의 환상


박 원장은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란에 대해 기형적 아웃소싱(하청·도급) 관행에 정치가 얽혀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치권과 정부는 이 구조를 개혁하는 데 힘써야 했는데 하청 근로자를 원청이 직접 고용하는 것이 마치 ‘정의로운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줬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제조업에서 구조조정 압력을 받으니 채용 여력이 떨어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사태에 일자리가 초토화돼 청년들의 신경이 곤두선 상황에서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정규직 전환과 1,600개 일자리 선점을 발표하면 동의하겠느냐”며 “한국공항공사는 자회사형 정규직으로 전환했는데 보안검색 일자리가 ‘왜 직접고용인가’에 대한 설명도 없다. 제한적 경쟁을 붙여야 뒷말이 없다”고 지적했다.

방만한 공공 부문의 개혁도 빠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공기업은 시장에서 경쟁하지 않다 보니 성과 평가도 어렵고 비정상적으로 높은 호봉제도 유지됐다”며 “이를 두고 정규직을 늘려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고 꼬집었다.

박 원장은 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노사관계를 흔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난해 학교 비정규직 파업은 자회사형 정규직들이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한 것인데 직접고용형 정규직이 나오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더 강하게 느낄 것”이라며 “어떻게 조직화하고 목소리가 커지느냐에 따라 ‘태풍의 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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